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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Oct 26. 2022

열한째 날, 얼굴 없는 여행

아다나->안탈리아


안탈리아로 떠나는 날에도 아다나는 죽은 듯 조용했다.


아침과 점심으로 연이어 아다나 케밥을 먹었다. 아다나에서 모든 끼니를 아다나 케밥으로 먹어치우겠다는 내 작은 다짐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점심 식사를 먹었던 식당은 불이 꺼진 채로 넓고 고요했다. 식탁을 치워버린 실내는 폐업한 공장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고기를 굽는 연기로 가득한 실내에선 창문을 통과한 빛줄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나와, 유일한 다른 손님이었던 젊고 수염 난 남자, 이렇게 두 사람은 식당 뒤뜰에 깔려 있던 야외 테이블 위에서 햇빛을 받으며 식사를 했다. 비어 있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남자와 서툰 터키어와 영어를 섞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고, 지금은 직업이 없어진 나는 얼마 전까지 차나칼레에서 다리를 만드는 일을 하다가 일이 끝나고 터키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는 문득 내가 뱉은 대사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초반에 주변 인물을 소개할 때 나오는 대사들과 꽤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육군 장교였습니다. 인도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은퇴하고 부인과 함께 여행 중이죠.' 아마도 그에게도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주변인.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식당 앞에는 나이와 시간이 많아 보이는 남자들이 모여 한가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나를 보자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버스 터미널로 간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길 건너 맞은편에 다른 그룹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택시 운전사 친구를 불러주었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비어버린 도시에서 드물고 귀한 택시 손님이었다.


터미널로 향하는 택시의 뒷좌석에 편안하게 몸을 기댄 채로 앞좌석에서 운전하고 있는 택시 운전사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저 아저씨의 얼굴이 어땠더라?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느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로 택시에 탔었다. 방금 만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에 없었다.


나는 아다나에서 지내며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예약한 숙소 방을 안내해 주고 에어컨을 틀며 싱긋 웃던 호텔 종업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건 자제해 달라던 케밥집 식당 주인.


사원에서 만나 주절주절 사원에 대한 소개를 해주다가 돈을 요구한 남자.


뒤뜰의 다른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먹지 않는 다른 메뉴를 시켜 맛있게 먹던 젊은 남자.


방금 택시를 잡아 주었던 동네 아저씨.


그리고 지금 타고 있는 택시의, 뒤통수만 보이는 운전자.


이상한 것은, 그들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심지어 지금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누군가와 함께 외국 여행을 했을 때, 나는 동행했던 그 사람 외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던 이유가 동행자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그 사람과 함께 지내느라, 이리저리 마주친 사람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나 혼자서 여행 중인 지금에도, 내 여행엔 사람의 얼굴이 없었다. 물건을 계산하거나 할 때 잠깐 말을 섞었던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몰랐다. 우연히 내가 탄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이,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해 아직 겁을 모르고 속도를 마구 올리는 스무 살짜리 청년 '을마즈'든지, 60살이 되어 며칠 뒤 은퇴를 바라보고 있는, 손님을 가리지 않고 다소 수다스러운 성격의 '무스타파'든지. 어차피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그들을 잊게 될 것이다. 이후에 기억나는 것은 택시를 탔다는 사실과, 그 택시를 운전하던 사람의, 얼굴 없는 어두운 실루엣뿐. 내가 고유명사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의 얼굴은 의미를 남기지 못하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이 여행이 모두 끝난 뒤에 내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풍경도 사람도 아니라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원경과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들만이 남을까. 그것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온 일상의 어느 틈바구니에서, 무언가 불현듯 떠오르리라. 그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다나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로 미어터지던 버스 터미널이 오늘은 텅텅 비어 있었다. 전면적으로 시행된 통행금지령 때문인 것 같았다. 덕분에 취소되는 버스들도 많았지만 다행히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온 안탈리아행 버스는 한대 남아 있었다. 늦은 밤에 출발하는 야간버스라는 것만 빼면 다행이었다. 나는 서둘러 표를 끊고 가져왔던 짐을 버스 회사 사무실의 한구석에 놔뒀다. 표를 끊고 나니 아침부터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긴장감이 슬그머니 풀리며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 시간이 되기까지, 나는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버스 터미널에서 가만히 앉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몇 시간을 보내며 버티는 것은 오랜 특기였다. 더군다나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공사장에서의 일을 막 끝마친 내게는 이런 조용한 시간이 무엇보다 달콤했다. 육 개월 전까지의 과거에도, 앞으로의 미래에도, 생각할 것이 무척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내가 앉아 있던 벤치에 근처를 떠돌던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왔다. 터키에서는 혼자서 여행을 하더라도 외로울 틈이 없었다. 녀석은 처음 보는 내게 한껏 애교를 떨더니 기어이 무릎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까만 옷이 금세 회색빛 털로 범벅이 되었지만 나는 이 고양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생각이란 건 길어지면 언제나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법이다. 추억이 된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항상 달콤했지만 달콤함에 마비된 혀는 다음에 올 미래를 더욱 쓰게 만든다. 미래가 달콤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어릴 적의 한순간뿐이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기 전에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맘껏 해야지, 같은 생각을 하며 들뜬 마음으로 잠들던 어느 방학 날의 밤과 같이. 그러나 자라버린 내 몸은 더 이상 미래를 달게 느낄 수가 없었다. 다가올 미래는 언제나 현재보다도 썼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버리면 어쩌지. 생각이 깊어질수록 더욱 그랬다.


고양이들이 행복할 수 있던 것은 고양이의 뇌가 미래보단 현재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고양이가 내 무릎 위에 앉는 순간, 내 머릿속에 가득한 미래에 대한 걱정들도 함께 사라졌다. 내겐 그 고양이에게 줄 수 있는 먹거리가 없었다. 고양이도 그걸 모르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먹을 것을 원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원하는 것은 그저 내 무릎 위에 몸을 맞추고 앉아 느긋하게 먼 곳에 움직이고 있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관심은 과거의 일도 미래의 일도 아니라 오직 그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고양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양이가 몸을 맡겨오는 건 기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 순 없었기 때문에 내 쪽에서 먼저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조금만 기척을 내거나 몸짓을 크게 해도 휙휙 도망가 버리는 다른 야생동물들과는 달리, 녀석은 툭툭 쳐도 별다른 반응 없이 몸만 뒤척이며 다시 자리를 잡을 뿐이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감동스러운 경험이었다.


감동과는 별개로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어깨를 잡아 들어서 옆으로 내려놓았다. 나른한 고양이의 몸은 무척 따뜻해져 있었다. 녀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방금까지 함께 있었던 커다란 방석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갔다. 고양이는 그런 동물이었다. 나와 함께 했던 따뜻한 한 시간 또한 흥미롭지 않은 과거의 일로 지금 막 넘어간 참일 테니까.

시간이 꽤 지났는지 낮아진 햇빛이 진해져 있었고 역사에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케밥을 굽는 연기가 뿌옇게 차있었다. 나는 근처를 돌아보며 식사할 곳도 찾을 겸 역사를 빠져나와 철길을 넘었다.


철길 너머에 있는 것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어릴 적 학원을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고향 동네의 느낌처럼, 일상의 삶의 냄새가 물씬 나는 마을이었다. 나른한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방패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아버지.


낡은 집에서는 저녁으로 먹을 케밥을 굽는 연기와 냄새가 흘러나왔고, 골목마다 까무잡잡하고 장난기 많아 보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요정의 것처럼 들려왔다.

나는 또다시 그들의 삶의 공간으로 불쑥 들어온 것을 느꼈다. 내가 여행지에서 무척 좋아하는 순간들 중 하나였다. 철길을 하나 넘는 것만으로, 여행지가 여행지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되는 순간.


그건 일반적인 여행의 경험과는 완전히 달랐다. 관찰하는 여행자인 내가 여러 가지로 변하는 여행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는 여행지가 변화하는 여행자인 나를 관찰하는 느낌. 이곳에서 나는 잠시 나의 정체성을 잃는다. 나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과 추억들은 모두 사라지고, 나는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을 기억들을 새롭게 부여받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곳은 나의 정겨운 고향이 된다. 이 골목 모퉁이를 지나면 즐겨 가는 목욕탕과 그 옆의 이발소가 있고, 이 담벼락 너머엔 우리집보다 맛있는 반찬을 하는 엄마를 가진 친구의 집이 있다. 또래의 친구들이 다섯 시만 되면 별다른 약속 없이도 모이는 공터에는 언제나 담벼락에 부딪히는 낡은 축구공 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햇빛이 짙어지고 그림자가 길어질 때가 되면 가로등불이 하나 둘 켜지고, 집집마다 저녁밥을 하는 냄새가 물씬 골목을 메운다.


그렇게 풍경에 몰입하며 서서히 그 공간에 물들어가다가, 문득 나는 어느 순간 그 풍경과 유리된다. 한창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굴러가던 공을 들어 품에 안고, 경계와 호기심, 낯설어하는 눈동자와 장난스런 입꼬리가 공존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볼 때. 시끄럽던 웃음소리가 내 주변에서 멈출 때. 골목에 아무렇게나 둔 의자에 앉아, 손에 든 신문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어 보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유심히 쳐다볼 때. 억세고 신경질적인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이를 혼내다 말고 지나가던 내게 어색하고도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일 때. 그때 풍경은 다시 타인의 풍경이 되고,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의 아늑함은 나의 것이 아니다.


깨기 직전의 꿈처럼, 그것은 서늘하면서도 아련한 감각이다.

아쉽게도 이 마을에서 내가 저녁식사를 할 식당을 찾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코로나로 인해 식당 안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발품을 파는 사이에 그나마 열려 있는 식당들도 일찍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실망에 빠진 나는 다시 버스 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이라면 아직 문을 연 식당들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철길을 넘으려고 했더니 아까와는 달리 철도를 따라 철제 울타리가 길게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처음 철길을 건넜던 곳에서 꽤나 멀어진 것 같았다. 내가 길을 건넜던 곳은 양쪽을 왕래할 수 있게 열려 있던 제한된 구역이었던 것이었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왼쪽으로 가야 할지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조금 더 지체된다면 마지막 희망이었던 역사의 식당마저 문을 닫을 지도 몰랐다.


조금씩 초조해지던 내 눈앞에 문득 나타난 것은 울타리의 한쪽이 무너져 조그맣게 뚫려 있는 틈새길이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뚫어 놓은 일종의 개구멍인 듯했다. 무너진 울타리 사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며 나는 혼자 웃음 지었다. 현실에서도 답이 없이 주어지는 수수께끼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적나라한 해답이 덜컥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덕분에 나는 다시 철길을 건너 버스 터미널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역사 안에는 여전히 케밥을 구우며 나는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직 열려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며 아주 잠깐 고민했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기는 했지만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었다. 마지막까지 확실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는 또다시 아다나 케밥을 주문했다.


안타깝게도 터미널 내부 식당의 아다나 케밥은 별로 맛이 없었다. 빵으로 미리 고기를 감싼 뒤림 형식으로 나온 패스트푸드 식 아다나 케밥이었다. 이번에 터키에 와서 이런 형식으로 먹는 케밥 중 맛있는 걸 먹었던 적이 드물었다.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본토의 아다나 케밥들의 거대한 위용에 비해, 이곳의 아다나 케밥은 조그만 소시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그래도 아다나 출신답게 자기주장이 강한 맛을 조금이나마 지니고는 있었지만,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두껍고 메마르기만 한 빵에 묻혀 목소리를 잃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다나 특유의 그 빵에 발린 고깃기름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부재료로 들어간 야채는 내가 터키에서 본 것 중에 가장 빈약했다. 덕분에 한입 먹을 때마다 텁텁하게 목이 메어 사이다를 계속 삼켜야 했다.


아다나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마지막 저녁 식사가 끝나자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비어 있던 역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조금씩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밤 시간에 몰려 있었는지 슬슬 버스들이 빛을 뿜으며 나타났고, 곳곳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와 캐리어 가방을 끄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표를 구입했던 버스 회사 사무실에 앉아 핸드폰을 충전하며 내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무실 밖에서 들리는 분주한 소리가 하루 종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던 내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커다랗게 고함을 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소음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도드라진 목소리였다. 그것은 버스의 도착을 급하게 알리는 소리라고 하기에도, 잠시만 기다리라고 외치는 소리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다급하고 공격적으로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짐을 그대로 둔 채로 나는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가보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모퉁이 너머에서 한 남자가 빠르게 나타나 어디론가 다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쫓겨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퉁이 너머에 뭔가 위험한 무기를 든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망간 남자 뒤를 이어 그 모퉁이 너머에서 그를 도망가게 한 누군가가 뒤쫓아 금방 나타날 것 같았다.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뒤를 돌아 어디론가 대피를 해야 할까. 아니면 모퉁이 너머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아야 할까.


잠깐 고민한 후에 내가 했던 선택은 후자였다. 역사엔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지만, 동시에 테러 상황 같은 굉장히 다급한 위협이 벌어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모퉁이 너머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연기는 금방 새카만 구름을 이루며 역사 전체를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다가가 그 모퉁이 너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연기구름의 중앙에 보이는 새빨간 불길이었다. 어느 버스 회사 사무실의 2층에서 맹렬한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록 그곳은 이 버스 터미널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구름은 천장을 타고 역사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나는 거센 불길과 위협적인 색깔의 연기를 보며 사무실에 있는 짐을 떠올렸다. 저 불길이 언제 다른 곳으로 옮겨붙을지 몰랐기 때문에 아직은 안전한 우리 버스 회사의 사무실에 놔뒀던 내 짐들을 밖으로 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던 내 발걸음을 막은 것은 내 버스 표를 끊어 주었던 직원인 남자였다. 그는 어딜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저 불길 때문에 내 짐을 사무실 밖으로 빼러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나를 말렸다.


저건 별거 아니야. 짐은 안전해. 꺼낼 필요가 전혀 없어.


그러나 나는 남자의 말이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저 불길이 거세기는 해도 역사 전체에 옮겨붙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사무실에서 만일을 대비해 짐을 꺼내는 것은 더욱 별거 아닌 일이었다. 꺼낼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지만 굳이 꺼내지 않고 거기다 둘 필요 또한 없었다. 그러나 나를 막는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나를 믿어.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꺼질 거고 네 짐은 안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화재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불구경을 했다. 내가 짐을 둔 사무실은 전혀 다른 방향에 있었으므로 내 안전을 위해서 나를 막은 것은 아니었고, 그는 그저 이런 일은 불꽃의 도시 아다나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내게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불꽃의 도시라고 했던가, 정말로 그랬을 줄이야.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은 곧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오래 지나지 않아 잡혔다. 광장에는 떠올랐던 재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가라앉았다. 불구경을 하러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성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화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터미널에 경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도시 간 이동 전면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이동 허가증 같은 것을 발급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경찰들은 물론 관광객으로 보이는 나를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원래 터미널에 배치되어 있거나, 아니면 방금 일어난 화재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수선한 시간이 조금 흐르고, 마침내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짐을 버스 아래 트렁크에 넣어 두고 내 자리를 찾아 의자를 제친 뒤 충분히 등을 기대앉은 뒤에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갖 일이 있었지만 마침내 나는 안탈리아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는 머리와 옷에 잔뜩 밴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으며, 일단 안탈리아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7년 전 그때의 여행처럼, 안탈리아에 가면 온갖 무거운 기분들을 씻어낼 수 있을 거라고. 그곳의 공기는 여전히 새롭고 상쾌하겠지.


나는 서서히 내려오는 눈꺼풀을 저항 없이 감으며, 그곳의 숙소에 발을 들이자마자 뜨거운 물로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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