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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랑고랑 Sep 22. 2021

독일어 문맹자의 삶

방귀와송아지와 치약의 이야기

*제가 독일어를 전혀 모릅니다. 혹시 제가 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부탁드립니다. 제 멋대로 쓴 점이 있어서 다소 걱정이 되네요. 


한번쯤 인터넷에서 이런 짤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처럼 느껴지는 순간' 

아마 한국인 대부분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내가 영어를 잘하던지 못하던지 아마 영어가 모국어처럼 느껴질 것이다. 


난 지금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었을 때 긴장하지 않고 말할 수 있기에 나에겐 저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영어가 제2모국어 같은 느낌이다. 

사실 지금까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는 물론 아시아권 여행을 갔을 때는 그 나라의 말을 잘 몰라도 어디에서든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어디든 영어가 통했고, 그 나라 말 아래에 영어가 덧붙여 쓰여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금방 이해할 수 있었고 거기에 손짓 발짓을 동원하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독일 사람들 영어 잘해~라는 누군가의 후기와 함께 나도 영어 잘하니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독일어 단어 하나도 몰라도 돼.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가게 했었나 보다. 1달이나 가려고 생각했다면 그 나라의 언어에도 관심을 가졌어야 했었는데 말이다. 


독일에 늦게 도착해서 공항 렌터카를 인수한 남편 차를 타고 지하에 있는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갔을 때부터 우리는 바로 독일어의 장벽에 느꼈다. 


도대체 출구는 어디인가. 

어두컴컴한 공항 지하주차장을 헤매는데,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여긴 국제공항이란 곳이 EXIT라는 단어 하나 없는가. 영어는 세계 공용어 아니었던 거야? 

출구는 독일어로 무엇인가!! 

부랴부랴 사전을 이용하여 출구를 검색해보고 남편에게 외쳤다.

"아우스 강!! 아우스 강을 찾아야 해!!" 

Ausgang이라고 써진 단어 사전을 남편에게 들이밀며 그렇게 써진 곳을 찾아야 한다고 우겼으나, 아우스 강 따위는 없었다. 공항이라 가뜩이나 차도 많고 복잡한 데다가 우린 이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서 과연 숙소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무렵 굉장히 큰 표지판에 써있있었다. 

이렇게 

출처 : wikimedia

"여보! 저거인 거 같아! 아우스팔트! 왠지 fart!! 방귀랑 이름이 비슷해! fart도 밖으로 나가는 거니 저게 나가는 거 아닐까?"

"설마..!"

"아냐 아냐. 표지판이 큰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아. 저기로 가보자."

"공항 입구 아냐?"

"어.. 그런가? 방귀인데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냐?"

"방귀 아니라고!" 


방귀 근거에 신뢰를 하지 못하던 남편은 가보고는 잘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맞네?!" 하며 신기해했고 

우리는 어디든 가기만 하면 방귀를 찾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문맹자의 삶은 유독 정말 너무 많이 불편했다. 


영어 사용자인 나에겐 사실 유독 독일어가 글자가 불편했다. 

영어권에 없는 움라우트는 오히려 괜찮았는데, 

왜 자음들이 저렇게 다 붙어 있는데 중간에 모음이 없는 거지 

무엇보다도 왜 단어가 띄어쓰기가 안되어있지. 


언어의 다른 점 표현에서 나온 독일어의 긴 단어... 사실 잘 보면 콤비네이션 크래프트 웨건에 가까움 

영어나 한글이라면 띄어쓰기도 할만한 단어도 다 붙여 쓴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를 모르는 사람은 저 알파벳 개수만 보고도 기가 죽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에 사전 어플을 깔아 뒀음에도, 제대로 타이핑 치지 못해서 해석을 못하고 읽지를 못하는 사건들이 반복해서 펼쳐졌다. 구글 번역기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았는데, 한글로도 번역하면 이상하게 나올 때가 있지 않은가, 그걸 영어로 번역하는 게 더 낫다고 해서 해봤는데, 그 영어단어를 모르겠더라고....


읽기라도 할 수 있다면 아우스 팔트... 하고 칠 텐데 그렇게 치면 꼭 자음의 순서가 뒤 바뀌어서 검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시 보면서 알파벳 수를 세어가 보면서 뭐가 틀렸는지 찾아봐야 했다. 


누구나 외국에 가서 그런 경험을 한번쯤 해봤을 거 같다. 물이 달라서인지 여행 며칠 만에 머릿결이 나빠져서(흡사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포비처럼 됨) 헤어 컨디셔너를 사고 싶었는데, 도무지 뭘 사야 할지 몰라서 고민 및 구글 번역기만 주야장천 써보았다가 결국은 한국사람이 쓴 네*버 블로그 리뷰를 찾아서 비슷하게 생긴 제품을 사기도 했다. 아마도 소고기인 거 같아서 샀는데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무슨 부위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먹을 수 있겠지? 하며 두근두근 한 마음으로 사 왔는데, 친구 말이 왜 비싼 송아지 고기를 사 왔냐고 한적도 있고 말린 토마토를 좋아해서 샀는데 너무 짜서 먹을 수 없어서 에어비앤비에 편지와 함께 남기고 온 적도 있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여행 막바지에 친구 집에서 이틀 잤을 때의 일이다. 

"근데 이 치약을 왜 산거야?"

"어. 그거 지노거야. 마트에서 어린이용 작은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거 샀어."

"지노 5살이잖아. 이거 신생아용인데?"

"뭐?!"

알고 보니 난 1달 동안 이도 안 난, 젖만 먹을 신생아용의 치약을 부지런히 초콜릿도 먹고 과자도 먹어대는 어린이에게 썼고, 그 결과 그 어린이는 충치를 갖게 되었다. 


이런 실수들은 여행 중에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 같고 어쩔 때는 깔깔 웃으면서 즐겁기까지 했지만, 여행 내내 내가 문맹인인게 몹시 힘들었다. 읽을 수 없는 괴로움이 너무 컸다. 세탁기를 봐도 읽을 수 없어서 무엇이 표준 세탁인지 알 수 없었고,  간판을 봐도 읽을 수 없었다. 느낌표와 함께 케이블카 앞에 무언가를 알리는 종이가 붙어있는데, 직접 관리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번역기를 쓰고 사전을 써보아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독일과 스위스가 너무 좋아서 긴 여행을 시작했는데, 많은 것을 읽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제품이나 설명 밑에 정말 영어로 표현해준 게 참 많아서 외국인들 입장에선 편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덤으로 들었다. 얼마 전에 집 근처의 큰 공원에서 예쁜 조명을 달아놓고 달빛축제라는 걸 했는데, 며칠만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현수막 밑에 영어로 어떤 행사인지가 설명도 쓰여있었고, 영어 브로슈어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한글 아래에 영어로 표현하는 일이 많아서 당연히 다른 나라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게 나의 문제였던 거 같다. 독일은 왜 독일어 아래에 영어로 표현하는 일이 많지 않을까? 그래도 큰 문제가 없으니까 그러겠지?라는 생각도 함께 들면서 말이다. 


이렇든 저렇든 문맹자의 삶은 정말 힘이 들었고 많은 오해와 질문이 가득한 삶이었다. 


다시 몇 년 전에 산 독일어 기본 편 책을 보면서 코로나가 사라져서 다시 독일과 스위스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자신감 있게 읽어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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