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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Mar 06. 2022

일곱째 날, 눈 뜬 곳은 다른 세계

아마시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


혼자였지만 넓은 방에는 본 적 없는 밝은 햇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지루해진 읽던 책을 버려두고 전혀 다른 소설의 첫 페이지를 새로 펼치는 것처럼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닫힌 문 너머로 느껴지는 호텔의 복도에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커다란 호텔 건물, 아니 어쩌면 이 산속 도시에 나 혼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도 흘러가지 않고 멈추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거리의 행인, 자동차, 그리고 시간, 그 어떤 것도.


나무로 된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때 드는 특유의 쾌적한 기분이 있다. 물을 틀어 서서히 젖어가는 나무벽에서는 싱그러운 식물 냄새가 나고, 방충망도 없이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차가운 산공기가 섞여 들어와 뜨거운 물에 달궈진 어깨를 간헐적으로 시원하게 식혀 준다. 더운 수증기에 갑갑할 때면 창문 가까이로 가서 맑은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 그만이다. 나는 마치 어제 산 아이폰을 다시 꺼내보는 것처럼, 조그만 창밖으로 아마시아의 풍경을 다시 한번 훔쳐보았다. 맑다. 상상으로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맑다. 거칠 것 없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대한 암석 산을 보다가 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들뜬 마음으로 밖으로 뛰쳐나가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즐거운 샤워가 끝나고, 조식을 먹기 위해 반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부엌의 의자에 종업원인 남자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슬슬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방을 안내해 주면서 그가 조식을 언제 할 거냐고 물었었는데, 나는 그저 8시? 9시? 일어나는 대로,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해버렸다. 덕분에 그 시간을 꼬박 기다렸던 것 같았다.


그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햇볕이 드는 식탁에 앉아 기다렸다. 호텔엔 그와 나 둘뿐인 것 같았다. 큰 건물이 온통 비어있다는 적적한 느낌이 들었다.

터키에서 아침 식사인 '카흐발트'를 처음 접했을 때 꽤나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일반적인 조식과 구성이 비슷하면서도, 잼, 올리브, 빵, 버터, 달걀, 샐러드, 치즈, 그 모든 것이 싱그럽고 풍족하게 차려져 나오는 걸 아침마다 마주하게 되면 술탄이 부럽지 않았다. 카흐발트는 모든 숙소마다 비슷하면서도 유의미하게 구성이 달랐고, 그걸 하나하나 기억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 기대와는 달리, 이곳의 카흐발트는 꽤나 조촐했다. 가장 큰 특징은 주식으로 삼을 빵 대신 납작한 팬케이크가 나왔다는 것인데, 팬케이크라기보다 전에 가까울 정도로 기름을 많이 먹여 구워서 나왔다. 평소라면 기름이 많을수록 좋아했겠지만 오늘은 기분이 신선해서 그런지 기름이 영 끌리지 않았다. 몇 가지 잼과 푸석푸석하고 짭짤한 두부 모양의 '베야즈 페이니르(하얀 치즈)' 치즈, 달걀, 언제나 나오는 차, 그리고 기성품 같은 비스킷들은 풍성하다기보다 어딘가 힘이 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내게 호텔 조식이란 것은 밖에서의 한 끼와 맞바꿀 정도의 가치가 있어야 했다. 아까운 허기를 애매하고 뻔한 음식으로 낭비하느니, 차라리 무료로 주는 조식을 거르고 근처 가게에서 간단하고 이국적인 아침식사를 사 먹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지금의 여행에서는 코로나와 라마단이 겹친 덕분에 밖에서 이 시간대에 문을 연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뭔가 아쉬운 식사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지갑과 핸드폰만 간단하게 주머니에 넣고 다른 짐을 챙기지는 않는다. (대체로 항상 그랬긴 했지만)오늘만큼은 양손과 발걸음이 가벼워야 했다. 한참을 돌아다녀야 할 테니까. 간단히 먹은 아침 덕에 몸도 가벼운 것 같았다. 호텔의 앞마당에서 어제 버스여행을 한다고 한참을 쉬었던 발목을 뱅글뱅글 돌려보고, 어깨도 한번 쭉 편 뒤에, 나는 아마시아를 향해 호텔을 나섰다.

훔쳐볼 필요 없이 제대로 마주한 아마시아는 높고, 맑고, 웅장하고, 예뻤다. 나는 길을 걷다 참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360도를 돌며 내 주변의 파노라마를 눈에 담았다. 아무리 눈에 담으려 해도 다 담기지 않는 수많은 것들, 암벽산의 웅대한 주름과 상쾌한 하늘과 생생한 나뭇잎과 아기자기한 색의 지붕과 도로에 내리쬐는 선명한 햇빛과 또렷한 그림자들이, 내 눈으로 사정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둥글고 완만한 것이 아니라 험준하고 들쑥날쑥한 산들에 둘러싸인 도시는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어딜 보아도 같지 않은 풍경, 그러나 하나같이 눈이 즐거운 광경. 아마시아라는 도시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걸었고, 동시에 마음 한편으로는 실망할 거라는 걱정도 숨겨 놓았었지만, 나는 내 '얄팍했던' 기대가 (좋은 의미로)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힘껏 소리 지르면 그 방향마다 서로 다른 모양의 메아리가 울리며 돌아올 것 같은 다양한 공간감. 나는 먼 산을 보며 힘껏 소리 질렀지만, 그것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지나가는 터키 현지인이 보기에 나는 그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걷고 있는 까만 옷의 동양인이었다.

조금 걷던 나는 어느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암석산이 뒤로 보이는 시계탑 앞이었다. 시계탑과 암석산. 이 두 가지가 찍힌 사진을 보고 아마시아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불쑥 가지게 되었고, 지금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원하는 걸 생각하고, 그것을 그대로 한다. 나는 그 법칙을 몹시나 싫어해왔다.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머릿속으로 그것에 대한 만족감을 80%는 상상해버린다. 그런 상태로 실제 그것을 접하게 되면 겨우 20%도 안 되는 만족감만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기대란 것은 언제나 기대를 하는 순간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러던 내게 아마시아의 시계탑과 암석산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리라고 생각했고, 그리고 이곳에 도착해서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그것은 100%를 넘어선, 110%의 만족감이었다. 만약 100%였으면 아마도 나는 실망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과 꼭 그대로였을 것이기에. 그러나 아마시아는 달랐다. 그것이 내가 생각을 덜 하려고(스포일러를 덜 당하려고) 스스로를 관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이 그것을 넘어설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생각을 해본 결과, 나는 내가 볼 것을 예상을 했지만, 내가 그것을 보고 느낄 감정까지는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내 머릿속에는 달랑 이 풍경이 담긴 사진 한 장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쓸쓸하고 어두운 이스탄불에서 나는 품속에 겨우 사진 한 장만을 집어넣어놓고, 그 사진을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 다니기만 했었다. 그 풍경이 실제로 내게 줄 온도와 냄새와 밝음은 전혀 상상하지 않은 채. 그리고 이렇게.


마침내 도착했어. 나는 그게 어릴 적 읽던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대사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마시아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예실으르막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예실(녹색)'이라는 말처럼 강은 광택이 나는 초록 빛깔이었다. 나는 강을 따라 걸으며 산과, 집과, 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포근해진 공기는 겨울의 그림자가 거의 사라졌다는 걸 알려줬다. 나는 공사장의 300미터 탑 위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여섯 겹의 옷을 뚫고 들어오는 바닷바람에 천막 뒤에 숨어 벌벌 떨던 그 기억이 어느새 저 먼 앨범 너머로 사라져버렸다는 걸 알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겨울이었다. 결코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육 개월이라는 시간은 이제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페이지로 넘어가 있었다. 결코 뒤집을 수가 없는 무거운 페이지 너머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고생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알바생이 아니라, 이제는 여행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라고.

여행자가 된 내 다음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아마시아 중앙의 암석산을 보았을 때, 거기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 가지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암벽에 '새겨진' 동굴. 그리고 산꼭대기의 성.


오픈 월드 RPG 게임을 할 때면, 저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헐레벌떡 뛰어 저런 곳에 도착하면 거기엔 항상 누군가가 있었다. 은거하고 있는 노인이나 근방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나운 짐승, 혹은 죽어가는 경비병. 그런 것들은 언제나 내가 그곳에 발품을 팔아 갈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특별한 장소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게 무언가 상호작용을 할 것이다. 원수를 갚아 달라거나, 혹은 숨겨진 보물을 주거나. 어딘가에 살고 있는 애인에게 마지막 유품으로 회중시계 같은 것을 전달해 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현실은 게임과 달랐다. 거기엔 아마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연히 사람을 마주친다면 그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이거나, 입장권을 파는 공원 관리인이거나, 우연히 지나가던 강아지. 겨우 그 정도겠지.


그래서 현실의 나는 뭔가 다른 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뭔가를.


그것이 뭔지 알기 위해, 나는 저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미로도 빠져나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오른쪽 벽에 손을 댄 채로, 어떤 갈림길이든 오른쪽으로만 따라가는 것.' 벽면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출구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그 미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떠올릴 수 있는 바로 그런 모양의 미로여야 하겠지만.


어딘가를 향하는 내 여행길은 언제나 미로와 비슷하다. 저 멀리 동굴과 성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정확히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담벼락이 높은 학교나 누군가의 가정집, 군사지역 같은 곳에 막혀 더 나아갈 수 없기 일쑤다.


그럴 때면 당황하지 말고 신중하게 '미로의 법칙'을 생각하며 벽면을 따라 뚝심 있게 걸어가기만 하면, 결국은 원하는 곳에 이르는 길을 결국은 찾게 된다.


동굴이 있는 암벽 쪽으로 한층 더 갈 수 있게 뚫려 있는 굴다리를 발견하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면서, 나는 문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터널을 경계로, 이쪽과 저쪽 세계는 분명히 다르다. 그 세계를 잇기 위한 터널.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야는 어두워지고, 공기는 서늘해진다. 야외에서 걸을 때는 듣지 못했던 사소한 발자국 소리도 갑자기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터널 그 자체가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엔딩에서, '언제나 몇 번이라도'라는 OST와 함께 흘러가는, 치히로가 지나온 여러 장면들 중에 터널의 모습도 잠깐 나온다. 그 엔딩 크레딧은 어떤 극장에서든 크레딧이 올라오기만 하면 바로 일어서려고 하는(많은 경우 동행 때문에 실패하지만) 내가 살면서 본 것 중에 가장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는데, 감미롭고 적적한 목소리의 음악과 함께 치히로가 그간 지나왔던 장소들을 한 번씩 지나가며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나는 그 뒤로 그 곡을 mp3에 넣고 며칠도 안 돼 백 번을 넘게 반복해서 들었다. 사탕을 천천히 녹여먹듯이 그때의 여운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천천히 옅어지며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다른 장면이 아니라 언제나 그 터널의 풍경을 그린 일러스트만 떠올랐다는 것이다. 치히로의 부모님이 돼지로 변한 그 먹자골목의 풍경도 아니고, 너무나 인상적이라 판타지라도 꼭 가보고 싶었던 온천탕의 화려한 풍경도 아니라, 어째서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었던 그 터널 안의 풍경만이 떠올랐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건, 바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해리 포터에서 9와 4분의 3 승강장이 가졌던 그 매력처럼, 나는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어두컴컴한 통로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끌리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미끄럼틀의 작은 통로를 지날 때의 즐거움처럼, 혹은 워터 슬라이드의 동그랗고 긴 통로를 미끄러져 내려올 때의 쾌감처럼.

조금 '거창하게' 굴다리 통로를 빠져나와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마주친 것은 석굴로 통하는 공원의 매표소였다. 미로의 법칙은 결국 나를 올바른 목적지로 이끌어 주었다.


나는 무척 한가로워 보이는 매표소 점원으로부터 입장권을 하나 구입했다. 이곳 역시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그러니까 나 한 사람 외에 아무도 없는 공원을 거닐게 되었다.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흥미로워졌다. 바위 굴을 따라 뚫린 길을 걸어 올라가며 이런 게 진짜 여행, 아니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탄불의 셔터문 닫힌 거리를 우울하게 걷는 게 아니라. 물론 거기서도 매혹적인 빈 골목과 그 끝에 있는 천사 같은 걸 발견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땀을 흘리며 내가 굳이 찾아내서 의미 부여를 하는 즐거움이 아닌, 몸에 즉각적으로 와닿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누렸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은근히 높은 곳까지 올라왔는지, 문득 돌아본 곳에는 아마시아의 절경이 내려다보였다. 암석산과 초록빛 강, 유럽식 지붕의 예쁜 집들의 조합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조합이었다. 숨이 탁 트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 경치를 위해서 아마시아로 온 것이었다. 맑은 날에 맞추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일부러 하루를 더 보내고, 열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산의 중턱에 있던 석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튼 기대와는 달리, 물론, 거기에는 은둔한 현자도, 죽어가는 병사 같은 것도 없었다. 들어갈 수 없게 철창으로 막힌 얕은 석굴은 과거의 왕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그들은 터키와는 다른 왕조의 왕들이었다.


나는 7년 전의 터키 여행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반원형 극장 유적을 보면서, 터키인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역사의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우리와는 달리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따지고 보면 꽤나 복잡하기는 하지만)의 역사와 머물고 있는 땅의 역사가 달랐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오래되지는 않은 시기에 이곳으로 이동해왔다. 그들이 오기 이전에는 전혀 다른 민족이 살고 있었다.


내가 땅의 역사와 민족의 역사의 괴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느낀 것은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차나칼레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그리스의 중장보병인 호플리테스 피규어를 판매하고 있는 터키 전통복장의 터키인을 봤을 때였다.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역사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역사이기도 했다.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고 있는 성 소피아 성당과 마찬가지로.

공원에는 곳곳에 오래된 다른 유적들도 있었다. 공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지하통로는 쇠창살로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쇠창살이 없었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탐험 욕구가 불쑥 생겼다. 물론 실제로 쇠창살을 치울 수는 없으니 그저 상상으로만.


저 캄캄한 통로는 큰 기대를 품고 왔더니 불과 몇 미터 되지도 않아 '굴'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아까의 석굴들과는 달리, 정말로 끝을 알 수 없이 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방의 유적들 사이를 흐르던 지하수로였을까. 아니 어쩌면 훨씬 큰 규모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산꼭대기의 성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성에서부터 여기까지 내려오던, 고대 왕족의 비상탈출 통로는 아니었을까. 산꼭대기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생각하자 이렇게 사소한 입구에서 시작될 지하통로의 까마득한 길이와 규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눈앞의 이 지하통로는 사실 '통로'가 아니라 지하 창고에 불과하고, 겨우 다섯 발걸음만에 막혀버린 벽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지. 머릿속으로는 개미굴처럼 꼬불꼬불 점점 웅장해지는 어떤 지하통로를 상상하면서, 나는 암벽 동굴이 있던 이 공원을 빠져나왔다.

다음 목표는 산꼭대기의 성이었다. 방금 들렀던 공원은 저 성으로 올라가는 길과 연관이 없는 별개의 시설인 것 같았다. 험준한 바위산 위에 지어진 성을 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저 위로 올라가지.


산 위에 성이 지어져 있으니 어딘가 올라가는 길이 있는 건 분명하고, 그 올라가는 길이 눈앞에 보이는 가파른 바위 절벽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얼른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이 산의 왼쪽에 있나 오른쪽에 있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몇 걸음 이동하면서 각도를 달리해서 산을 올려다보았지만 어느 쪽이나 절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선택을 해야 했고, 그 결과에 따라서 오늘 일정이 등산 하나로 끝나버리게 될 수도 있었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갈림길 앞에 서서, 나는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갠달프의 지혜를 생각했다.


일행이 굴속에 들어선 것은 해가 지고나서였다. 중간에 잠깐 쉰 것을 빼고 계속 대여섯 시간을 걸었을 무렵 갠달프는 걸음에 멈추고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 세 갈래의 길이 나누어지는 아치형 입구가 나타난 것이었다. 모두 동쪽으로 방향은 같았으나 왼쪽 통로는 내리막이었고 오른쪽 통로는 그 반대로 오르막이었으며 가운데 통로는 매우 좁긴 했지만 평탄하게 이어져 있었다.

"여긴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군."

갠달프는 아치 밑에 서서 자신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혹시 방향을 알려 주는 무슨 기호나 표시가 있을까 싶어 지팡이를 높이 들어보았으나 그런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 <반지의 제왕>, J.R.R. 톨킨 -


산을 건너기 위해 선택한 모리아 광산의 복잡한 길에서 갠달프는 세갈래로 나뉘어진 통로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별다른 단서가 주어지지 않은 그 갈림길 앞에서 갠달프가 어떤 지혜를 발휘할 것인지 기대를 했었다. 아무것도 단서가 없는 순수한 세갈래길 중에서,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을까.


"불침번을 서면서 결정했소. 가운데 길은 예감이 좋지 않고 왼쪽 길은 냄새가 좋지 않아. 밑에 내려가면 틀림없이 썩은 공기가 있을 것 같소. 그래서 오른쪽 길을 택했는데 이젠 슬슬 떠나야겠소."



                                                                                        - <반지의 제왕>, J.R.R. 톨킨 -


갠달프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차이도 없어보이는 세갈래길을 눈앞에 마주하고도, 기어코 자신만의 어떤 이유를 찾아내어 하나의 길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나 역시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이는 이 갈림길 앞에서 어떤 이유를 만들어내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세갈래길에서 고민한 갠달프에 비하면 오른쪽과 왼쪽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훨씬 수월한 고민이었다.


갠달프를 흉내 내 잠시 고민한 끝에 나 역시 나름의 이유를 정했다.


산의 왼쪽 등성이는 살짝 각도가 완만한데 비해 오른쪽은 조금 더 가팔랐다. 왼쪽으로 가는 길에는 민가와 가게도 더 많은 것처럼 보이고 철길이 뚫린 모양도 좋았다. '관광지'라고 느껴지는 어떤 에너지는 왼쪽 길에 더 충만해 보였다.


그래, 산 위의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왼쪽이야.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왼쪽 길에는 예쁜 집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길을 따라가며 이어져 있었다. 건물과 물건들은 모두 화사했지만 그걸 구경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 길에는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사려는 사람들이 없는 물건들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내 정신이 온통 산 정상의 성에 가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음식점과 카페들도 지나치며 점점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던 내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또다시 어느 집 골목의 벽 앞이었다.


커다랗고 높게 비어있는 벽. 어째서 이런 벽을 볼 때마다 걸음이 멈추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망망대해를 보며 탁 트이는 한숨을 쉬는 그런 기분을, 나는 이렇게 텅텅 비어있는 벽을 볼 때마다 느꼈다. 아마도 이곳은 어떤 집이 있었다 사라진 자리일 것이다. 그 사라진 자리에는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딱 좋은(차만 없다면) 공터가 생겼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이곳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놀 거리로 가득했다. 충분히 평평한 바닥은 막대기나 돌멩이로 그으면 쉽게 어떤 룰을 가진 게임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모래바닥이었고, 그늘에 가려진 잡풀 속에는 잡기에 그리 징그럽지 않은 곤충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심심하다면 나무판자로 막아놓았지만 몸이 충분히 들어갈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저 문을 넘어서 폐가 탐험 같은 걸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 벽. 내가 이 동네의 어린아이였다면 나는 하루 종일 그 벽에다가 테니스 공을 힘껏 던지며 놀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 주인과는 원수가 되었겠지. 그러면 나는 아무 죄 없이 화가 잔뜩 난 그 옆집 주인아저씨를 어린 시절의 가장 큰 빌런으로 맘대로 생각하며 자라지 않았을까. 고길동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하면 어른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주변의 풍경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예쁜 집과 관광지스러운 가게들은 점차 사라지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 낡지만 푸근한 느낌을 주는 민가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씩 부는 모래바람 때문인지 약간 뿌옇게 느껴지는 이곳의 공기는 뭔가 그리운 것을 추억할 때 렌즈에 끼는 효과처럼 기분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유년 시절의 페이지에 불쑥 침입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그런 그윽한 유년 시절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두 아이를 보았다. 언니로 보이는 아이는 줄을 매단 스케이트보드를 끌고 동생과 함게 울퉁불퉁한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겨우 그것만으로도 몹시 즐거울 것이다. 바퀴 달린 판을 강아지처럼 드르륵드르륵 끌고 다닌다는 것은. 어느 날 부모님이 선물해 줬을 새것 같던 스케이트보드는 이 동네 특유의 흙먼지에 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희미해진 빛깔의 그 보드를 아이는 나중에 기억할 수 있을까. 그것을 끌어주던 언니가.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탔던 동생이,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불쑥 말을 꺼낼지도. 그때 스케이트보드 가지고 놀았던 거 기억나? 하고.

동네를 조금 더 걷다 보니 긍정적인 지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Kale(성) Yolu(길)라는 단어와 화살표가 그려진 표지판이었다. 불침번을 서며 고민했던 갠달프처럼, 내 선택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틈틈이 익혔던 짧은 터키어에 감사했다. 덕분에 내가 선택한 길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친 발바닥에 힘이 도는 게 느껴졌다.

산이 가까워질수록 시골마을의 분위기가 짙어졌다. 건물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옷차림도 불과 몇십 분 전에 보았던 세련된 마을 중심가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다른 마을, 아니 다른 국가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동물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집의 닭장에 숨어들어가 닭을 노리는 것 같이 보이던 고양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대로 굳었다. 자신의 범죄현장을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고양이는 딴청을 부리다가 닭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는 듯 내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러고는 위풍당당하게 돌 위에 앞발을 얹더니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냥 갈 길 가라는 듯이 위협적인 눈빛으로.

'눈 깔고 가던 길 가시옹.'

고양이의 위협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눈을 돌리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닭장 속 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이었기 때문에 곧 살육이 일어날 현장이라기보다, 그저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던 장면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슬슬 저 멀리 성벽을 따라 성으로 올라가는 듯한 큰 도로가 보였다. 그러나 그 도로까지 가는 길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도로에 가까이 접근하려고 산을 올라가다가 어떤 시설 같은 부지 앞에서 멈췄다. 철조망과 건물들로 막힌 곳이었다.


눈앞에 성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두고 그곳까지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잠깐 좌절하고 있으려니 어떤 아저씨가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그가 말했다.


뭘 하고 있나?


산꼭대기의 성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내 대답에 아저씨는 저 멀리 내려가는 방향을 빙 둘러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가면 성으로 향하는 도로까지 갈 수 있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한숨을 쉬었다. 눈앞에 길을 두고도 한참을 둘러서 가야 하는 길이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긴 여정을 또 떠나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잠깐 고민하던 그 아저씨가 나를 다시 붙잡았다.


사실은 여기로 가면 지름길이 있다. 더 빨리 갈 수 있지.


그는 경비실을 지나서 보이는 산비탈을 가리켰다. 작은 야외 농구장 뒤를 통해 비탈길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그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그 비탈길로 향했다. 그러려면 경비실을 지나야 했는데 그 안에는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경비원이 있었다. 나는 경비실을 지나며 일부러 그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했다. 최대한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나는 그저 산 위의 성에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어 하는 동양인 관광객입니다, 하는 느낌으로. 언제나 경비나 경찰이 있는 곳을 지나가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다.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 길, 하려고 하는 일이 허용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했으니까.

다행히 그는 나를 막지 않았고 나는 성으로 향하는 도로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지름길이라고 자신 있게 알려줬기 때문에, 나는 동네 주민들이 종종 이용하는 샛길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올라갈 수는 있는 길'이었다. 발을 디디기 힘든 돌과 생각보다 가파른 비탈의 각도, 무너져 내리는 모래땅의 고난을 헤치고 근처의 나무를 잡아가며 위태롭게 비탈을 올랐다.

힘들게 비탈길을 오르는 도중에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터키의 '길거북'이었다. 7년 전 터키의 카쉬 마을을 여행할 때 도시 외곽의 풀밭에서 길거북을 본 적이 있었다. 발밑에서 켈록켈록거리는 낯선 소리가 들려 놀라서 본 곳에는 멋진 등갑을 가진 육지거북이 있었다. 그 소리는 거북이가 재채기를 하며 내는 소리였다.


그런 곳에 거북이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고, 거북이가 소리를, 그것도 재채기 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상상도 못했다. 그 소리는 무척 귀여웠고 거북이의 눈동자도 포유류의 그것처럼 까맣고 똘망똘망해 엄청나게 귀여웠었다. 이번에 터키에 오면서 터키의 길거북과 재회하기를 바랐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마주하게 된 것이다. 등딱지가 조금 함몰되어 있긴 했지만 건강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등딱지를 살짝 톡톡 두드려 인사하고 다시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성으로 향하는 도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실은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아보거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면 도착할 수 있는 도로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내가 '찾아냈다'라는 이 쾌감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금 긴장이 풀린 나는 겉옷을 벗고 잘 닦인 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성까지 걸었다. 날은 무척 더웠지만 가끔씩 부는 바람은 아직 봄이 이르다는 듯 여전히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도착한 성의 이름은 '하르셰네 성'이었다. 터키 이전의 오래된 왕조 때부터 지어져 이곳의 방어를 담당했던 성.

역시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텅 비어있는 성을 조용하고 여유롭게 관광할 수 있는 건 코로나 시국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성을 천천히 거닐며 감시탑과 목욕탕의 흔적과 무너진 성터를 구경했다. 가장 높은 곳에 점점 다가가면서 나는 어떤 고양감이 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 한두 시간 전의 내가 밑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던 그곳에, 지금의 내가 있다.

성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마시아의 경치를 보면서, 나는 문득 예전 룸메이트 형과 함께 살던 때를 생각했다. 각자의 방에서 게임을 하면서 감탄사를 지르는 내게, 혼자 있을 때도 그런 소리를 내느냐고 룸메 형은 물었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 의식한 것이 아닌데도 감탄사는 혼자 있을 때는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들어야 하기 때문에 소리를 낸다는 것처럼.


비슷한 맥락인지, 눈이 시리도록 쨍쨍한 아마시아의 풍경을 보면서도 감탄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일행은커녕 관광객 하나 없었고, 나는 이 높은 산성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며 정말로 혼자만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수많은 집들에 하나하나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움직이는 자동차들에서도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운 좋게, 어쩌면 운 나쁘게 혼자만 살아남은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마지막 생존자인 것처럼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혼자 여행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정말로 멋진데 그걸 말할 사람이 없구나. '이것이 근사하다'는 내 생각은 어디에도 닿지 않고 사라져버릴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아쉬운 것은 그것이 유일했다.

성의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도 동물들은 있었다. 마치 체셔 고양이처럼 내가 가는 길목의 그늘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주황색 고양이는 수수께끼라도 낼 것 같이 지나가던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맞추지 못하면 지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처럼. 물론 내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자 그 고양이는 여느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금방 내게 관심을 꺼버리고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도로에서 다시 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비탈길에 도착했을 때 아까 마주쳤던 그 거북이가 뒤집어져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성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그 시간 동안 이 근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뒤집혀버린 것 같았다. 스스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애를 써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시련은 이 거북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재난 같았다. 돌 많은 이런 비탈길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순간이 끊임없이 다가올 텐데. 별것 아닌 실수로 죽음의 위기를 감당해야 하는 그 몸이 무척 안쓰러웠다.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들어 거북이를 원래대로 돌려놓자 그 녀석은 나름의 전력질주로 빠르게 그늘숲을 향해 달려갔다. 지름길을 찾느라 비탈길을 올랐던 한 동양인 덕분에 목숨을 건진 터키 길거북. 기묘한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목표를 이루고 무사히 마을로 내려온 나는 천천히 걸으며 식사할 곳도 찾을 겸 느긋하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방금 전까지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 인기척 없던 마을이 맞는지, 시내는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나름 북적거렸다. 라마단이라 공식적으로는 식사도 하지 않을 텐데, 이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그렇게 걸어 다니는 걸까. 그들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문을 닫거나, 식당 내에서 먹을 수 없거나, 너무나 패스트푸드 느낌이거나 했다.

나는 잠시 지친 다리를 쉴 겸 이슬람 사원인 자미에 들어가기로 했다. 신발을 벗고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의 차가운 돌문턱에 돌아다니느라 뜨겁게 달궈진 발을 올려 식힐 때의 그 서늘한 감각은 어느덧 내가 터키에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고요하고 시원한 사원의 내부는 언제나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았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지났던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정하는 그 중심에는 항상 '자미'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도 꼭 이슬람 사원처럼 생겼었지.


나는 부드러운 카펫 위에 주저앉아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산을 올라가 성을 봤고, 그리고 카이막을 먹고 싶어. 아마시아에 왔으면 아마시아의 카이막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농후한 우유맛이 살아있는 그 크림을 꿀과 함께 맛있는 빵에 찍어 먹는 것.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 등산을 하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무언가 먹고 마실 것이 필요했다.

일단 카이막은 디저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할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구글맵을 열어 근처의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대부분 닫혀 있었다. 코로나와 라마단이라는 두 가지 악재가 겹쳐서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어려운 건 산골 마을 아마시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물어물어 영업을 하고 있는 케밥집을 찾아갔다. 이곳도 음식을 만들기는 하는 모양이었지만 식당 안에서 먹는 것은 불가능했고 오직 포장만 가능했다. 나는 식당을 더 찾는 것을 포기하고 포장 음식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친 몸도 쉴 겸 식사도 할 겸 음식을 들고 숙소를 향했다.

선택한 것은 아다나 케밥이었다. 아다나에서 아다나 케밥을 먹는 그날까지, 지나다니는 모든 곳에서 아다나 케밥을 먹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마치 도장깨기처럼,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아다나 케밥을 하나씩 정복하다가, 최고의 아다나 케밥을 만나며 여한 없이 무릎을 꿇을 계획이었다.


아마시아의 아다나 케밥은, 좀 별로였다. 뒤림 형식으로 얇은 빵으로 고기와 야채를 감싼 형태였는데 비교적 두꺼운 빵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했고 고기인 아다나 케밥의 향도 맛도 약했다. 멋진 초밥을 먹고 싶었지만 회전 초밥도 아니고 김밥 천국에서 김밥 한 줄을 먹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식당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숙소의 마당에는 기르는 건지 깃든 건지 모를 애꾸눈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의 얼굴은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처럼 어딘지 노련하고 비장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동글동글하고 사교성 많은 다른 녀석들과는 확실히 다른 표정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 원래부터 그랬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 제집처럼 드나들며 자유롭게 활보하는 걸 보면 적어도 사람에 의해서 생긴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처음 보았을 때 본능적으로 가엾은 마음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이 녀석의 걸음걸이와 움직임에는 주눅이 든 기색도 혹은 과장해서 괜찮은 척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이 하나 없다는 것쯤은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는 별일 아닌 지도 몰랐다. 마당에서 뒹굴며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그 고양이를 두고 나는 다시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나오자 아마시아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멈춘 강은 거울 같았고 도시는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친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나는 대로로 나와 크게 하품을 했다. 이제 막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어쩐지 아마시아란 마을에서 일주일은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저녁으로 먹을 것도 찾을 겸 디저트로 카이막도 먹을 겸, 큰 길을 따라 도시를 돌아다니며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양내장을 구워 잘게 썬 다음 빵 사이에 끼워먹는 코코레치, 패스트 푸드 형식의 흔한 케밥집들을 지나치며 다음 모퉁이엔 더 근사한 가게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목적지로 삼았던 구글맵의 카이막을 판다는 가게 위치에 도착해서 카이막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 주택단지를 보았을 때,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 때문에 슬슬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나는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해두었던 차선 순위를 하나씩 되새기며 서둘러 역주행을 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가게들은 영업을 종료하고 문을 닫거나 폐장 중이었다. 마치 눈앞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보물들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꿈처럼 나는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그러나 하찮게 여겼던 패스트 푸드 케밥집과 '여기까지 와서 절대로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길거리 코코레치 포장마차까지 모두 철수해버린 걸 확인하고는 허탈감에 빠졌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걸 찾으려고 했다가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이다.


졸지에 이솝 우화의 교훈적인 이야기에 나오는 욕심쟁이 꼴이 되어버린 나는 풀이 죽은 채 터덜터덜 걸어 다니다가 우연히 동네 구멍가게 같은 마트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을 작은 마트였지만 지금의 내겐 구원처럼 다가왔다. 거기서라도 아무거나, 하다못해 과자라도 사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마트엔 과자뿐만이 아니라 의외로 여러 가지 식료품들이 있었다. 조리 도구 없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천천히 둘러보던 내 눈에 낯익은 것이 보였다. 이스탄불에서 거의 매일같이 먹었던 그 디저트, '카이막'이었다.


비록 공산품 카이막이었지만 모든 선택지를 잃어버린 내게는 기적처럼 내려온 선물이었다. 나는 냉큼 카이막을 집어 들고 꿀이 담긴 작은 튜브도 하나 구입한 다음 가게를 나왔다. 때마침 근처에 열려 있던 빵집에서 에크멕 빵도 한 덩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의 저녁식사가 급하게 완성되었다.

먹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들을 주렁주렁 들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아마시아에서 개를 보았다. '넌 선택받은 아이야'라는 뭉클한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있는 개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귀에 인식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주인이 있는 개였다. 가게 앞에 가만히 앉아서 '인간이 나쁠 리 없다'는 믿음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쳐다보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은 초저녁이었지만 나는 아마시아에서의 일정이 이제 모두 끝났다는 걸 알았다. 하루 만에 이틀 치 체력을 모두 소모해버린 것 같았다. 간신히 마련한 저녁식사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도 더 별로였다. 공산품인 카이막은 내가 먹었던 그런 카이막이 아니었다. 고소함이나 농후함, 신선함은 찾을 수 없는, 그저 느끼하고 밍밍한 크림에 불과했다. 쫄깃함이나 짭짤함 따위는 실종된 에크멕 빵도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아마시아에서의 세 끼니는 모두 다 실패해버렸다. 적어도 내게 아마시아는 맛있는 도시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저 운이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걱정되는 것은 거의 임박한 통행금지 조치였다. 소문에 의하면 이제 곧 터키 정부에서 점점 심해지는 코로나 때문에 대대적인 통행금지령을 내린다고 했다. 가게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 저녁 7시 이후로 다닐 수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생존을 위한 먹거리 구입 같은 게 아니라면 전면적으로 외출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문득 이 모든 상황에 화가 났다. 내 돈 내면서 다니는 여행인데 왜 자꾸 통행금지 눈치를 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찾아서 가게 구석에 숨어서, 혹은 길바닥에서 먹어야 하는가.


결국 나는 이쯤에서 터키가 아닌 인근의 다른 나라로 뜰 생각을 했다. 원래라면 여행의 중반쯤에 그리스의 아테네나 크레타 섬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외교부 사이트에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리스는 입국 시 1~2주일의 의무 격리가 있었다. 격리 과정 없이 바로 입국이 가능한 근처의 나라는 알바니아나 불가리아, 북마케도니아 정도였다. 생전 가볼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라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고민한 결과 갈 수 있다면 알바니아가 괜찮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공항을 찾아서 한번 부딪쳐 보기로 했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오늘 겪었던 것들과 앞으로 겪어야 할 것들이 머리 위에서 모빌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어느 밀실 살인 추리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멋진 산장 느낌의 숙소였는데 생각보다 숙소 자체를 즐기지는 못 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아마시아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도시였다. 아마도 평생에 아마시아에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겠지. 그래도 여한은 없었다. 생애에 단 하루, 나는 아마시아에 있었다. 그것은 매우 맑고 밝고 길었던 날이었다고, 나는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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