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아마시아
그리 늦지 않은 아침에 호텔 카운터의 남자와 작별을 했다.
체크아웃을 하는 동안 이 호텔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그는 얇게 웃었다. 자신의 호텔에 딱히 자신이 없으면서도 이곳을 스스로 사랑하던 남자. 이 작은 호텔은 마치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작은 공방이나 시계탑 같았다. 이스탄불을 하루 종일 두 발로 걸어 다니다 발바닥이 아파질 때면, 어느샌가 언덕 위 낡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있는 이 호텔이 생각이 났다. 아무도 모를 그런 곳에 숨어있는, 따뜻한 불빛의 좁고 아늑한 보금자리. 그곳으로 돌아가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침대에 앉아 발바닥을 주무르면, 다음날도 틀림없이 힘차게 걸어 다닐 수 있겠지, 하면서.
그런 것을 그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저 무척, 무척 좋다고만 했고,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낯선 동양인의 인사치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즐겁게 웃었고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옮기는 나를 보며 작별 인사를 해줬다.
켄디네 이이 박. 작별 인사로 배워 놓은 그 말은 여러모로 자주 쓰게 되었다. 사물과 풍경, 음식만이 존재했던 내 여행에 사람이 등장하게 된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사람들과 대화 하나 없던 내 예전의 여행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덕분에 나는 서툴게 '작별'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나는 작별이란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내 캐리어는 무척 무거웠다. 거기엔 지난 여섯 달을 공사장에서 지내며 입고 썼던 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버린다고 버렸지만 그래도 남은 것들이 커다란 플라스틱 가방을 터뜨릴 듯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문득 터키에 일하러 오기 전, 친구와 남대문 시장에 들러 작업복과 작업화를 사던 그날을 떠올렸다. 평생 본 적 없었던 공사장의 풍경을 열심히 상상하며 이것저것 구입을 했었는데, 정작 제대로 쓴 것은 두꺼운 양말 말고는 딱히 없었다. 여러 번 입어보면서 허리 사이즈를 맞게 산 질긴 바지는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남대문 지퍼가 고장 나 닫히지 않았고(그래도 어떻게 대충 입고 다니긴 했지만), 안전을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샀던 크고 무거운 작업화는 현장에서 당일에 지급한 가볍고 튼튼한 작업화(그 작업화는 내 발 목숨을 한 번 살려 주었지)에 밀려 출근 첫날을 제외하면 한 번도 신어보지 않았다. 대부분 입고 지냈던 것도 현장에서 지급받았던 일체형 스즈키 작업복이었다.
결국 짐 덩어리가 되고 만 돈 덩어리들. 상상과 현실은 얼마나 다르던가. 내가 여행을 하며 감당해야 할 무게는 그런 간극의 대가였다.
아마시아로 떠나기 위해 터미널을 찾아가는 길에 하늘을 봤다. 습기를 머금은 구름들이 걷혀가고 파란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좋은 징조였다. 나의 아마시아는 맑아야 했다. 음울한 이스탄불의 기억을 한 번에 날릴 만큼 쨍하고.
이스탄불은 원래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북적거리는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과, 그들에게 아이스크림으로 장난을 치는 터키인들, 기름이 뚝뚝 흐르는 케밥, 그리고 마음을 녹일 듯한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는 모스크의 실루엣이 있는, 낭만적인 도시였다.
그러나 내가 보낸 5일 동안의 이스탄불은 뭔가 달랐다. 회색빛의 이스탄불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스크를 끼고 다녔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던 이스탄불 거리 특유의 향신료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다. 그것이 단지 코로나로 인한 봉쇄 때문에 죽어버린 거리 때문인지, 아니면 공사장 일을 끝내고 홀로 떨어져 나와 여행을 하는 내 상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상상 속에서 아마시아는 그런 쓸쓸한 감정과 동떨어진, 아름다운 낙원처럼 느껴졌다. 커다란 바위산과 예쁜 시계탑, 맑은 하늘과 구름의 고원지대. 아마시아가 내가 상상한 그 그림과 똑같기를.
터미널로 가기 위해 지상철인 트램을 타려고 했더니 역시 오늘도 교통카드가 말썽이었다. 그동안 편법으로 썼던 모든 기계에 갖다 대보기도 이젠 통하지 않았다. 모든 개찰구에서 빨간 표시와 함께 경고음으로 거절당하자 순간 그냥 뛰어넘어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다행히도 근처에 있던 역무원이 다가와 내 상황을 보더니 아주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근처에 역 사무실이 있으니 거기 가서 제대로 등록을 하는 게 어때.
그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사무실이 있었구나. 거기라면 분명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터였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도착한 역 사무실에는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셋 정도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내 사정을 듣더니 카드를 가져가고 여권을 가져갔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새로운 해시코드를 등록한 완벽한 교통카드를 갖게 되었다. 나는 카드를 들고 트램 역의 개찰구로 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가져다 댔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경쾌한 소리, 초록색 불빛과 함께 한 번에 통과되었다.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5일 동안의 여행 내내 나를 은근히 괴롭히던 문제에서 단숨에 해방되었다. 이제 당당하게 이스탄불 내의 교통수단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스탄불을 떠나게 된 바로 그날에.
어쨌든 무사히 버스 터미널인 '오토가르'에 도착한 뒤 아마시아행 버스가 있는 버스회사 사무실로 가서 표를 예약했다. 10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음 차인 11시 차를 타야 했다. 이스탄불에서 아마시아까지는 버스로 10시간 30분이 걸린다. 도착하면 아마시아는 깜깜한 밤일 것이다. 유럽행 비행기도 아니고, 버스여행이라고 하기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 시간을 버티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등받이를 눕히지 않은 버스 좌석에서도 쿨쿨 잘 자는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버스회사 사무실 2층에서 다음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 도시락 삼아 가져왔던 빵과 카이막, 꿀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에 숙소를 찾으며 봐두었던 빵집을 오늘 아침에서야 들렀었다.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연 식당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여기저기 잘 먹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처음 마주친 상점이라 기념으로 들어가 김밥 한 줄처럼 에크멕을 하나 구입했다. 터미널까지 오는 동안 빵은 가방 안에서 숨이 많이 죽어버렸고(오늘 만들어진 빵이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그렇게 맛있게 만드는 빵집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카이막과 꿀의 파워에 바로 존재감이 지워져버린 에크멕.
식사를 마치고 곧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생각보다 버스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마스크를 끼긴 했지만 제대로 착용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들과 나는 열 시간을 넘게 밀폐된 버스 안에서 숨을 나눠야 했다. 아마도 나보단 그들이 좀 더 불안했을 것이다. 외지에서 알 수 없는 바이러스를 들고 왔을지도 모를 이방인은 나니까. 나는 푹신한 좌석에 몸을 깊이 기댔다. 출발하자마자 잠이라도 잘 수 있을 정도로.
버스가 조금 달리자 창밖으론 흑해가 보였다. 실제로 보기엔 어느 바다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도 앱을 켜서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 배를 끌고 항해를 하며 도착했던 곳이었다. 나는 바깥에 실제로 보이는 바다보다 지도 앱에 보이는 그림 지도가 더 신기했다. 게임 속에서나 보던 그 자리에 파란 점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내 위치가. 그제야 나는 실감이 났다. 여행은 지금부터구나, 하고.
풍경은 일정했다.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 먼 거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을 보며 슬그머니 잠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할 무렵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30분 정도 정차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버스 밖으로 나와 힘껏 기지개를 켰다. 휴게소는 요란하지 않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유령처럼 스르르 각자 할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내가 할 일은 정해져있었다. 눈에 달라붙기 시작한 잠을 떨쳐내고 뭔가를 열심히 굽는 철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괴즐레메(기름에 구운 밀가루 전)를 파는 가판대였다. 하나를 주문했더니 기분 좋게도 아이란(묽고 짠 요구르트)도 세트로 딸려 나왔다. 밀가루전에 번들번들하게 도는 기름기를 보며 이런 건 맛이 없을 수 없지 하고 한입 먹었더니.. 좀 맛이 없었다. 오래전에 해놓은 걸 오래된 기름이 묻은 철판에 간단히 데워서 나온 그런 텁텁한 맛. 갓 만든 괴즐레메의 바삭하고 쫀득한 맛을 기대한 나는 터키의 첫 휴게소 음식의 퀄리티에 실망하며 간식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갔다. 약간의 포만감 덕분인지 언제 출발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금방 잠들어버렸다.
드문드문 깨어 창밖을 보면 낮은 구릉과 온순한 짐승의 털처럼 부드럽고 낮게 깔린 풀들, 몽실몽실한 나무와 습기를 흠뻑 머금은 구름들이 보였다. 꿈이 현실의 해상도를 얻게 된다면 꼭 저런 모습일 거라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들. 스스로 믿었던 대로, 나는 잘도 잤다. 그러는 사이 아마시아와의 거리는 성큼성큼 좁혀지고 있었다.
버스는 금방(내 체감으로는) 다음 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느새 하늘은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터키에서는 어떤 법이 정해져있는 모양으로, 서너 시간에 한 번은 반드시 이렇게 휴게소에 들러 일정 시간을 쉬어야 하는 것 같았다. 버스는 휴게소에 도착할 때마다 간단하게 물을 뿌리며 세차를 했다.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도 그렇고, 터키에서는 버스를 무척 귀하게 다룬다는 인상이 있었다. 씻기는 것은 버스인데, 유리창을 타고 맑게 흘러내리는 세찻물을 보니 내 기분이 오히려 깨끗해졌다.
마침 저녁시간이 되었기에, 저녁을 먹기 위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서 휴게소 안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로 뷔페식으로 늘어놓은 음식들 중에서 원하는 것들을 선택한 뒤에 마지막에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대학시절 학식을 떠올리며 소박하게 골랐는데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왔다. 리라가 폭락한 터키라도 휴게소는 비싸긴 비싼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된 식사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속을 든든하게 채워줄 닭고기 요리를 선택했다. 사이드로는 기름에 살짝 볶은 듯이 익힌 밥인 필라흐와 썰어둔 에크맥 빵을 샀다.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려다 주변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렌틸콩 수프인 메르지멕 초르바와 빵만 간단하게 먹고 있었다. 나도 나름 간소하게 선택했다 생각했는데 현지인들의 여행 중 저녁은 더욱 간소한 모양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꼭 저렇게 메르지멕 초르바에 빵을 먹겠다고 다짐하며, 상대적으로 풍족한 내 식사를 시작했다.
맛이라곤 특별할 것이 없었다. 닭고기는 심심한 느낌의 기름진 백숙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닭이란 건 국물을 내며 끓이면 다 비슷한 맛이 나나보다, 했다. 넓적다리가 태평양처럼 커서 시간 안에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만 빼면. 필라흐는 터키에서 오랫동안 먹어온 바로 그 맛이었다. 살짝 간이 되어 있어 반찬을 곁들여 먹기보다는 그냥 필라흐만 숟가락으로 퍼먹을 때 딱 적당하다는 느낌이 드는 요리. 가끔가다 보면 같은 필라흐라도 '요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맛있게 만들어진 필라흐도 있었다. 버터의 향이 기분 좋게 나고, 밥알의 상태도 하나하나가 쫀쫀하게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간이 맛있게 된 필라흐. 뭐 그런 걸 휴게소에서 만날 수는 없겠지.
버스가 출발할까봐 초조해하며 얼른 식사를 마치고 나왔더니 불 꺼진 버스 앞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혼자서만 급하게 먹은 것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그건 이제 긴 버스 여행이 거의 끝나가고, 슬슬 아마시아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어두운 공터에 혼자 서서 밝은 불빛의 휴게소를 바라보았다. 터키인 가족들이 테이블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여전히 느긋하게 각자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쉰다. 그것이 터키의 휴게소였다.
식사를 마치자 그들은 마치 들리지 않는 신호라도 들은 것처럼 일제히 일어나 버스로 일사불란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올라타고 곧 버스는 불빛이 가득한 휴게소를 떠나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든든하게 채워 넣은 음식 덕분인지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도로는 이미 깜깜했지만 나를 비롯해 잠을 자는 사람은 없었다. 목적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들뜬 작은 목소리들이 어두운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오갔다.
시간은 빨리 갔다.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열 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코너를 돌았다. 그럴 때 느껴지는 원심력과 함께 버스의 공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버스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때 특유의 느낌이다.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어두운 바위산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도착한 곳은 아마시아 근처의 터미널이었다. 아마시아까지 바로 가는 버스인 줄 알았는데 아마시아로 진입하려면 교통수단을 하나 더 거쳐야 했다.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아마시아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꽤나 깊어진 밤이었고 내게는 이제 와서 아마시아 시내로 진입할 적절한 교통수단을 찾아낼 힘과 시간이 없었다.
때마침 구원처럼 택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여행지에서, 특히나 이 정도로 긴 거리에서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는다는 게 내 신조였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택시를 탔고 아마시아에 예약해 둔 내 숙소의 이름을 말했다. 기사는 그것만으로도 알겠다는 듯 알아서 택시를 몰았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지금은 하루의 가장 피곤한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 하루 대부분을 그랬듯이, 유리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밖의 모습들을 의미 없이 멍하니 바라보며 목적지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하루 종일 어항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택시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미로 같은 어느 골목길 한가운데서 차를 세우고 도착했다고 알렸다. 돌로 된 도로와 돌로 된 벽들이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물들어 있었다. 어딜 보아도 내가 찾는 숙소 건물 같은 곳이 없어서 물었더니 그는 조용히 담벼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숙소의 이름인 'melekli konak'이라는 글자가 화살표와 함께 써져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작은 기적 같았다.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한참을 온 것 같은데, 그 끝에 도달한 곳이 지도 위에서 연필심으로 콕 찍은 것처럼 정확한 '그곳'일 때의 기분. 나는 그에게 택시비로 33리라를 지불했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무척 싼 가격이었다.
택시가 사라지고 나니 거리는 조용했다. 주황색 불빛으로 가득 찬 길을 걸으며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비록 풍경이 어둡고 보이는 것이라곤 가로등 빛에 물든 건물들뿐이지만, 나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서 숨길 수 없는 산악 도시의 차가운 산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몹시 설레게 했다. 나는 마침내 아마시아에 도착한 것이다.
일단은 무거운 짐들을 숙소로 옮겨두는 것이 중요했다. 숙소를 찾아 걸으며 나는 자꾸만 입가에 올라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쨌든 본격적인 여행은 내일이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지금이었다. 유예된 행복의 행복감. 나는 내일 만나기로 했던 아마시아의 실루엣을 몰래 훔쳐보면서 즐거워했다.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의 그 순간인 것처럼, 어쩌면 아마시아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도 지금일지도 몰랐다.
숙소는 생각보다 좋았다. 커다란 2층 호텔이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이 없는 건물 특유의 썰렁한 기운이 돌았다. 나를 반기는 종업원 남자의 목소리와 거기에 답하는 내 목소리가 작은 로비에 울렸다. 코로나 때문인지 손님이라고는 나 하나뿐인 듯했다. 소박한 사치스러움을 혼자 느꼈다. 이 큰(저번 호텔에 비하면) 건물이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서 돌아가는구나, 하고.
종업원 남자는 카운터에 가까운 1층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가 문을 열었고 나는 내가 예약한 방과 마주했다. 목재 문과 바닥, 틀로 장식이 된 방을 보자 바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런 곳에 묵어도 될까'라는 것이었다.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에 숙소 앱을 뒤지면서 아마시아의 가장 싼 호텔을 찾았다. 사진으로 얼핏 보기엔 아담하고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는데, 리뷰에 '마구간 같습니다'라는 말을 보고 바로 다음 호텔을 골랐다. 그렇게 아마시아에서 두 번째로 싼 호텔을 예약했을 뿐이었는데, 여태껏 지냈던 호텔 중 가장 넓고 쾌적하고 예쁜 방이 잡혔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방의 한편에 흔들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열 시간 반 동안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서 온 나지만 이건 자발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십분 정도 여기에 느긋하게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짐을 풀고 의자에 앉았더니 복잡하게 생긴 구조와는 다르게 아주 조금씩만 앞뒤로 왔다갔다했다. 멍하니 흔들거리면서, 나는 이 의자가 있을 법한 공간에 대해 상상했다.
한 손으로 가볍게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한 권짜리 추리소설에는 어떤 산장이 나온다. 물론 그 산장은 폭설과 같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고립이 된다. 산장은 짙은 색깔의 나무로 이루어져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실내가 꽤나 어둡다. 유일하게 밝은 곳은 산장의 창가다. 삐걱거리면서 열리는 나무틀 창문 옆에는 이 산장에 들리는 여행객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져온 책들을 놓아두는 책꽂이가 있고, 그리고 그 옆에는 그것들을 차분히 앉아 햇빛에 의지해 읽을 수 있는 흔들의자가 하나 있다. 그 의자는 책을 읽는 동안 활자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만 앞뒤로 움직인다. 산장에 고립된 인물들 중에는 항상 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나이는 가장 많고, 성별은 상관이 없다. 산장이 살인사건으로 인해 떠들썩해지며 사람들이 신고를 한다고 전화선이 잘린 전화기를 들고 소리를 치거나 현관 앞에 실시간으로 쌓이는 눈을 치운다고 숟가락질 같은 삽질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의자 위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 사건에서 한 걸음 떨어진 것처럼 그들을 관망한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에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났을 때, 그 사람은 소설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람일 것이다. 아마 모든 사건의 배후거나, 혹은 그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탐정이거나.
흔들의자에서 비롯된 추리소설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나는 일단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며 열 시간 반 동안 버스에서 누적된 '찌듦'과 아직까지 몸에 남아있던 '이스탄불'을 말끔히 씻어 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이전의 모든 것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새로운 도시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내 여행습관이었다.
수증기를 흡수하는 원목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화장실에서 몸을 씻는 동안, 나는 참지 못하고 자꾸 창문을 열어 바깥의 경치를 구경했다. 어둠 속에 커다란 암석산의 실루엣이 멀지만 분명하게 보였다. 아마시아에 도착했어. 나는 그 말을 아까부터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되풀이하면서 말하고 있었다.
참지 못했다기보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의식처럼 나는 아마시아의 밤거리로 나섰다.
내 머릿속에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유럽여행을 하던 때의 기억이 여전히 있었다. 밤중에 로마에 도착했고, 숙소에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고, (그때는 참지 못하고)후드티를 입고 친구와 함께 밤거리로 뛰쳐나왔다. 사소한 곳에서도 웅장한 건물들을 보며, 나는 샤워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붉은 얼굴로 숙소 앞 쓰레기통 옆에 서서 힘껏 로마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친구는 그런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찍은, 지금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찍혀 있는 첫 유럽여행 사진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 의식이 시작된 것이리라.
아마시아 밤거리의 첫인상은 그랬다. 머리가 찢어지게 맑은 산공기의, 디즈니랜드. 예쁜 유럽식 집들과 탑에서 나오는 주황색 불빛들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널찍하게 흐르는 강의 잔잔한 수면 위에 장식처럼 비치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맑은 날씨의 아마시아였지, 밤의 디즈니랜드를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이 트레일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또 한번 머리로 말했다. 아마시아 도착했어.
몽환적인 밤의 나들이는 이대로 가다간 아마시아 여행을 제대로 시작해버릴 것 같다는 내 자각과, 늦은 밤 코로나 통금 시간에 외출 인원을 단속하고 있는 것 같은 경찰차들에 의해 끝나게 되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몸에는 어느새 아마시아의 차가운 산공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버스를 탄 열 시간 반 동안 나는 끊임없이 잤지만 이 하얀 침대 위에서도 무척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나는 아마시아를 여행할 것이다.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은 꿈이지만, 꿈에도 그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