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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l 29. 2019

[서룩] 온점. 다시 찾은 여름의 강릉

2018년 나의 첫 '가담'에 이어서.

  흠 없는 파랑 속으로

  나는 어쩐지 바다가 보고 싶어져서... 그리고 충동적인 청춘영화의 주인공 놀이도 하고 싶고... 또 날씨가 한참 좋을 때인 것 같아서... 그냥 재밌고 싶어서...


  다행스럽게도 떨어져 산 8개월에 보복이라도 하듯 매일같이 만나고 있던 나의 친구도 할 짓이 없었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고속버스는 생각보다 쌌다. 일단 표를 예매해둔 월요일에 비가 온다기에 그 이틀 뒤로 표를 바꿔가면서 기어이 1년 만에 강릉에 다시 도착했다.

  마악 여름이려고 하는 6월에 훌쩍 떠나본 건 처음이었다. 3년 전에 처음 먹었던 장칼국수를 다시 먹었고 ( 분명 처음 갔을 땐 한산했었는데 다시 가니 붐볐고 젊은 직원들도 여럿 생겨 있었다. ) 오징어순대에 배추전에 이것저것 사들고 경포대를 찾았다. 작년 7월 내리쬐는 햇빛에 정처 없이 걷다가 대피했던 호텔 앞으로. 작년에 울분에 차서 콜라맛 하리보를 샀던 편의점에서 지평생 막걸리를 사서, 모래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작년과 똑같은 동행자는 작년처럼 입맛대로 노래를 틀었고 작년처럼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작년과 똑같이 나는 바다에 새끼손가락 하나 담그지 않고 마냥 앞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대로 물에 비쳐서 눈앞이 온통 파랑이었다.



신발 안에 스피커


  작년의 경포대에선 동행자의 오른쪽에 앉았는데 이번엔 그의 왼쪽에 앉았다.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려 있어 작년보단 덜 오손도손했지만 하늘 한 번, 바다 한 번 보면서 말을 나눴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돗자리를 준비해오는 철저함을 보이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어대고, 아마 몇 번이고 했었을 옛 적 얘기들을 하면서 몇 시간씩을 흘려보냈다.



  작년 여름에 찍어 둔 쉼표의 동그란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무의미하게 허우적였더니 1년이 지나 있더라

  1년에 한 번 씩은 꼭 강릉에 와주고 있어서 이젠 여기저기 안방마냥 돌아다니고, 다니는 코스도 정해져 있다. 강릉 시내와 바닷가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내내 작년의 내가 잔상처럼 떠다녔다. 작년의 나는 그 전 해의 나를 떠올렸던 것 같은데. 경포대에 하릴없이 누워있으면서 떠올린 나의 변화를 짚어보자면 - 1년 만에 4kg가 불었고, 투블럭을 했다가 머리를 기르고 있고, 피어싱이 세 개가 늘었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버릇이 들었고, 아부를 닮은 목덜미와 팔뚝을 드러내는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사연 있는 척을 그만뒀고... 나를 그냥 나로 둬 보려고 하고... 자주 무서워한다... 


  어김없이 동 틀 무렵의 이른 시간에 먼저 눈을 떠서, 전날 먹은 것들에 퉁퉁 부은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아아 나는 많이 쉬었다..! 하고 생각해버렸다. 어제의 불꽃놀이와 저녁밥이 작년의 불꽃놀이와 저녁밥만큼 멀찍한 기억처럼 느껴졌다. 뻔뻔한 도피 선언이었던 작년 강릉의 글을 읽어봤고, 그 글 이후로 내가 억지로 끌어왔던 좋아하는 것들,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들에 용을 쓰며 보내왔던 시간들을 절감했다. 쉼표라고! 변명을 무기삼아 정말 멋대로 스스로에 취해 있었구나! 정신이 번뜩!



  하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것처럼 변명은 변명을 낳는다

  변명처럼 살아온 지난 1년을 헛된 것으로 생각하게 내버려둘 순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한테 그걸 보여줄 순 없다. 애써서 포장하고,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서, 낭떠러지 같은 쉼표 꼭지에 매달려 한 가닥 희망을 기다리는 작년의 나에게 선물해줘야 한다. 아아, 변명이 필요하다, 잘 쉬었지 정말... 다시 없을 1년이긴 했지... 하고.


  작년의 글에서는 변명한답시고 ‘쉼표를 찍을 땐 다른 글자를 찍을 때보다 연필도 꽉 쥐어야 하고 손목 스냅도 써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왼손잡인데 쉼표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꺾어지기 때문에 쉼표를 찍을 때 손목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거짓말했다. 내가 바닥나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걸 보여주기가 쪽팔려서 애써 짜낸 말이었다.

  그 문장을 우연히(정말 우연히) 마주하고 당황해 황급히 쉼표 꼭지에 매달린 작년의 나를 뜯어내 등 뒤로 숨겨보지만... 소용없다. 뜯은 자리가 톱날처럼 들쭉날쭉해 모르는 척 발뒤꿈치로 밀어 쉼표 꼭지가 없던 척 한다. 처음부터 온점이었던 것처럼.

  온점, 온(溫)점!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이 기묘한 바다에 쉼표를 떼고 온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미 흑역사나 그 비슷한 것들로 굳어진 날들을 포장하기 위해서. 더 이상 서늘하게 바라보지 말고, 이름 따라 따뜻하게만 기억해놓으라고. 


  어쨌든 강릉은 참! 어김없이 부끄러운 나를 마주보게 만드는 이곳의 바다는, 모든 지우고 싶은 순간들을 다 불러내서 하나하나 읽게 해놓고 돌아와 애써 포장하게 하는 못난 공간이다. 찌질한 방향으로 솔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곳. 애써 찍었던 작년의 쉼표를 목도하게 되었던 것처럼 언젠가 여기 돌아올 날의 나를 위해 올해의 찌그러진 온점을 남겨둔다.


  그러니까 나는 내년에도 강릉에 가겠지.



서룩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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