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마라탕은, 굳이 따지자면 내 취향이 아닌 편이다. 취향을 말하는 자리에서 취향이 아닌 것을 말하다니, 무슨 소리냐고? 그렇지만 정말로, 마라탕은 내 취향이 아니다.
취향은 아닌데 좋아한다고
나는 해산물을 끔찍하게 혐오하고, 날음식을 끔찍하게 경계한다. 특수부위 고기나 내장도, 냄새가 심한 족발이나 보쌈도 먹지 않았다. 생강도, 고수도, 아보카도도 못 먹는다. 이런 내가 소위 '향이 쎈' 음식들을 싫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같다. 이국적인 음식, 그중에서도 접할 기회가 없어 획기적으로 이국적인 음식들은 나와 늘 거리가 멀었다. 예컨대 인도의 커리, 베트남의 쌀국수, 태국의 팟타이. 모두 익숙해질 때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고, 익숙해지는 데도 상당히 오래 걸린 음식들이다. 그러니까, 마라탕은 내 취향이 아닌 편인 게 맞다.
취향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나에게는, 일정한 결을 연상시켰다. 어떤 영화 감독의 팬이라면 이런 작가를 좋아할 것 같다거나, 이런 옷을 입는 사람은 어떤 장르의 음악을 더 좋아할 것 같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나는 담쟁이를 하면서 한달에 한번 글의 주제를 고민할 때마다, 나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던 어떤 결을 느끼려고 노력하곤 했다. 나를 지배하는 기분들에 잠기거나, 막연하게 취향의 지도를 그리는 식으로. 그런데 이번 달에 나는 무심코 그와는 다른 질문을 던졌고, 다른 답을 얻었다. 한번도 취향이라는 말로 수식한 적 없었던.
'요즘 나 뭐 하고 살지?'
'어제도, 오늘도, 마라탕 먹었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절대로 내가 좋아할 줄 몰랐던, 그 음식에 대하여.
Manner of the Food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마라탕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첫 번째로 '이 음식의 방식'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다.
나는 주로 마라 맛이 거의 나지 않는 정도의 맵기로 마라탕을 먹는데, 그때마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넌 왜 이렇게 먹어?"
"음... 난 사실 '마라 맛'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이것도 맛있어."
"...? 너 마라탕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럼 왜 이거 먹어?"
"나는 마라 맛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이 음식의 방식을 좋아해서 마라탕을 좋아해."
여기서 말하는 이 음식의 방식이라 함은, 1) 음식에 들어갈 재료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점 2) 그러면서도 내 영역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 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나는 떡볶이를 먹을 때 떡을 거의 먹지 않고(야채와 튀김, 토핑을 위주로 먹는다), 바베큐 파티에서 고기보다 양파와 버섯을 열심히 집어먹는(소고기 무한리필 집에서 버섯만 구워 먹다 온 적도 있다) 사람이다. 닭도리탕에서는 감자를, 카레에서는 당근을 먹기만을 간절하게 기대하며, 냉면과 짜장면의 완성도는 각각 오이와 완두콩 고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나에게 폭력적이기까지 한(!) 주재료 위주의 요리에서 벗어나서 '내가 정확히 원하는 재료를, 내가 원하는 양과 비율로' 먹을 수 있는 마라탕이라는 음식의 방식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특히 이렇게 다소 독특한 식성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보통의 외식 메뉴는 불필요하게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 재료(요리가 아니다)가 주인 요리라도, 평범하게 주문하고, 먹고, 계산해야 했으니까. 아마 마라탕이 마라탕이 아니라 마라전골이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재료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내게는 너무나도 귀중한 권리는, 여러 명과 협의해서 사용할 시에는 그 농도가 희석되곤 하는 것이므로. 그러나 마라탕은 최소 주문 금액이라는 것만 충족시키면(최소 배달 금액보다 훨씬 맞추기 쉽다) 온전한 일인분의 식사가 주어진다. 조금 별난 나도 이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니, 이는 정말이지 드문 일이었다.
Tone of the Food
너와 나의 몸에게 착한.
마라탕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마라탕이 착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착한 음식'이라는 말이, 싱겁고 흔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착하다'는 수식이 사용되는 지점을, '착한 음식'이라는 호칭을 얻는 음식들을 잘 살펴 보자. 저렴한 가격으로 지갑을 달래 주는 음식, 간편하면서도 든든하게 배를 채워 주는 음식, 탄탄한 영양 성분과 함량으로 건강을 지켜 주는 음식... 이들은 모두 그것을 먹는 '나'에게만 국한된 '착함'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착한 것은 딱 나에게까지 이롭기 때문이지, 나로부터 올바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착하다'는 말을 가장 이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하여 착할 수 있는 음식의 조건은 무엇일까? 1) 공정한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2) 생명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3) 지구를 해치지 않는다 4) 마지막으로, '나'에게 착하다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여태껏 ‘나’에게 착한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생각해왔다. 그리고 당신은 공정무역 초콜릿을 의식적으로 구매하거나, 나무젓가락이나 비닐봉지 사용을 자제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성 식품을 먹으며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아주 ‘적법하고’ ‘위생적인’, 그러면서도 아주 끔찍하고 처참한 과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동물성 식품을 넣지 않을 경우, 마라탕은 위의 조건들을 상당 부분 충족시킬 수 있다. 이 경우 마라탕에 들어가는 재료, 그러니까 곡물과 채소 따위는 다른 국가나 인간, 그리고 인간이 아닌 동물과 지구를 유의미한 수준으로 덜 착취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름 저렴하고, 건강하고, 맛있다는 점에서 ‘착한 음식’이 되기 위한 마지막 임무도 충실하게 수행한다(내게는 그렇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마라탕이 비동물성 식품으로 구성된다는 점, 다시 말해 ‘나’뿐만 아니라 너’의 몸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위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음식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점들에 최대한 유의하며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리하여 ‘밥을 먹는다’는 아주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우리의 삶은 매순간 질적으로 달라진다.
나는 마라탕 역시 그 자체로 ‘착한 음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식사라도 어떤 메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요리라도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착함’은 달라진다. 그러한 점에서 마라탕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 가능성을 개방하고, 유지하고, 확장해준 ‘착한 음식’이다.
How To MALA
부제: 재인의 마라
1. 재료가 진열된 냉장고 앞으로 직행해서, 그릇과 집게를 손에 쥔다. 테이블을 주문 전에 안내하는지, 후에 안내하는지는 가게에 따라 다르다.
2.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담는다.
※ 마라탕은 기본적으로 무게를 달아 가격을 재는 음식이지만, 꼬치류, 육류, 어패류는 별도로 측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야채 외의 재료를 담을 때는 아예 미리 다른 그릇을 사용하면 편하다. 단, 무턱대고 담다 보면 말 그대로 거지 꼴을 못 면할 수 있다.
※ 마라탕의 평균 시가는 100g당 1500원에서 1700원이다. 순수하게 야채만 넣어서 무게를 달았을 때, 8000원에서 10000원 정도가 나오면 보통 사람의 한끼로 적당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꼬치류, 육류, 어패류를 넣었다면 이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3. 계산대로 가서 마라의 종류와 정도를 정한다.
※ 마라탕을 판매하는 식당은 훠궈(샤브샤브), 마라샹궈(마라볶음), 마라반(마라비빔) 등의 요리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마라 뭘로 하세요?' 따위의 질문에 당황하지 말고 '마라탕이요!'라고 대답하면 된다. 참고로 보통 마라탕, 마라샹궈, 마라반 순으로 단가가 비싸다.
※ 정도는 말 그대로 '마라'의 수준을 의미하는데, 이에 따라 맵기가 달라진다. 단, 단순히 맵기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에 비례해 마라 특유의 향과, 알싸하고 따가운 맛이 세진다. 대개 '제일 안 매운 맛-조금 매운 맛-매운 맛-아주 매운 맛-제일 매운 맛' 식의 설문조사 느낌이다.
4. 자리에 가서 앉고, 음식이 나오면 맛있게 먹는다. 결제를 먹기 전에 하는지, 먹은 후에 하는지도 역시 가게에 따라 다르다.
1. 마라탕에 넣을 수 있는 재료
-당면: 중국당면, 고구마당면, 감자당면, 실당면, 분모자당면 등
-면: 쌀국수면, 옥수수면, 라면, 쫄면 등
-떡: 떡국떡, 떡볶이떡, 치즈떡, 고구마떡, 단호박떡 등
-두부: 건두부, 포두부, 푸주, 일반 두부 등
-버섯: 새송이버섯,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표고버섯, 목이버섯 등
-잎채소: 청경채, 시금치, 배추, 상추, 쑥갓, 고수 등
-뿌리채소: 고구마, 감자, 연근 등
-기타: 죽순, 단호박, 수제비, 숙주나물 등
-꼬치류: 완자, 맛살, 계란, 오뎅, 유부, 소세지 등
-육류: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등
-어패류: 새우, 소라, 쭈꾸미 등
2. 재인의 추천 레시피
-처음형: 중국당면과 청경채, 숙주나물을 위주로 넣고 두부, 버섯을 취향껏 넣는다. 마라 특유의 따가운 향이 두렵더라도, 아무래도 맵기는 2단계 정도는 선택해야 '나 마라탕 먹어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물형: 두부와 버섯을 추천한다. 씹는 순간 머금고 있던 국물이 즙 터지듯 배어나온다.
-탄수화물형: 떡이나 당면을 위주로 넣자. 고구마나 감자, 단호박도 좋고, 라면이나 쫄면도 의외로 어울린다.
-스트레스형: 그냥 최고로 매운 맛으로. 따가운 게 입술인지 혀인지 생각하느라 다른 일은 곱씹을 겨를도 없다.
-부자형: 꼬치도 담고, 육류도 담고, 어패류도 담는다. 마라탕이 꼭 저렴한 음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재인의 마라탕
-푸주 20개 + 당면 5줄 + 고구마/감자/단호박/연근 3개씩 + 버섯 3개 + 청경채/노란배추 2개씩 + 떡 2개
-맵기는 아예 1단계 - 안 맵게(백탕) 혹은 2단계 - 조금 맵게
-합쳐서 약 500g/8000\ 이 조금 안 되면 적당하게, 배부르게 끼니를 채울 수 있다.
좋아하면 취향이다
고작 마라탕 따위에(?) 톤앤매너라는 멀끔한 말까지 붙여 가며 마라탕을 좋아하는 온갖 이유를 설명했건만, 아직도 뭔가를 빼먹은 기분이다. 취향은 아닌데- 라는 얄팍한 내숭으로 한 발 물러섰던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려서가 아닐지 골똘히 생각해 본다. 취향은 아니지만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쓰고야 말았어, 취향까진 아니어도 어때 좋아하는데, 하고 글을 매듭지으려 했었는데. 더 솔직해져야 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낯선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싫어하지만, 최소한 어떤 마라탕은 정말로 내 취향이 된 것 같다고.
어쩌면 나는 취향에 대해 아주 오래도록 고민하고, 그리고 아주 오래도록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취향이라는 것이 유사한 원소로 구성된 균일한 집단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의 결벽증을 물리치고 순순히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취향은 사실 그 무엇보다도 비선형적인 개념이고, 내 취향은 그 누구의 것보다 뒤죽박죽인 잡탕이었음을. 마치 온갖 재료를 다 때려 박은 마라탕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태껏, 잡탕으로 몸보신을 하는 사람처럼 바로 그 취향들로부터 힘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도.
아무래도 앞으로는 마라탕을 내 취향은 아니-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마라가 내 취향이다, 왜 말을 못해?!‘ 정도의 사람이라면, 나는 마라탕을 자주 먹으러 갈 수 없을 테니.
제멋대로인 취향을 제멋대로 풀이하는 데 도가 튼 잡식 인간 씀.
2019.05.
在人, 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