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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Jul 13. 2022

열째 날, 비어버린 도시의 마왕

아다나


왠지 창밖이 조용해진다고 느끼며 잠들었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다나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비어버린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 많던 자동차와 그 사이에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활기라는 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던가.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잠든 사이 전염병이든 뭐든 돌아서 하루아침에 인류가 멸망해버린 그런 풍경. 바퀴 달린 것이 하나도 굴러가지 않는 텅 빈 차도 위를 걸으며, 나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가장 처음으로 썼던 소설을 기억했다.


회사 면접을 보고 나오던 남자의 머리 위를 덮친 해일과, 물이 한차례 쓸고 나간 뒤 그 남자 하나를 남겨두고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도시. 남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도시의 도로 위를 혼자 걸었다. 그의 눈에 불 꺼진 신호등과 유리가 깨져 창문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건물들이 들어왔다. 문명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자연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둘기가 나타나 말을 걸어오는데, 그 비둘기는 면접이 끝나고 혼자 도시락을 먹을 때 발치에서 기웃거렸던 그 녀석이었다, 라는 식의 소설. 마지막에 남자가 어디선가 비어있는 도시를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비둘기떼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소설은 끝이 났었던 것 같았다.


그것은 거의 10년 전에 썼던 소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종의 아포칼립스 소설이었고, 리얼리즘 소설에 결코 적응하지 못했던 내가 최대한 현실적인 느낌의 소설을 쓰려 노력했던 것이었다. 회사니 면접이니 하는 것은 당시의 내겐 오히려 판타지나 다름없었고, 바닷물에 모든 것이 휩쓸려가버려 텅 비어버린 도시와 말하는 비둘기가 차라리 내 삶의 현실 같았다. 나는 내게 익숙한 그 세계를 소설 속에 그리면서 나름 즐거워했지만, 그것이 진짜 현실로 다가오는 날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있는지도 몰랐던 터키의 아다나라는 도시에서.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은 비둘기들이었다. 그들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 제외한다면,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세계는 서툰 솜씨로 끄적이던 내 습작 소설 속 세계와 거의 똑같았다.


나는 기묘한 감정에 빠졌다. 그것은 어쩌면 감동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나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보이기에 부끄럽고 실제로도 더 이상 누군가가 볼 일이 없는 그 소설을 누군가가 영화화해서 내 앞에 실시간으로 상영 중인 것만 같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내가 터키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풍경.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나는 자동차가 사라진 교차로의 광장에 서서 인간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비둘기들이 바닥을 쪼아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떤 아포칼립스적 근미래의 트레일러를 살짝 엿보기라도 하는 듯이.

물론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면적 통행금지령이 내렸다고는 해도, 그들이 모두 집에서 앉아만 있다가 굶어 죽을 수는 없으므로 간간이 뭔가를 사러 나온 아다나 주민들을 볼 수는 있었다.


사람이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금지지만 가게는 문을 열고 있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지만 식당에선 음식을 팔고 있다.


기묘한 모순 사이에서 언제나 인간은 먹고 살아간다. 언어화된 옳은 말로 무언가를 정의하고 규제한다고 해도,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 또한 인간을 구성하는 데 여전히 필수적인 것이다.


모순이 일어나는 것은, 그저 인간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하는 욕심쟁이이기 때문일 뿐이다. 필수적인 것을 필요로 하는 걸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쨌든 코로나 전염을 막고 라마단 금식을 지키면서도 사람들이 먹고사는 걸 적당히 묵인해 주는 터키 정부 덕분에, 나는 대놓고 문을 열고 있는 가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구입할 수 있었다. 옆구리로 터져 나올 듯 꽉 찬 초록빛 피스타치오가 군침을 돌게 했다.

점심도 역시 아다나 케밥이었다. 나는 정말로 아다나를 떠나는 그날까지 모든 끼니를 아다나 케밥으로 때울 작정이었다. 아다나 케밥이라는 메뉴에 한 점 후회가 없도록.


아다나 중심가 근방에는 문을 연 케밥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맛집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그저 장사를 하는 곳이면 찾아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다나는 아다나인지 대충 어느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해도 평균 이상의 케밥을 맛볼 수 있었다. 다만 역시나 식당 내에서 식사를 할 순 없었기에, 나는 주문한 아다나 케밥을 숙소로 가지고 와서 식사 시간을 가졌다. 넉넉히 넣어준 빵과 고작 메뉴 하나에 몇 종류나 딸려오는 샐러드는 아다나 특유의 인심인 것 같았다.

고깃기름이 묻은 빵 역시 여전히 맛있었다. 케밥보다도 어쩌면 이것이 진짜 아다나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먼 훗날 터키 여행에 관한 것을 거의 다 잊고 살게 될 무렵에, 나는 기억나지 않는 이 양념 기름 묻은 빵의 맛이 문득 그리워질 것이다. 무척 맛있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맛을 떠올릴 수 없던 나는 이태원의 터키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비슷한 맛을 느껴보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그저 모양만 흉내 냈을 뿐이지 빵도 양념도 추억 속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한국적이고 일상적인 맛에 불과하다. 지구 반대편의 어느 도시에서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이 음식이 지금 이곳에서는 절대로 다시 맛볼 수 없는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이다.


그 빵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 하는 욕망은 돈과 시간을 내어 이태원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게 할 정도로 간절하기는 하지만, 직업과 생활과 가족의 문제를 버려두고 빵 하나 먹자고 훌쩍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에는 사소하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것을 맛보러 갈 수 있음에도,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아마도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고, 그 빵의 맛은 양치질하고 난 뒤 삼키는 침의 맛처럼 기억 속에서 그저 투명하게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리라 생각했던 어느 날, 나는 을지로를 돌아다니다 신발 끈을 묶기 위해 낡은 상가 건물의 입구로 잠시 들어가게 된다. 테라조 무늬의 촌스러운 계단에 발을 올리고 신발 끈을 묶던 나는 문득 1층의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상한 기계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매 순간 일상을 벗어나고자 불쑥불쑥 찾아오는 호기심이 발동해 조심스럽게 문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되고 지저분한 공방처럼 보이는 실내의 중앙에 굉장히 요란하게 생긴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파이프와 시계가 뇌의 주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세탁기, 혹은 냉장고처럼 보이는 기계다.


심해에 울리는 고래의 노랫소리 같은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는 기계 앞에 멀뚱멀뚱 서 있자, 어두운 실내의 한구석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노인이 한 사람 나타나 내게 말을 건다. 그는 이 기계가 타임머신이라고 말하며 내 생애의 어떤 순간이든 단 30분 정도만 그 때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나는 믿지 않았지만 불청객에게 알 수 없이 친절한 노인의 권유에 잠깐 장단을 맞춰 준다는 생각으로 그 기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기계의 내부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 단 한 걸음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그곳에서 굳이 감지 않아도 되는 눈을 감고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듯 천천히 커지기 시작하는 그 고래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내 생애의 어떤 순간을 떠올린다. 아름답고 신비한 노랫소리였던 그 소리가 귀와 뇌를 찢을 만큼 커다란 소음으로 바뀔 때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낯설면서도 낯익은 장소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은 좁고 먼지가 가득하고 인테리어가 엉망인, 그러나 에어컨만은 쌩쌩하게 돌아가고 있는 어느 여관방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바로 그 음식, 일회용 접시 위 붉은 아다나 케밥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있는, 그 고깃기름 묻은 쫄깃한 빵이 있다. 나는 노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오랜 기억 속에서 휘발되어버렸던 그 기름 묻은 빵을 집어 든다. 벌써부터 구수한 케밥의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운다. 30분이라 했던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빵을 입에 가져가 천천히 빵을 한입 물어뜯는다.


이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고기 양념 묻은 빵을 열 배로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겨우 이 빵을 먹기 위해 비행기도 아니고 타임머신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이냐고? 물론 내게는 그렇다. 아니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봉쇄된 아다나에서는 딱히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여관에서 하루 종일 푹 쉬기로 했다. 가지고 왔던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좀 보다 보니 금방 저녁때가 돌아왔다. 나는 또다시 아다나 케밥을 먹기 위해 시장에 있는 또 다른 식당을 찾았다. 가장 처음 찾았던 그 드럼통 레스토랑을 제외한다면, 다른 곳의 아다나 케밥 맛은 비슷비슷했다. 그곳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질리지 않고 맛있는 구수한 맛. 아다나의 빵을 만드는 방법이 비슷한 것인지 폭신하고 쫄깃한 이 빵은 이곳에서도 기름을 잔뜩 머금고 나왔다. 탄 듯이 구워낸 토마토와 고추 역시 터키 인의 케밥상에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해가 질 준비를 하느라 햇빛의 색이 짙어져 있었다. 오전 시간 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차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멸망해버린 이 세계에 여전히 생존자가 있었다는 것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사람과 자동차가 왠지 반갑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동네 빵집을 발견했다. 줄 선 빵집.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될 것. 빵이 갓 구워져 나오는 타이밍에 모인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나 역시 얼른 그들 사이에 줄을 섰다. 계산을 맡은 점원이 분주하게 줄 선 사람들의 주문과 돈을 받고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땀을 흘리며 빵을 반죽하고 화덕에서 꺼내는 제빵사들의 바쁜 모습이 보였다. 평화롭고 흐뭇한 광경이었다.


나는 후식으로 먹을 가장 기본적인 빵, 에크멕을 하나 주문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에크멕 빵인데, 갓 구워낸 것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정신없이 오가는 주문과 빵 봉지 사이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탐스러운 에크멕 한 덩이가 든 비닐봉지가 주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갓 나와 따끈한 빵 덩어리 때문에 금방 습기가 차기 시작한 비닐봉지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이 빵이 숙소로 가져갈 때까지 따뜻할 수 있을까. 숙소까지는 이십분은 걸어야 할 정도로 거리가 있었고, 통행금지령 때문에 길에는 택시는 물론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지금 당장 길바닥에 주저앉아 이 빵을 뜯어 먹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지금은 라마단 금식 시간이었고, 낯선 이방인이 보란 듯이 대로에 멀뚱멀뚱 서서 음식을 씹어 먹는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지도 몰랐지만, 그걸 신경 쓰는 내가 신경 쓰일 것이 틀림없었기에, 나는 그냥 맘 편히 먹기 위해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숙소까지 가는 것을 택했다.


빵이 조금이라도 더 식어버릴까 소중히 품에 안고 가면서도 습기 때문에 눅눅해질까 봐 봉지 입구는 살짝 열어놓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속보를 하던 나는 머릿속으로 문득 슈베르트의 마왕을 떠올렸다.


더운 바람이 부는 아다나의 초저녁에 옷깃을 여미고 가는 이 누구인가?


그들은 동양인 여행자와 빵 한 덩이였다네.


여행자는 빵을 감싸 안고 간다네.


안전하고 따뜻하게 안고 걸음을 서두른다네.


"빵아, 왜 그렇게 식어가고 있느냐?"


"주인님, 저기에 저 차가운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봉지 안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바람 소리가?"


"진정해라, 빵아. 걱정 말거라. 그건 급한 걸음걸이에 흔들리는 거란다."


"맛있고 바삭바삭한 빵아, 나랑 같이 가지 않으련? 내 딸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내 딸들이 저녁 식사로 케밥 축제를 열자고 하는구나. 너를 식탁에 올려두고 잘게 썰어 케밥을 얹어 먹을 거란다."


"주인님, 주인님, 보이지 않으세요? 저 음침한 곳에 서 있는 차가운 마왕의 딸들이?"

"빵아, 빵아, 내가 확실히 보고 있단다. 저건 단지 놀고 있는 고양이들일 뿐이란다."


"너무 맛있겠구나, 너의 따끈한 온도에 반했단다. 만약, 네가 나한테 오기 싫다면 나는 억지로라도 너를 데려가겠다!"


"주인님, 주인님, 그가 나를 붙잡아요! 마왕아 나를 차갑게 해요!"

여행자는 공포에 질려 급하게 도로 위를 달렸네,


식어가는 빵을 손에 들고서,


고생 끝에 숙소에 도착했더니,


빵은 품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네.

안타깝게도, 숙소에 도착해서 봉지를 여니 마주한 것은 완전히 식어버려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어버린 차가운 에크멕 빵이었다. 물론 여전히 바삭한 껍질과 구름같이 폭신한 속살을 가지고 있었지만, 갓 나와 따끈따끈했을 그 맛은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받은 그 자리에서 체면 차리지 않고 한 입이라도 베어 먹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며,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짭짤하게 맛있는 에크멕 빵 한 덩이를 그 자리에서 몽땅 먹어치워버렸다.


외국을 여행하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숙소에서만 시간을 보낸 날이 있었던가. 가끔은 그런 날도 꿈꿔본 적 있었지만 하필이면 가장 열악한 숙소에서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담쟁이덩굴이 보기 좋게 자란 창문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면, 볕이 잘 드는 그 창문 근처의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 두고 하루 종일 느긋하게 글을 쓰는 상상. 그러다가 문득 글을 쓰는 게 지겨워지면 잠깐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바람에 실려오는 이국적인 도시와 풀의 냄새를 맡는 것.


그러나 현실은 오래 묵은 먼지가 매캐하게 떠도는 여관방의 딱딱한 침대 위에 앉아 식어버린(하지만 맛있는) 빵을 혼자서 씹어 먹으며 시간을 견디기 위해 유튜브나 보는 것이었다.


이런 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비록 케밥은 맛있었지만 케밥을 먹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하루 중 2시간을 넘기지도 못했다. 케밥을 먹는 것 외에 내가 이 비어버린 도시 아다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아다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통행금지든, 도시 간 이동 금지든, 여행 허가증이든,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무작정 부딪쳐 보기로.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여기서 좀 더 동쪽으로 갈지. 아니면 다시 서쪽으로 돌아갈지. 동쪽으로 간다면 가지안테프나 샨르우르파, 혹은 더 나아가 최근에 유튜브에서 보았던 마르딘이라는 도시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간다면 내가 기대하던 중동의 분위기를 훨씬 물씬 느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샨르우르파나 특히 가지안테프는 터키 내에서도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였다. 그렇다면 볼 것 없이 동쪽으로 향하는 것이 맞겠지만 거기엔 문제가 있었다. 그 도시들을 포함한 터키 동부는 외교부에서 지정한 적색 경보(출국 권고) 구역이라는 것. 아마도 시리아에 근접해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여태껏 만난 터키인들(거기엔 공사장에서 만난 터키 동부 출신들도 있었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그곳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곳만큼 평화로운 곳은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최근에 그곳을 여행하는 모습을 찍은 유튜버도 있었다.


물론 위험이란 것은 언제든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운이 좋을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쁠 수도 있었다. 거기에 외출 금지령이 마음에 걸렸다. 위험한지 아닌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거동에 제한이 걸린다면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거기다 먹을 것이 유명한 곳에서 금식으로 인해 식당이 문을 열지 않으면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이 난 도시는 안탈리아였다. 푸른 바다가 있는 터키의 대표적인 휴양지. 그곳이라면 비록 통행이 금지될지라도, 깔끔한 호텔에서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내일 안탈리아를 향해 떠나기로 하고 더 빨리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아다나를 떠나고 싶었다. 이곳은 메마르고 매캐하고 시끄럽거나 공허했다. 하지만 동시에 맛있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 역시 아다나 케밥이 될 것이라 다짐하고, 나는 입맛을 다시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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