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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토 Jun 19. 2019

어쨌든 즐겁게는 봤지만

알라딘(2019)을 보고

널리 알려진 동화를 재해석하여 새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전을 아는 관객이 많은 만큼 기본 설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단순한 영상화 또는 재현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구시대의 관성과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며 그 과정을 어떻게 봉합하는지에 따라 서사의 질이 달라지곤 한다. 안타깝게도 알라딘(2019)은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시대의 관성에 갇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 간 균형이 붕괴되며 특히 주인공인 알라딘과 메인 빌런 자파의 활약이 아쉽다. 물론 화려한 뮤지컬적 요소와 유머는 세대를 초월한 재미를 보장하지만 장단이 뚜렷한 아쉬운 영화라는 점은 변함없다.



알라딘(2019)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자스민(나오미 스콧 분)이다. 원작으로부터 가장 많이 변화한 캐릭터인 그는 영화가 아라비안 나이트에 이식하고자 하는 가치의 상징과도 같다. 자스민이란 캐릭터의 비범함은 현실 인식과 해결 의지에서 나온다. 그는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술탄이 될 수 없는 현실에 의문을 품는 인물이며, 동시에 후반부 자파의 반란에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여 반기를 드는 자이기도 하다. 또한 이 두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곡 'Speechless'는 자스민의 캐릭터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다만, 후술 할 악역 캐릭터의 한계로 인해 자스민의 저항이 부조리를 발생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만 향하게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지니(윌 스미스) 역시 제목이 '지니'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 자스민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면 지니는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는 역할을 맡는다. 우선, 전지전능한 램프의 요정으로서 그는 화려한 시각 효과와 시대를 넘나드는 트랙리스트를 만들어 영화의 최고 장점인 뮤지컬적 요소를 돋보이게 만든다. 동시에 그가 램프 속 삶을 지겨워하는 인간적 한계를 가진다는 반전은 지니를 원작과는 다른 친근하고도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특히 영화 전체가 인간이 된 지니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옛날이야기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액자식 구성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 영화의 허구성이 주는 거부감을 희석하는 동시에, 알라딘(2019)이 누구를 위한 영화인지, 왜 뮤지컬의 형식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친절히 보여준다.


아쉽게도 자스민과 지니를 제외하면 나머지 캐릭터의 매력은 부족하며, 특히 주인공과 메인 빌런은 관객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알라딘(매나 마수드 분)은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는 인물로 적절히 모험하다 적절히 실수하고 적절히 만회하는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진흙 속 보석이라는 미사여구와 노래를 통해 그가 빈부격차의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해보려 하지만, 이는 초반부 그의 도둑질을 정당화하기에도 부족하며 영화 전체에서 크게 부각되지도 않는다. 또한 인물의 인식 수준도 원작 시대의 관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례로 왕자로 위장해 자스민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말실수처럼 뱉는 발언은 낮은 인식 수준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더욱 안타까운 캐릭터는 메인 빌런인 자파(마르반 켄자리 분)다. 그는 주인공인 자스민과 알라딘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리셰를 반복하며 흔하디 흔한 악당으로 전락한다. 전형적인 행동만 하다 보니 평면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자파는 좀처럼 위기감을 고조시키지 못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욕먹을 구석을 모조리 자파에게 몰아준 각본의 책임이 크다. 자파를 제외한 누구도 표면적인 악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약한 노인으로 묘사되는 술탄은 엄연한 국정 책임자이며, 주인공들의 꿈을 방해하는 시스템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자파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오래된 동화의 설정을 가져왔더라도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장점도 많은 영화다. 디즈니 특유의 동물 및 사물 캐릭터는 깨알 같은 웃음을 유발하고, 언젠가 들어본 듯한 노래와 춤은 알면서도 당하는 매력이 있다. 시각적 효과와 사운드만 생각하더라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이며 극장을 나서며 3D로 관람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 내부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어쨌든 즐겁게는 보았으나 기억에 남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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