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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Jul 30. 2022

물고기 인간

윤이는 오늘도 목을 긁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귀 아래쪽, 턱 뼈의 가장자리 부근 이었다. 처음에 윤이 본인은 자기 스스로 목을 긁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이선임이 “야, 그만 좀 긁어라. 지금 너 목 엄청 빨개. 피나고 흉진다 너"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요 며칠 계속 목이 간지러웠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없던 아토피가 생긴걸까? 벌레에 물렸나? 아니면 알레르기 반응? 그러다 오늘, 샤워하고 나오며 그 뉴스를 들었다.


‘ 속보입니다. WHO에 따르면 원인 불분명한 신종 병이 전세계에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화면 왼쪽에서 앵커가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오른 쪽 위에 떠있는 사진에는 영화속에 나올 만한 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물고기 얼굴을 가진 사람의 상반신 모습이었다.


‘ 이 병은 피부 뿐 아니라 호흡기 등 일부 주요 신체 기관마저 ‘생선화'가 되는 질병이며, 구체적인 발병원인을 파악중입니다. 한편 이 병은 턱과 목 사이에 아가미가 생기는 증상으로 시작하여 피부의 비늘화가 진행되고, 발병 한달 이후에는 주요 장기들까지 생선의 구조로 변화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초기 주요 증상으로는 신체 변화의 전조증상인 간지러움을 동반하며, 특이한 점은 특정 지을 수 있는 감염 경로 없이 전세계에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증상을 지니신 분들은 당장 보건당국에 연락을 취하시고 … ‘


윤이는 겁이 났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되는 병이 진짜라고? 저거 정말 9시뉴스 맞아?  자신의 간지럼 증상과 그 병을 연관 짓기까지는 생각외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친구들에게 ‘뉴스 봤어? 진짜 무섭지 않아? 초기 증상이 아가미가 생기는 거고 그때 그 부위가 간지럽대…’ 라고 입력 하려는 순간, 짧은 비명-! 이윽고 다시 길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며 거울 앞에 섰다. 긁어서 생긴 손톱 자국이라 생각했는데. 목에 보이는 양 턱 아래 세줄의 선은 ,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나 대칭적이었다. 또 그 피부는 무언가 변화를 갈망한다듯이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의 윤이는 아빠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말그대로, 정말 옛날이야기.


“모든 생명체는 바다로부터 왔대. 아주 먼 옛날에 말이야. 그 때 지구는 온통 물 뿐이었거든. 그러다 어떤 생명체들은 조금씩 물 밖 생활을 갈망했고, 그러다 점점 물 밖에 살수 있게 된거야. 빠른 시간에 일어나진 않았어. 지구 환경은 천천히 변하고, 그에 따라 생명체들도 천천히 변하거든. 물과 육지를 왔다갔다 하며 살기 시작한 종들이 나타났고, 그 이후엔 물가에 살 수 있는 종들이,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육지에서만 살 수 있는 종들이 나타났어.”


윤이는 아빠를 따라 진화학을 전공했다. 세상 모든 것 중 가장 신비로운 건 단연코 생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생명의 기원은 진화 나무의 잔가지들 밑으로 밑으로, 잔가지들이 모인 조금 큰 가지들의 밑으로 밑으로, 다시 조금 큰 가지들이 만나는 더 큰 가지들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다보면 생명의 기원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물고기병의 뉴스가 전해지고 난 후 한 달간,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결코 그런 것들을 알아낼 수 없다. 이것봐, 나무의 가지들을 역행해서 몇달만에 물고기가 되고 있는 중이잖아. 윤이는 전공자로서 신을 믿어본 적 없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이건 진화도 퇴화도 아닌, 신의 저주다.






윤이는 꿈을 꿨다. 바다안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윤이는 이전에 발리로 여행가서 스킨스쿠버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분명 그때 봤던 바다다. 바다 밑엔 땅도 있고 돌산도 있고 동굴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엔 물고기 떼들이 꼬리를 살랑이며 하나의 군처럼 같지만 다르게 유영하고 있다. 해초들 사이엔 해초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물고기들이 숨어있다. 스쿠버 강사가 돌을 가리켰는데,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게 돌이 아니라 문어라는 걸 알았다. 그 옆으로는 다소 위험하게 생긴, 형광빛의 줄이 그어진 물고기가 지나간다. 윤이는 고개를 들어 바다 표면을 본다. 파도는 윤이 머리위로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 출렁이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저 멀리 심연에서 무언가 무겁고 오래된 소리가 들려온다. 윤이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윤이는 자기 몸이 온통 물고기가 되었단 것을 깨달았다. 다시 천장 위를 살펴보니 바다의 표면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니 사실 이 세계는 바다 그 자체여서 바다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잠에서 깬 윤이는 또 곧장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앞에서 얼마나 물고기화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건 하루 일과가 되었다. 이제 목의 아가미는 완성형이었고, 피부엔 비늘이 돋아 났지만 물밖 생활에 건조해서 그런지 말라 있었다. 눈은 부리부리 해지고 코는 납작해져 있었다. 머리털은 다 빠졌다. 영락없는 물고기 인간이었다. 인어 공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상체가 물고기 처럼 변하는 걸까. 뭐라 말하고 싶지만 이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성대와 기도도 물고기화가 되었나 보다.


윤이는 세달동안 연구소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처음 며칠간만 연락이 왔을 뿐 이제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거기다 대고 답장한 적은 없다. 아마 갑자기 소식이 뜸해진 사람들은 이 물고기 병에 걸렸다고 지레 짐작하는 거겠지.







윤이는 해변가에 앉아있었다. 그 주위는 관광객들과 상인들로 북적였다. 윤이는 숨어버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볼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그들은 바빠 윤이 쪽을 바라 보지 않았다. 저마다 차 안에서, 식당 안에서, 차양막 아래에서, 썬베드 위에서 자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소음은 점점 커졌다. 자세히 들어보니 어느새 그들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태양 빛이 그들을 녹여버리겠다는 듯이 뜨거운 열을 쏘아댔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기꺼이 자기 몸을 내놓았지만, 어떤이는 그 자리에 묶여 도망치지 못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비명만 질러댔다. 그들의 몸이 액체화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 광경은 끔찍하고 시끄러워서 윤이는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큰 파도가 윤이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윤이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파도가 윤이를 잡아 먹어 버리자 온 사방이 칠흑같이 변했다. 순간 윤이는 이제껏 지녀왔던 모든 혼란함이 사라짐을 느꼈다. 그러자 자유의 해방감이 솟아오르다 몽글몽글 뭉쳐지며 짭짤한 바닷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더이상 바깥의 풍경과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윤이는 조용히 어둠과 적막을 감상했다. 그리고 익숙해진 바다 안을 날아다녔다. 그러자 이전에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신비한 것들이 잔뜩 나타났다. 아마 아주 옛날, 진짜 먼 옛날부터 살아왔을 것 같은 신비롭고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고요했다. 태초부터 고요함을 지켜왔듯이.


잠에서 깬 윤이는 이번에는 화장실로 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욕조에 몸을 담그니 비늘이 반짝이며 살아났다.







이제 세상은 물고기 인간들에 대해 동정과 연민의 시선만 보낼 뿐, 빠르게 이전의 일상을 되찾으려 했다. 더이상 물고기 인간에게 신경 쓸 겨를 따윈 없다는 듯이. 그도 그럴것이, 지난 6개월 동안 물고기병에 걸린 인구는 증가하지 않았으며, 감염병도 아니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고기병에 걸린 사람들의 90%가 무연고자, 즉 직계가족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족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주를 빗겨나갔음에 안도했다. 또 사랑하는 자기 가족 또한 물고기가 될리 없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정치, 경제, 경쟁, 전쟁 뭐 이런 것들에 몰두했고,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너무 더워지는 지구와 급격한 환경 변화를 걱정했다. 가끔씩 어떤 이들은 물고기 병을 환경오염의 결과라 여기기도 했고, 조만간 이 땅에 종말이 올거라 예언하는 이도 있었다.



어린 윤이가 아팠을 때 윤이 아빠는 윤이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그럴때마다 기가 막히게 지금 딱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를들면 오이냉국, 토마토, 군만두, 아이스크림.. 그러면 예외 없이 그날만큼은 먹고싶은 걸 맘 껏 먹게 해주었다.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지성체야. 필요한 걸 원하게 하지.”

참으로 학자답지 않은 주장이었다. 어쨌거나 그날 윤이는 붕어싸만코를 3개나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윤이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 보낸다. 그러면 몸을 구겨가며 겨우 뉘인 욕조가 아닌, 저 넓은 태평양 속을 날아다니는 자기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그러자 욕조뿐만 아니라 지금 세를 주고 살고 있는 5평짜리 원룸도 더없이 좁게 느껴졌다. 사실 윤이는 최근 한 달 간 마음이 편안했다. 바깥 세상과의 연결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연구소도, 사람들도, 교통 체증도, 다이어트도, 소개팅도, 분리수거도, 이불 빨래도, 식사메뉴도 저 멀리 떠내려갔다. 아니, 그것들은 땅에 남아있고 윤이가 저 바다 깊은 곳으로 떠내려갔다. 윤이는 힘을 주지 않는다. 그 물살이 고맙게 느껴졌다. 윤이는 참으로 오랜만에 핸드폰을 켜서, 남은 계약일 동안의 월세를 모두 지불했다.



윤이는 반나절을 꼬박 걸어 서해에 도착했다. 인어공주처럼 하반신이 물고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때 맞춰 해가 바다 밑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윤이는 해를 향해 걸었다. 물에 닿는 곳마다 비늘이 오도도 살아났다. 바다의 짠물이 피부로 스며들때마다 피가 도는 걸 느꼈다. 땅에서 받아본 적 없는 환영을 받는 걸까? 고향에 돌아온 걸 반겨주는 걸까? 바다는 그렇게 계속 윤이를 끌어 당겼다.


이윽고 바닷 물이 원래 명치였던 곳까지 차오르자 헙! 한번 숨을 참았다. 아, 윤이는 해방감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 해방감은 짠 맛이다.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다시 한번 숨을 참는다. 그리고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 .. 풍덩! 
온 몸을 바다에 담궜다. 윤이는 그렇게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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