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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EXPOSURE>로 데뷔, 2017년 12월 <Neo EvE> 발매. 2018년 7월에는 정규 1집 <Enchanted Propaganda>를 발표했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인디고뮤직에서 활동하며 <Hyperreal>, <띵>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약 15개월 만에 소개하는 재인의 뮤즈는, '여자 래퍼 재키와이'다.
그러나 오늘 할 이야기는, 뮤즈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다소 어렵고 지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작업물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해왔음에도)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몸매', '얼굴', '생얼' 따위의 단어가 자동완성되도록 하는, 그런 세간의 가십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자 했음을 밝힌다.
앨범 목록
Jvcki Wai, EP [EXPOSURE(2016)]
Jvcki Wai, EP [Neo EvE(2017)]
Jvcki Wai, 정규 1집 [Enchanted Propaganda(2018)]
Neo Eve (No Maria) But A Human이라는 인간상
재키와이는 가사와 음색 등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선보이며 씬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개인 작업 중 가장 대표적인 곡인 ‘Anarchy'와 ’Enchanted Propaganda'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자극적인 정치색을 뽐내며 이목을 끌었다. 그는 특히 음악 작업을 통해 여성의 몸을 가진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재현했다. ‘to.Lordfxxker[Neo EvE]'에서는 (픽션으로 밝혀진) 기독교 목사인 외삼촌으로부터의 성폭력 경험을 고백하고, 'RIB[Neo Eve]’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부산물이라는 신화적 근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에 더해 그는 힙합 씬 속 여성으로서 자신의 자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여러 차례 밝혔다.
내 머리 위에 천장은 유리 / 너무 높아서 여전히 지켜 low-key / 난 출생부터 도태 그게 자연의 법칙 / 근데 지금 여긴 fuckin' 21 century / (...) / 난 진 적이 없어 애초에 친 적 없으니 경쟁 상대로 / 모두 눈 감은 채로 난 시작도 안 했는데 내게 묻네 / Bitch 넌 언제 떠날래 언제 떠날래 (‘EXPOSURE[EXPOSURE]‘)
안 맞춰 좆 같은 법에 / 난 잃을 게 없는데 / 난 인간 창녀도 성녀도 아닌네 / (...) / 금목걸이 가져다줘 나도 성공하고 싶어 / 내 이름은 앨리스 여긴 너무 이상해 / 여왕이 되려면 깔려야 해 쟤네 밑에 / 나는 갈래 저 위로 / (...) / 야 이건 절대 당연하지 않아 / 세상이 원래 이런건 저 아저씨들 말이야 (‘Anarchy[Neo EvE]')
아무것도 안 걸친 몸에 / 무엇이 그녀들을 도태시켰는지 지켜보네 (‘No Maria But A Human[Neo EvE]')
아마 난 이번 겨울이 끝나도 / 살아남을 거야 인마 / 넌 말했지 여자 래퍼 수명 2년이라고 / 근데 이미 5년째 꼭 붙어있지 (‘띵[DingoXIndigoMusic]’)
그가 말하는 힙합 씬은 여성을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상정하는 곳이다. 이때 힙합 씬의 여성들은 성공을 위해서 “유리” 천장을 넘어야 하지만 현실은 몇 년 안에 성적으로 소비되어 “도태”되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자각한 재키와이는 체제에 대한 불만과 함께 성공에 대한 갈망을 더욱 열렬하게 표출한다. 그는 인터뷰 등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는 등 페미니즘에 대해 모호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여성 래퍼로서 성공하기 위해 택한 전략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환상 / 아래 숨 쉬는 난 그저 인간이란 말야 / (...) / 이게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반복되는 paradox / 높은 성벽을 깨줄 경이로운 탯줄 / 끊어줘 난 되살아났어 난 될래 Jesus (No Maria But A Human[Neo EvE]')
난 바꿨다 수저 (‘North Face[North Face]') 천장이 너무 높지만 / 불가능이란 건 없지 (‘Anarchy[Neo EvE]’)
이젠 이 바닥 밑바닥도 아닌 꼭대기 / 넌 신경 써봐 니 안위 / 허무하지 될년된 shit ('띵[DingoXIndigoMusic]‘)
’North Face', 'Anarchy', '띵‘의 가사는 여성으로 겪은 차별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재능으로 그를 이겨낸 개인으로서의 재키와이를 말한다. 재키와이가 꿈꾸는 것은 차별적인 구조의 타파보다는 (어떻게든) 성공을 이룬 자신의 모습이다. 특히 이중 힙합 씬에서 성공에 대한 재키와이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곡은 ‘No Maria But A Human’이다. 재키와이는 이 곡을 통해 (특히 힙합 씬의 래퍼에 대해)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에 거부하고 ’그냥 인간(But A Human)‘이 되리라는 소망과 다짐을 드러낸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의 두 갈래로 나누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고 환상일 뿐이며, 자신은 이에서 벗어나 여성이 아닌 ’그저 인간(But A Human)'으로서 성공을 거두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인 마리아로부터 벗어나, 생물학적 증표인 “탯줄”을 끊고 권력 질서의 “성벽”을 깰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살아난 것은 ‘그냥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남성 인간에 가까운 “Jesus”다. 재키와이가 남성중심적인 힙합 씬에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한 순간, 혹은 그러기로 결심한 순간 그가 된 ‘그냥 인간’은 무성의 인간이 아닌 남성이다. 여러 차례 지적된 것처럼 현재 힙합 씬은 명백하게 남성중심적이다. 그 속에서 ‘그냥 인간’이 되기 위해 재키와이는 자기 안의 여성을 죽이고 힙합의 남성 인간으로 재탄생해야 했다. 시민이 되어야 인간이 되듯이(*장 자크 루소), 힙합 씬에서는 ‘남성이 되어야 래퍼가 된다’는 모순적인 명제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과거의 돌보는 여성인 “Maria”를 벗어나 새로운 여성(Neo Eve)을 자처했으나 그것은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이었다. 힙합 씬에서 여성 정체성을 탈피함으로써 얻은 추상화된 인간상(Human)은 결국 마리아도 아니지만 여성도 아닌 남성(but a (hu)man)이었던 것이다.
빛나는 금목걸이 걸고 평양까지 flexin' / 내 목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개 돼지 위로 / 숭배를 받을래 다 가진 김정은 아저씨처럼 (‘Enchanted Propaganda[Enchanted Propaganda]')
they said ma way is too risky / 상관 없어 그 치트키 / 금은 이미 넘쳐 개츠비 / 처럼 살다 김연아로 남겠지 / 잃어버린 네 판단력 찾길 빌어 / 난 네모창 밖 현실 진짜 변화만을 믿어 / 죽어도 너네 같은 개돼지는 되기 싫어 / 이재용같이 진짜 힘을 갖고 싶어 / 보이는 게 다가 아냐 그걸 왜 믿어 / 차라리 김정은 아니 난 힘을 갖고 싶어 ('Winnin[MARZ 2 AMBITION]')
이를 위해 재키와이는 스스로를 돈-자본주의 권력을 성취한 남성(적인) 인물로 표상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이재용), 아니 그보다는 돈을 통한 힘(김정은)이다. 그는 권력 구조의 상부로 진출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리스크"도 "치트키"도 상관 없다. "김정은 아저씨"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선 곳에는 남성들이 있다. 여기서 "김연아"라는 여성이 재키와이가 힙합 씬에서 점하고자 했던 자리를 상징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김연아"는 재키와이가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구겨 넣은 마지막 비유에 불과하다. 오히려 재키와이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queen'이라 평한 남성 래퍼에게, 'king'이라는 한 단어로 응수한 바가 있다. 그는 팔자 좋게 여왕의 자리나 원했던 것이 아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음악에서 (힙합) 남성 전사의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수위 높은 언어를 계속 사용해야 했다.
나 한 까치 피고 난 뒤 / 달려가지 넘쳐 땀이 / 피부 까칠 찢어 사지 / 난 없어 자지 두 개야 다리 / 야 내 옆에 근육맨 아저씨 / 가슴은 씨컵 ('Work Out[IM]')
이처럼 재키와이의 음악이 그려내는 여성 래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는 두 성격의 인간이 혼재되어 있다. 하나는 남성중심적 힙합 씬이라는 구조적 차별의 대상인 여성이고, 하나는 그로부터 벗어나서 대등한 한 명(의 유사 남성)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다. 그는 마리아는 아니고 이브이되 여성은 아닌, 그 자체로 모순적인 무언가가 됨으로써 비로소 힙합 씬에서 인간이 됐다. 자신의 영역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가 채택한 전략이 결국 여성인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전략으로만 여성 래퍼가 힙합 씬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역설이다.
Human 속 (just) Rapstar와 Outsider의 굴레
어쨌건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힙합 씬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의 음악은 좋은 실적을 거뒀고, 그는 힙합 씬의 핵심적인 인물들인 남성 동료와 친분을 쌓고 수많은 남성 리스너를 자신의 팬으로 확보했다. 여기에는 그의 성과가 힙합 씬 속 소수자로서, 그러나 특혜 없이 ‘정정당당하게’ 이뤄낸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여성 래퍼를 향한 기회나 관심을 불공정한 특권으로 여기는 시선은 Mnet의 TV 프로그램 ‘Unpretty Rapstar’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Mnet의 기존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Show me the money’와 별개로 여성 래퍼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던 ‘Unpretty Rapstar’ 방송은 당시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참가자들의 실력을 비판하곤 했는데, 이 중에는 수준 미달임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할당받은’ 여성 래퍼들을 향한 조롱과 모욕의 언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불가능이란 건 없지’를 외치며 등장한 재키와이의 존재는 가뭄의 단비였을 것이다. 그는 여성으로 겪는 차별을 고발하고 그에 항의하긴 했으나, 음악 외적으로 여성 래퍼에 대한 몫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는 ‘여성 래퍼가 씬에서 소수이기 때문에 차별은커녕 특혜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힙합의 필드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는 증거물이 되었다. 이때 재키와이의 꿈은 스스로의 힘과 성공(만)이 중요하다는 태도로 만들어졌으며, 다시 그러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한편 다음과 같은 점도 래퍼 재키와이의 인정(respect)에 한 몫 했다. 하나는 힙합의 바람직한 인간상, 즉 고난을 극복하고 부와 명예를 얻은 인간의 형상에 ‘피해자 여성’보다는 ‘능력자 인간’이 가깝다는 것이고, 하나는 남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힙합의 IDGAF(I Don't Give a Fuck) 정신에 재키와이의 솔직한 욕망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이때 재키와이가 제시한 여성의 삶은 그저 그의 성공을 부각하기 위한 사적인 서사로 치부된다. 구조적 차별에 대한 고발이 영웅의 고난 극복 서사로 사소화되는 것이다. 이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원리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힙합 씬에 명백하게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구조보다는 개인에 대한 경우로 남고 만다.
Girl I can't come close to you / We're livin' in Hate generation / (...) 다른 껍질 다른 형질 / 다른 성기 다른 법칙 / (...) / 너의 불행을 내가 왜 슬퍼해야 해 / (...) / 난 너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야만 행복해 ('HATE Generation[Enchanted Propaganda]')
솔직해서 미안 난 걍 해볼래 돈지랄 / (...) / 재키님을 몰라봐 니 빈 지갑 털러 애교 떨 년이나 골라봐 / 난 안 벌리고 법이고 뭐고 곧 벌릴 돈으로 사서 / 재밌게 놀아볼란다 ('Hyperreal[Hyperreal]')
돈 낳는 마리아 / 무례 그게 뭔 말이야 / 누군데 돈 많은 가시나 ('야 인마[벼락부자애들]')
그는 ‘HATE Generation'에서 자신이 다른 여성의 삶을 대변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였고, ’Hyperreal'에서는 어떤 다른 여성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기까지 한다. 돈을 향한 그의 질주에는 "마리아"와 같은 성역조차 무효화된다. 그에게 문제는 오로지, 내가 "너보다" "돈 많은 가시나"로 "올라서"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재키와이의 관심이 오로지 '돈', 자본주의 체제 하의 성공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어 / 내가 죽어도 내 돈은 벌어줘 / (...) / 빛나는 금목걸이 걸고 평양까지 flexin' (‘Enchanted Propaganda[Enchanted Propaganda]')
내 신은 유일 영광의 그 빛 / 찬양하는 님 나의 자본주의 / (...) / 예술 인간 인간은 돈 욕심은 돈 / 상업은 돈 이익은 돈 사랑은 돈 자연은 뭐 / 내 옆의 여신 Nike 그래서 그냥 해 난 swoosh / 예술과 정직 넌 도대체 뭔 개소리야 woof ('Capitalism[Enchanted Propaganda]')
내 인생의 진리 / (...) / 내 돈이 밝혀질 니 머릴 밝히고 / (..) / 통장에 더 쌓일 공공의 적이 된대도 / (...) / 이 욕망 절대로 끝이 없어 / (...) / 단 하나의 진리 / 하나의 길 / 하나의 빛 다 좆까 그냥 즐겨 이 자본주의 위의 행복 / 난 몰라 너넨 지껄여 그 야매 같은 문화개론 ('Izakaya[AI, THE PLAYLIST]')
또 'Enchanted Propaganda', 'Capitalism' 등에서 그는 꾸준히 돈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발산했다. 아무리 Money Swag이 힙합의 핵심 요소라지만, 재키와이의 돈과 힘에 대한 집착은 광적인 수준이다. 그는 말 그대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예찬한다. 재키와이는 끊임없이 돈과 성공을 좇는 이기주의자로서 자신을 표상했고, 그를 통해 영리하게 목표를 달성했다. 즉 재키와이는 여성으로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어떤 가치가 아닌 돈을 욕망하는 평범한 경쟁자로 자신을 힙합 씬에 각인시켰다.
급기야 얼마 전 그는 SNS를 통해 자신은 ‘여성 인권 운동가가 아니’라며 ‘페미 논란’에 답했다.
제가 여성 인권 운동가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저한테 실망하셨다구요 저의 직업은 래퍼입니다 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발언을 강요 받았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어떤 일에 공감하고 사회적 움직임에 힘을 싣는 것 그리고 그냥 저의 입장에서 가사를 쓰는 것과 별개로 수많은 인터뷰에서 여성으로서 혹은 여성래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평가 받기 일쑤고 제가 썼던 많은 벌스들은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남성인 저의 동료들이 마치 저의 적인 것처럼 배척하는 모습은 저를 항상 이 씬의 구성원이 아닌 아웃사이더로 만들었고요 저는 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고 저의 만족을 위해 창작을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저는 힙합 문화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오로지 저를 위해 선택한 일입니다 저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면 지나쳐 주세요 제 입장이 돼본 적 없으실테니 이해 못하는 것도 저는 이해합니다 더 이상 입장을 표명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키와이 인스타그램 스토리)
특히 한국 힙합 씬에서, 페미니스트는 그 존재 자체로 논란거리다. ‘여성보다는 내 이야기’를 표방하며 ‘그냥 인간’이 되겠다고 했음에도 재키와이 역시 ‘여성 래퍼’의 굴레와 ‘페미 논란’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자, 즉 여성이 아닌 남성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음악 외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꺼렸던 재키와이는 이번 선언을 통해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쓴 글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 래퍼로서의 삶을 읽을 수 있다. 그가 말하길, 힙합 씬에서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 여성 래퍼를 “이 씬의 구성원이 아닌 아웃사이더”로 만든다. 일례로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래퍼’로 불리는 여성 래퍼 슬릭(Sleeq)은 “나는 내가 ‘대한민국 힙합씬’ 내에 속해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재키와이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숨기고 ‘그냥 인간’이 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한편 그가 이 해명을 기필코 해야 했던 이유는 “대부분이 남성인” “동료들” 때문이기도 했다. 채용과 승진 등이 제도화되지 않은 힙합 씬이라는 직업 환경에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소위 ‘인맥’은 필수적이고, 그 ‘인맥’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재키와이가 여성 래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은 힙합 씬의 남성중심성을 반증한다. 그가 자신의 서사를 여성의 것으로 부각할수록 멀어지는 것은 힙합 씬의 ‘그냥 인간’들, 즉 남성 동료들과 남성 리스너다. 반면 남성 래퍼가 남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이나 전형적인 남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힙합의 ‘그냥 인간’은 남성의 형상을 장려하고 힙합 문화를 그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확립했다. 최근에야 힙합의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남성중심적인 힙합 씬의 성격을 부정하기보다 반증하는 것이라고 봄이 옳다.
이처럼 재키와이가 ‘그냥 인간’이 되기 위해 내놓은 해명은 도리어 그가 ‘그냥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없었을 맥락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공평하고 동등한 경쟁을 거쳐 승리를 거머쥔 승리의 여신 "Nike"로 자신을 묘사했으나, 그가 진실로 공평하고 동등하게 남성 래퍼들과 경쟁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키와이는 자신이 겪은 역사적 맥락을 소거함으로써 힙합 씬의 구성원으로 승인되었다. 그리고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닌’ 재키와이의 모순적 존재는 힙합 씬의 ‘그냥 인간’이 곧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것은 힙합 씬에서 남성은 그 자체로 ‘~인’ 무언가를 여성은 ‘(~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재키와이의 여성 래퍼 성공 신화는 그저 개인의 성공, 그리고 말 그대로 신화에 머문다. 앞으로도 지붕을 뚫고 등장하는 여성 래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키와이는 표면적으로 ‘여성 래퍼’의 파이를 마련했을지언정 지붕을 뚫고 올라온 그들이 ‘여성 래퍼’로 남는 것은 더욱 어렵게 했다. 이는 개별 여성 래퍼의 성공과는 별개로 힙합 씬의 토양이 내포한 남성중심성을 타파하는 과정이 지난할 것임을 의미한다. 재키와이의 존재는 근본적인 불평등 해결을 꿈꾸는 ‘나쁜 페미니스트’보다는 남성의 파이에서 자신의 몫을 떼려는 ‘나쁜 여자’에 더 가까웠다.*
*(“체제변혁 없이 남성의 파이를 되찾아오는 데까지만 관심을 두는 ‘나쁜 여자’는 99퍼센트의 여성을 위해 세상을 변혁하는 데 관심을 두는 ‘나쁜 페미니스트’의 정치학을 퇴색시킬 위험이 있다.” 한겨례. '나쁜 여자' 아니라 세상에 도전하는 '나쁜 페미니스트' 되길.)
재키와이, 마녀의 물음
이처럼 재키와이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재현하는 듯했으나 동시에 그를 거부했다. 그가 지향하는 ‘그냥 인간’이 특히 힙합 씬에서는 결국 남성의 형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인간’이 되겠다는 그의 선언은 모순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승인받는 역설적 형국에 처했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여성’으로서 특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모순을 형상화한다. 재키와이는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 래퍼로서 자신의 특성을 소거하고 ‘그냥 인간’이 되려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힙합 씬의 맥락에서 그가 ‘그냥 (남성) 인간’‘인’ 적은 없었고 오히려 그것이 ‘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그의 전략 역시 페미니즘의 모순을 역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자신의 그러한 뒤섞인 존재성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인과 힙합 / 끔찍한 혼종 / 난 진작 받아들였지 / 나라는 혼돈 ('Hyperreal[Hyperreal]')
한편 그는 승인 이후에도 그를 유지하기 위해 성과 관련된 담론을 회피하고 여성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했다. 비록 그가 한번도 ‘그냥 인간’이었던 적이 없을지언정 그러한 수사를 반복적으로 선언함으로써 그는 꽤 성공적인 힙합 씬의 구성원 ‘그냥 인간’이 (비로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남성이 되어야 래퍼가 된다’는 명제에 충실함으로써 래퍼에 여성의 영역은 없는 현재의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한다. 사회적 약자가 권력 구조의 상위에 진입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상황은 추상적 개인이라는 개념의 허구성 때문이다. 흑인이 백인이 되기를 원하듯, 남성(그 자체인 추상적 개인)이 될 것을 규범화한 여성 래퍼의 내면은 필연적으로 자기부정에 치닫는다. 오로지 자신의 부와 명예에 충성을 맹세한 재키와이의 자기예언은 이렇게 자신을 지우며 실현된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렸다는 ‘힙합 개인'의 성공과, 그곳에서 여성의 자리를 재구성할 수는 없었다는 여성의 실패를 함께 보여주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역설이 바로 그것의 “위대한” 점이듯(*조앤 스콧), 재키와이의 실패는 실패함으로써 의의를 갖는다. 여성과 여성이 아님을 오가는 그의 혼성적인 존재는 힙합 씬에 뒤틀림을 유발한다.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계속해서 제시하는 한편, 자신의 정체성이 여성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탈주한다. 이는 힙합의 ‘그냥 인간’에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고발하며 동시에 한 여성이 ‘그냥 인간’에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적 모순의 체현이다. 상술했듯 그의 존재는 참가의 평등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의 증거로 전유될 여지가 있지만, 동시에 그것의 바탕인 평등하게 경쟁하는 근대적 개인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그가 음악을 통해서 보여준 여성 정체성의 재현(representation)이 모종의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는 여태껏 없었던 식으로 여성 래퍼의 삶을 발화했고, 그가 말했듯 그가 여성을 대변(vertreten)한 적은 없을지언정 그는 이미 한 여성의 삶을 수행적으로 표상(darstellung)하였다.
나도 똑같애 equality를 주장하기 위해 높여줘 / 네모창 밖 현실 속 내 삶의 quality / 정의를 위한 정의가 진정 진정성이냐 / 이 좁아터진 대륙은 어차피 반이 섬이야 / (...) / 방주에 올라탄 새로운 EVE / 나에게 그건 더는 아냐 fantasy / 뭐든지 변하니 없다는 말이야 영원한 가치는 / 아님 내가 그 방주의 주인이 되는 거지 ('FNTSY[So!YoON!]')
마녀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Jackee'에서 따왔다는 그의 예명처럼, 그는 여성과 여성이 아닌 존재를 오가며 힙합 씬에 혼란과 충격을 주입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정의”에 반문하는(why) “새로운 이브”가 되기 위해서, 그는 그 경유적 행위가 갖는 모순을 더욱 명확하게 직면해야 한다. 즉 그는 “저는 힙합 문화의 피해자가 아닙니다:의 표면적인 진술에서 벗어나야 더 자유로운 마녀가 될 수 있다. 이로써 누군가의 삶의 질(quality)을 소거하면서 성립하는 평등(e-quality)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혹은 평등(e-quality)을 주장하기 위해 개인의 특성(quality)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어떤 모순으로부터 만들어졌는지 그는 밝혀야 할 것이다.
FNTSY – with So!YoON!
"우리에겐 더는 아냐 fantasy / 우리에겐 더는 아냐 fantasy / 이 땅은 우리 거 넌 뭘 겁내 / 어서 내 손을 잡아 걱정마 ma sis" "속이지 못해 타고난 개돼지 같은 내 충성심 / 나도 똑같애 equality를 주장하기 위해 높여줘 네모창 밖 현실 속 내 삶의 quality / 정의를 위한 정의가 넌 진정성이냐 / 이 좁아 터진 대륙은 어차피 반이 섬이야 / 언젠간 바다에 잠기고 / 우린 다른 땅으로"
Stop talking!– with Bryn
"필요해 총과 칼이 / 달마다 피난리 / 대피소 피난 / 시발 넌 왜 또 지랄이야" "칼빵 안 맞을까 쫄려도 / 억울하진 않아 / 뭐 굴하진 않아 / 절대 굴하진 않아도 / 뭐 쿨하진 않아"
호랑이소굴 – with Giriboy
"날 조용히 묻어줘 서울 아닌 곳에 / 그때라도 맘 편히 쉴 수 있게 / 또 한 번의 계절이 끝나가 / 새로운 이름들 날 지나가 / 기억하려 하지 좋은 순간만 / 뭐가 어찌 되든 We gon be alright / 이 게임의 룰은 잘 몰라 난 / 그래도 다음 단계를 올라가 / 많은 걸 바라진 않아 난 / 단지 되고 싶어 사람 같은 사람"
North Face – with Coogie
"직접 떠먹여 줘도 못 처먹는 / 새끼들 때문에 머리가 띵 / 난 바꿨다 수저 차라리 세상을 속여 / 너도 이 세상에 속진 말길 / Imma go where I go / 아마도 이 끝에 뭐가 남는지 난 알아 / 그래도 그냥 이래 산다고 / 이 씨발놈들아"
Work Out – with Indigo Music
"빵빵해 I work out / 코로만 마셔 설탕 / 죽였어 윌리 웡카 / 내가 될래 공장 / 빙그래 웃어 쟈키쟈키 / Yeah I feel so cocky"
Izakaya – with Kid Milli
"wons and yens 챙겨 원재 내 오니상 / money calls money calls me 재키쨩" "곁들여 선악과의 원죄 / 위에 천당 사실 적폐 / 그래도 난 안 떠나 이 세속 / 내 이름은 이브야 새로운"
Kocean – with Kid Milli
"헤엄쳐 다녀 / 수면 위로 달려 / 우리는 타고나길 이렇게 / 사는 거야"
Beluga – with Kid Milli
"쳐다보지마 if u ain’t bout money / 말은 걸지마 if u ain’t got hunnit / 난 절대로 쉬지 않아 밥벌이 / 지나가는 고기 떼에게 엿 잘 먹임 / 어차피 이 바닥 수족관 우리가 인기짱 벨루가 휙 / 소리쳐 끽끽 재롱부려 끽끽"
Finish Line – with 박재범, Superbee
GOTT – with Simon Dominic, Moon, Woo
천둥벌거숭이 – with ZICO
Liquor – with Zene the Zilla
Fade away – with Coggie, Paloalto, The Quiett, 뱃사공
*참고한 글
한국일보. [인터뷰] ‘언프리티’ 랩스타라고? 한국에서 여성 래퍼로 산다는 것.
(URL: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803170930392809)
W Korea. 확고한 음악, 단단한 언어, 새로운 서사를 가진 여섯 뮤지션을 만나다.
(URL: http://www.wkorea.com/2019/04/11/6-colors-vo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