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포스터만 만들어줬을 뿐인데
광주 학강초 학생자치, 이렇게 해봤습니다. (1)
2019년, 처음으로 학생자치를 맡게 되었다. 나는 생활자치부장이라는 직을 맡게 되었는데, 이름만 봐서도 생활이 더욱 메인이고, 자치는 곁다리 같은 느낌의 업무였다. 초임 시절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 선배교사님들에게 자주 듣던 이야기 중 하나는 "전년도 공문 참고해요" 혹은 "학교에 관련 공문 없으면 다른 학교에 비슷한 사례 있는지 요청해요" 였었다. 생활 업무는 매뉴얼이 확실히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서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매뉴얼을 따라 하지 않을 경우엔 심각한 경우 고소 고발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따라 하면 되었다. 하지만 자치는 달랐다.
2018년까지는 자치 업무가 교무나 연구부장 아래에 있으면서 시간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는, 막말로 선거만 치러도 되는 업무처럼 취급되곤 했었다. 하지만 점점 학교 내에서 자치 교육이 강조되고, 학교자치, 학생자치, 학급 자치라는 말이 중요시되면서 자치 업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자치 담당인데 선거만 해도 되는 걸까?
자치 업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의문을 1학기 내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교폭력이 8건 터지면서 혼란스러웠던 1학기가 지나가버렸다. 뽑힌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학생회 대의원들이 있었지만 1달에 1번 하는 회의 외에는 더 한 것이 전혀 없었다. 자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신 선거 부분은 학교의 전통(?)대로 전임 선생님이 하신 것과 동일하게 진행했다.
1. 계획을 세우고
2. (당시엔 별 활용도가 없던) 선거관리위원회를 1 반당 2명씩 차출했다.
3. 선거에 출마할 사람을 공약을 적은걸 받았다.
4. 포스터를 만들었다.
5. 방송실에 앉아서 1명씩 소견발표를 한다.
6. 선거 운동 기간을 준다.
7. 선거 당일 소견발표를 한번 더 하게 하고 강당에 학년별로 와서 선거를 하게 한다. (선관위가 처음으로 활동한다!)
8. 개표를 한다.
9. 누가 당선되었는지 발표하고, 당선증을 준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을 한 적이 있는데,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려고 결심한 당시 우리 집은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그거 돈 많이 드는데" 라며 질색하셨지만, 내가 그래도 나가고 싶다고 조르자 다른 친구들과 비교돼서 창피하지 않도록 엄청 노력해주셨었다. 포스터에 붙일 사진을 위해 사진관에 가서 사진도 찍었고, 사진관에서 사장님과 잘 이야기해서 해리포터와 합성한 (당시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이 처음으로 개봉했을 때였다.) 포스터도 하나 만들어주었었다. 당시엔 내가 회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 엄마가 해주신 노력이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 탓인지 누구나 생각이 있다면 부담 없이 선거에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2019년 1학기에 한 선거가 전임 선생님이 진행한 것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내가 포스터를 만들어줬다는 것뿐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그냥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만들어줬다. 하루 동안 고생해서 만들어 칼라 인쇄기가 가장 크게 뽑을 수 있는 A3로 뽑아 기호 번호 순서대로 붙여주었다. 주변 선생님들께서 어쩜 이런 생각을 했냐며 일괄로 만들어내니 보기 좋다고 하셨다. 또한 후보 아이들과 학부모님들도 선거 나간다고 하니 포스터 만들 생각에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한결 수월해졌다며 좋아하셨다. 그 전엔 포스터의 디자인과 화려함에 집중하던 아이들(유권자들)이 포스터가 동일하자 그 안에 들어간 공약을 읽어보면서 어떤 공약이 좋냐, 안 좋냐는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업무를 하면서 전임자와 준해서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조금 더 생각을 해서 바꾼 작은 것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나는 2학기에 하는 선거는 하나 더 다른 점을 추가하고 싶어졌다. 대통령 선거를 하면 꼭 하는 그거 있지 않은가. 보고 나면 저 사람은 진짜 아니다, 그 사람을 뽑아야겠다. 하기도 하고 욕과 칭찬이 난무하는 그것 말이다.
바로, 토론회를 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