얼마 전, 여자 임원분과 면담을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고민도 털어놓는 시간이었는데, 그분이 뜻밖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제 OO님도 본인의 포지션을 고민해봐야 해요."
"대기업의 특성상, 아직도 ‘주도적으로 나서는 남자 리더’ 아래에서 ‘조용히 일만 열심히 하는 여자 선임’ 구조가 팽배하거든요. 저도 그 틀을 깨지 못하고 오랜 시간 갇혀 있어야 했어요. 심지어 리더 자리가 공석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저를 위로 올리려 하지 않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목에 붙인 파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창 바쁘게 업무를 쳐내느라 몸은 고단했고, 마음은 텅 빈 듯했다.
그리고 한 이틀 그 임원분이 해주신 얘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더랬다.
며칠 후, 호주에서 일하는 친구와 대화 중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 피드백도 늘 ‘묵묵하고 성실히 일함’이야."
"한국이 특히 그런 것 같아. 성별에 따라 길러지는 방식도 다르고, 기대하는 역할도 다르니까."
"맞아. 주변을 봐도 대부분의 여자 동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어쩌면 이 자리가 나는 편한게 아닐까?’, 동시에 ‘아니, 언젠가는 나도 깨고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완벽히 준비는 되어있지 않지만 그 벽을 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답을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고,
그 질문을 계속 던져보며 조금씩 조금씩 준비하며 내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을 땐 나답게,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