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뭐 먹어요?

저는 산에서 아롱사태 먹어요.

by 하로동선

산에서 뭐 먹어요?

산에 자주 다닌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두 가지다. "천왕봉 몇 번 갔어요?", "산에서 뭐 먹어요?"

산에 같이 다니는 후배 중에 예쁘고 성격 좋은 친구가 있다. 다니는 회사 거래처에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보다. 어느 날 업무 미팅을 마치고 묻더란다.

"00 씨 산 좋아하신다면서요?"

"네, 자주 가요."

"저도 산 좋아하는데, 저랑 소백산에 한 번 같이 가실래요? 제가 맛있는 컵라면 끓여 드리겠습니다. 겨울 산에서 먹는 컵라면 맛이 기가 막히거든요!"

후배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단다. 산에서 컵라면이라니.

우리 팀에는 규칙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산에 절대 라면과 김밥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산에서 뭘 먹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저것 잘해 먹는다.

여름에는 회국수를 만들어 먹고, 겨울엔 물메기탕을 끓인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백숙도 삶고, 육회도 비비고, 직접 잡은 볼락도 구워 먹는다. 광주에 사는 후배는 한겨울에 참치 머리를 가지고 와 산상 파티를 벌인 적도 있었고, 선배님 은퇴를 기념하는 산행에서는 요리 잘하는 동생이 아롱사태 전골로 모두를 기쁘게 했다.

우리 팀은 먹으러 간다.

자연을 벗 삼아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도 좋고, 건전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며 의미 있는 산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그냥 먹으러 간다. 그래서 늘 배낭이 무겁다. 당일 산행이든 1박 2일이든 배낭은 크다. 당일 배낭도 기본 50 리터 이상이고, 1박 2일은 100 리터가 넘는다.

잘 먹으려면 배낭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무거운 재료와 조리 도구, 물도 넉넉히 챙겨야 한다. 대형 코펠, 접시, 압력밥솥은 기본이고, 전골냄비, 프라이팬이 누군가의 배낭에 들어 있다. 가스통도 여분으로 챙기고, 식재료 보관용 보냉팩도 필요하다. 그래도 그 무게가 아깝지 않다.

전망이 트인 바위에 앉아, 새벽 수산시장에서 장만한 활어회를 소맥 한 잔에 말아 넘기는 순간, 술은 술이 아니라 보약이 된다. 더 이상 흘릴 땀마저 없을 만큼 힘들게 올라선 산마루에 섰을 때, 친구 배낭 속에서 나오는 수박화채는 감로수가 아니라 생명의 물이다.

산을 오르며 느끼는 고단함도, 배낭 무게로 인한 어깨의 통증도, 정상에 앉아 함께 나누는 음식 앞에서는 모두 잊힌다.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국을 끓이고, 누군가는 반찬을 펼친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해내며 완성되는 한 상의 음식은 어떤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남들은 말한다. 간단하게 챙겨서 간단하게 먹고, 맑은 공기 마시고 좋은 풍경 보고 오면 되지, 뭘 그리 바리바리 싸서 가느냐고.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가는 이유는 뭔가. 케이블카도 있고 전망대도 있는데. 어차피 다시 내려올 것을.

산행의 즐거움은 결국 각자의 취향이다. 재료를 다듬고 간을 맞추는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것도, 간편식으로 가볍게 해결하는 것도, 다들 형편과 능력과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요즘은 취사 구역이 지정되어 예전처럼 물 맑은 곳, 경치 좋은 곳에서 마음껏 차려 먹는 자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기꺼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에 간다. 우리 손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은, 우리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큼이나 맛나다. 남은 음식은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나눠 먹는다. 우린 그것을 '고통분담'이라고 부른다. 그 고통도 달다.

그런 우리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그러면 어떠랴. 내 입이 즐겁고, 내 수고로움으로 남의 입도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