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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랑이 Aug 15. 2021

유럽에선 한식이죠!

밥 찾는 아이 입에 밥을 넣어주기 위한 고군분투기

지노는 참 효자였다.

50일부터 통잠을 자고 잠도 잘 자고 잠 양도 많고 수유도 잘했고 이유식도 밥도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잘 놀았고 잘 쌌고 2돌이 넘은 무렵 기저귀를 거부하길래 벗겨놨더니 금방 변기를 사용했다. 말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빠르게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해서 4살이 되었을 땐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가능했다. 그래서였을까


지노가 34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지노와 함께 단 둘이 스위스로 15일 여행을 떠났다.


"유럽 가면 애기 밥은 어찌나!"라는 시어머니 말씀에

"어머님. 거기도 다~ 사람 사는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던 나는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다.


지노는 진짜 뭐든 잘 먹었다.

특히 빵을 잘 먹었다.

5년 전에 가봤던 유럽을 생각해보면서

'유럽은 빵이 참 맛있었지. 가서 빵을 실컷 먹여주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 한국식당이나 한국 식재료 없는 곳이 어디 있냐며 대도시 가면 햇반도 팔고 쌀도 팔고 아니면 리조또용 쌀도 마트마다 있으니 가능하다! 내가 애 밥만 3년을 차렸다! 뭐라도 먹이면 되겠지.라는 생각하에 나는 유모차를 가져가야 하니 움직임을 쉽게 하기 위해서 캐리어 하나만 끌기 위해 햇반도 하나도 넣지 않고 찹쌀 두 컵, 누룽지만 2 봉지, 매실장아찌 작은 이유식 통에 하나, 불고기 양념을 조금 담은 약병만 챙겨 넣었을 뿐이었다.


12시간 비행기 탑승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평소 영상 노출을 많이 안 안해서 "이곳에서 지노가 보고 싶은 영상 다 봐~"라는 엄마가 준 자유에 지노는 매우 신나하며 로보캅 폴리에 빠져 모든 폴리 시즌을 섭렵하며 비행기에서 나오는 키즈밀을 잘 먹으며 잘 도착했다.


도착하니 한국 시간으로 새벽

지노가 빵을 먹고 싶다고 해서 빵집에서 빵을 먹였다.


한 두입을 먹더니 안 먹겠대.

피곤하고 그래서 안 먹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이 여행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한 끼를 빵으로 먹인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날 최소 1끼 이상 밥을 먹였었다. 아이에게 가장 익숙한 식사가 밥과 반찬, 국이었고 아이는 그걸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막 내린 취리히에서는 취리히에 사는 친구 리가 있었기 때문에 이틀 정도 친구 집에서 밥도 먹고 현지식도 먹으면서 적응을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해서 숙소에 묵자 바로 지노에겐 이 말이 터져 나왔다.


"나 밥 먹을래. 밥 줘."

"자, 오늘은 이 빵이 밥이야."

"아니 이이! 빵 말고 밥을 주라고! 쌀 밥!"


엄마. 미안해요.

엄마가 햇반과 라면 싸간다고 했을 때 현지식을 먹으라고, 그것이 여행이라고 말하던 딸내미는  

자식이 밥을 달라니 밥을 줄 수밖에 없네요.


설상가상 한국 식료품점은 내가 가는 코스에선 취리히뿐이었는데, 친구랑 놀다가 이러다 저러다 보니 갈 시간이 애매해져서 계획했던 햇반도 사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지노에게 하루 한 끼는 무조건 밥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걸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침은 누룽지를 아껴서 1인분만 끓인다. (누룽지는 소중하니까요.)

매실장아찌, 계란 프라이, 소시지, 샐러드 야채 등 과 함께 지노를 먹인다. 애가 남긴다? 그럼 남는 게 있으면 내가 그걸 먹고 나의 나머지 배고픔은 빵으로 채운다.

마트에서 생닭다리를 사왔다. 굽는 요리는 안되고 물로 끓이는 요리만 하라고 써진 숙소에서 닭다리와 마늘을 넣고 팔팔 끓였다. 소금과 찹살을 넣는다. 닭 살을 발라준다. 닭 죽이 된다. 저녁과 다음 날 아침에 닭죽을 먹인다. 여행 내내 이 닭죽을 한 4번쯤 끓인 거 같다. 역시 한국인은 마늘이 들어가야 잘 먹는구나. 그건 4살 짜리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라켄으로 이동했을 때는 5일간 호스텔에서 묵었는데 루체른에서는 원룸형이어서 밥을 하며 아이를 돌보기 괜찮았으나 호스텔에 오니 방 따로, 주방 따로, 식사 장소가 다 따로였다. 아이가 어리니 혼자 방에 둘 수도 없고 화구 5개가 나란히 쫙 펼쳐져 있는 주방에서 4살짜리를 서 있게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 호스텔 주방 근처에 놀이방이 있었는데(주방에서 약 5미터 떨어짐) 거기에 애를 넣어두고

"엄마가 금방 올게! 좀 만 기다려!" 하고 문을 닫았다.

아이 혼자 열 수 없도록 무게가 좀 있는 문이었는데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드니 지노가 바이 바이 하며 손을 흔들며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길래 조금은 안심하면서 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바쁘게 누룽지를 끓이고 사온 소고기를 구워서 후다닥 놀이방으로 가보니

왠 모르는 이모랑 놀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울고 있어서 제가 같이 있었어요. 밥 하고 계신 거면 제가 여기 있을 테니 얼른 하고 오세요."

"엄마, 이 이모가 놀아줬어."

정말 그녀는 천사였지.

다행히 낯가림이 별로 없는 아이여서 그런 식으로 5일간 이 집, 저 집, 그 집으로 놀러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노를 귀여워해 줬다. 소시지 먹고 있는 삼촌들 근처로 가서 앉아서 입 벌리고 소시지를 받아먹지 않나. 테이블 축구게임을 하고 있는 이모들 옆에 가서 자기도 한다고 깔짝깔짝 하며 놀지 않나.

지노의 들이댐 덕에 금방 사람간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져서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냥 데웠을 때 맛있는 피자가 무엇인지 어떤 소시지가 구웠을 때 맛있는 지도 배울 수 있었다.

우리 엄마 연배 정도로 보였던 한 한국인 이모는 혼자 배낭 메고 여행 중이신데,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내가 저녁에 밥 하는 걸 여러 번 봤는데 짠하다며 하루는 저녁을 자기가 차려줄 테니 놀이방에서 놀고 있으라고 하시더니 고기를 구워주셔서 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지노랑 함께 저녁에 배부르게 먹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 덕에 다음 해에 남편과 지노와 함께 떠난 30일 여행에서는 무언가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우선 쌀을 챙겼다. 사람이 3명이니 무조건 밥을 한 끼는 해 먹는다는 각오로 임했다. 저녁엔 냄비밥을 하고 아침엔 남은 누룽지로 누룽지를 끓여서 아침에 먹었다. 놀 때는 김밥이지 라는 생각에 김밥김과 단무지를 챙겨가서 점심에 남편과 아이를 먹일 김밥을 쌌다. 아이가 여행 중반엔 몸이 안 좋자 하루 푹 쉬면서 뼈가 붙은 소고기를 사 와서 갈비탕 비슷하게 끓여서 먹이고 마른미역을 챙겨 와서 사골 농축액을 넣고 사골 미역국을 끓였다. 한국에선 오히려 배달음식과 냉동식품을 데워서 저녁 한 끼 때우는 날이 많은 일하는 엄마지만 오히려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이름 모를 이 재료를 이용해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서 한식 비슷한 음식을 많이 만들어줬다.


그래서일까


지노랑 둘이 갔던 스위스 여행에서는 그 아름답던 경치도 기억에 남지만 정작 사진 한 장 찍지 않아 사진 조차 남지 않은 호스텔의 주방과 냉장고가 기억에 남는다.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다 다르지만 아이에게 주겠다고 작게 잘라서 소시지를 먹여주던 사람들의 그 상냥한 눈빛들이 기억에 남는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갔던 여행에서는 독일 마트에서 소시지가 종류가 너무 많아서 멘붕에 빠진 우리 부부를 도와주던 This is not salty. This is for kid.라고 말하던 독일 아주머니의 목소리나 아이를 먹일 거라고 하니까 그럼 이 고기 얇게 썰어줄까? 물어보던 마트 정육점 아저씨 모습도 기억이 남는다. 뉘른베르크에서 묵은 숙소에서 김발이 없자 종이 포일로 김밥을 싼 기억이나 가져온 단무지가 떨어지자 밥 찾는 아이에게 먹일 생각으로 대도시 아시아 마켓까지 차를 몰고 가던 남편의 땀 흘리던 모습, (트램과 일반 도로가 섞여있어서 시내 주행을 무척 힘들어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의 숙소가 4층이나 돼서 힘들었지만 커다란 주방창을 열면 숲이 가득 보여서 좋았던 기억이나, 실수로 밥을 좀 태워서 검색과 검색을 거듭해 그 냄비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애썼던 주방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아이랑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당연히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 하고 한식을 먹는 게 무척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여행가서 한식을 먹겠다는 엄마에게 핀잔을 하기도 하고 해외여행 가서 한식당을 한 번도 안 가본 걸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여행의 한 면만을 바라보는 생각이었다.  


한식을 유독 찾는 지노랑 여행하면서 비록 유명한 식당에도 못 가보고 남들은 무조건 먹는다는 그 나라 음식 같은 건 못 먹는 경우도 많았지만, 현지 마트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음식을 해 먹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모든   여행이었다.






그리고


여운을 해치는 7 아들의 4,5 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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