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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택근 Sep 26. 2021

Life in Scotland Episode 6

택근아 학교 가자

'21. 9.20.(월) -> 개강 첫날이다. 입학 주라고 해서 이번 주에 학생증도 받고 교수님, 학생들도 만난단다.

다시 학교에 오다니. 대학교 졸업하고 다신 학교에 안 가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재입대한 것 마냥 이곳에 와있다.

날씨 좋다.
스시, 야채, 과일 심지어 육류 모든게 다 한국보다 싼 것 같다.

기숙사에서 나와 쭉 3분 정도 걸어 내려온 후 우측으로 꺾어 2분 즈음 걸으면 Tesco(홈플러스 같은 곳)가 있다. 냉장고 마냥 필요할 때마다 가서 꺼내서 이것저것 사도 되겠다. 신기하게도 한국보다 과일이며 육류 모든 게 다 싼 것 같다. 과일이 생각보다 싸서 한국에서 비싸서 잘 안 먹던 과일들도 자주 챙겨 먹을 것 같다. 닭 허벅지 살 큼지막한 것 5~6개 정도 모아서 2~3파운드(원화로 3500~5500원 정도) 한다. 밖에 나가서 외식하는 것보다 재료들 사서 요리를 해 먹는 게 훨씬 싼 듯싶다. 앞으로 요리를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21. 9.21.(화) -> 개강 둘째 날. 아침 일찍 학교 가서 학생증을 받고 같은 전공 친구들을 만났다. 서먹서먹한 시간을 잠깐 보낸 후 다 같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각자 음료 하나씩 시키고 모여 앉았다. 역시, 아이스커피가 없다길래 나는 핫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못 마신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물론 근처 스타벅스에 가면 마실 수 있겠지만, 스벅 커피는 한국에서도 많이 먹었으니 새로운 카페에서 먹어보자는 이상한 욕심이 생겨서 참는 중이다.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고야 말겠다.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다. 처음 만나면 서로 이름과 나이를 얘기한다. 나이를 얘기할 줄은 몰랐다. 아마 내가 제일 늙은이인 듯싶다. 서른이지만 스물아홉 살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아니, 한국 나이로 서른이지 외국 나이로는 스물아홉이 맞으니 거짓말은 아닌 듯싶다. 스물일곱 살인 영국 명문대학(St Andrews)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친구도 있고, RCS에서 Junior 과정을 한 후 학사를 거쳐 이제 석사까지 이어서 하는 2000년대 생 어린 친구도 있었다. 스코틀랜드가 고향인 친구, 잉글랜드가 고향인 친구 그리고 한국이 고향인 나까지. 이렇게 6명이서(한 친구는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인데 비자 문제 때문에 영국에 못 와서 매 수업을 줌으로 듣기로 했다고 한다.) 1년 동안 같이 공부하게 될 것 같다.

고대하던 시간표가 나왔다.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에는 시간표를 직접 신청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했는데 여기 오니 알아서 시간표를 짜준다. 제일 먼저 찾은 건 공강인 날이 언제인지. 화요일이 공강이다. (시간표상으로는 공강인데, 다른 전공 수업들 그 시간에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 외 월, 수, 목, 금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수업이 있다. 물론 중간중간 점심시간이 있고 비는 시간도 있다. 이번 학기에는 사운드에 관한 연구, 지휘, 악보법, 편곡법 그리고 피아노 레슨과 같은 과목들을 배우게 될 것이라 적혀있다.




'21. 9.22.(수) -> 뮤지컬학과 석사 과정 학생들과 교수님들 다 같이 만난 날이다. 한국에서는 개강 O.T.라고 불리는 그것과 같다. 뮤지컬학과 안에 퍼포먼스(배우들), 안무 그리고 뮤지컬 디렉팅(음악감독) 이렇게 세부 전공이 나뉘어있다. 석사과정 학생들만 모으니 40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학교지만 미국,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 정말 많다. 동양인은 나 포함해서 3명 정도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인은 나 혼자다.

개강 O.T가 다 끝난 후, 다 같이 음식점으로 향했다. 30~40명 되는 학생들이 우르르 길거리를 걸어 다니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친구들 뭐하는 친구들인가 싶었을 거다. 근처 음식점에 들어간 후 다행히 구석탱이에 자리가 넓게 있어서 테이블 따로따로 3~4명씩 모여 앉았다.

주문하고 계산하는 방식이 정말 신선했다. 한국에서는 서로 각자 메뉴 정한 후 주로 한 사람이 정리해서 주문을 한꺼번에 대부분 하는데, 여기는 각자 한다. 주문과 결제까지 직접 각자 한다. 음식이 나와도 나눠 먹는 것이 없고 각자 시킨 것만 먹는 분위기였다. 코로나 때문일까 싶기도 하지만, 한국과는 많이 다른 외식 문화에 재밌는 경험이었다.

정말 다양하고 각자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다. 각자의 나라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친구들이 모인 것이니 흥이 장난이 아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금방 지치고 기숙사 방에 들어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실용음악과를 나오고 음악만 하는 친구들과 지내왔는데 이 친구들처럼 연기와 노래, 춤을 추는 이들을 만나게 되니 긍정적인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배우들은 정말 알 수가 없는 친구들이다. 그들의 눈빛에는 온갖 감정이 담겨있다.

각자의 생각과 개성들을 존중하는 것도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고 알아가는 단계이니 서로 예의를 지키는 걸 수도 있겠지만, 각자 개인의 그 모습 자체들을 굉장히 존중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나는 이불 한 번도 빤 적이 없어. 그냥 청소기로 몇 번 먼지 빨아들이고는 끝이야.' 말을 하면 '그래, 넌 그렇구나.' 이런 분위기이다. 한국이었다면 이불을 한 번도 빤 적이 없다고? 더럽다며 막 놀렸을 것이다.


'21. 9.23.(목) -> 이곳에 온 후로 한국인을 마주친 적이 없다. 중국분들은 많이 마주쳤지만 한국인들은 못 본 지 오래다. 길가에서 한국말 들리면 왠지 엄청 반가워서 가서 먼저 인사할 것 같다. 박찬호가 홀로 미국으로 야구하러 간 후로 왜 투머치 토커라는 별명이 생겼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21. 9.23.(금) -> 오늘은 뮤지컬 배우 전공하는 친구들의 노래를 듣는 날이었다. 따로 리허설도 없이 신고식처럼 한 명씩 일어나서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데, 온몸의 털이 삐죽 설 정도였다. 첫 소절 딱 들으면 그냥 빨려 들어가는 그런 느낌.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다. 평소에 엄청 장난기 많고 밝고 시끄럽게 떠들던 친구들이 굉장히 슬픈 감정을 담은 노래를 하는데, 마이크도 안 대고 그런 성량에 그런 감정 전달을 한다는 게 정말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이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감정들을 몸소 다 느껴본 적이 있으며 그걸 기억해내어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한 재능이 있는 친구들처럼 보였다.

스코틀랜드 왕립 음악원 WALLACE STUDIOS
리허설 스튜디오

이곳의 교육방식은 한국에서 교육받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 음악 교육을 받았을 적에는 학생이 가지고 있는 것을 뜯어고치는 그런 교육 방식으로 가르침을 받곤 했다. 이게 전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교육방식의 하나일 뿐이고 이 학생이 지금 본인의 예술적 여정에서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꼭 필요한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어느 정도 잘 성장하는데에 이 교육 방식이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의 치명적인 단점은 '나'만의 것을 못 찾는다는 것에 있다. 공장에서 잘 만들어져서 나온 자동차처럼, 하자가 있거나 이상해 보이는 것들은 깎아서 깔끔한 좋은 상품이 나오도록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에 결과적으로는 악기 연주도 꽤 다들 잘하고 노래도 나쁘진 않지만 '나'만의 것을 찾지 못해 음악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여기에 와서 처음에 느낀 것은, 교수님들은 우리를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이기 전에, 또한 음악가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굉장히 한 사람 한 명 한 명을 존중해준다. 각자 가지고 있는 개성들을 통일화시키는 것이 아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색깔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길의 방향을 인도해 주실 뿐, 그것이 어찌 보면 이상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바꾸거나 고치려고 하진 않는다. (아마 학사 과정이 아닌 어느 정도 예술 활동을 해왔고 이미 뮤지션 혹은 배우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모인 것이니 이렇게 대하시는 걸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색안경을 끼고 살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해가 안되고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 색안경을 벗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니

그 사람 한 명 한 명 각자만의 아름답고 소중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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