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밤. 까딱하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내릴 것 같은 기분. 공기마저도 멈춰있는 게 확실한 어둠 속에서 내 정신은 또렷해질 때가 있잖아. 그냥 그 정도면 뭐라도 하겠는데 자꾸만 불안해져. 서러웠다가, 뭔가 되게 억울하다가. 한 사람이 생각났다가 여러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고. 내가 했던 말이 이상한 파장이 돼가는 걸 상상하기도 하면서 뒷골이 찌릿할 정도로 무서워지고. 그러다보면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아서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는 순간.
그건 외로움이야.
누구나 좋을 때는 좋지. 안 좋을 때 진실이 수면 위로 그 비루한 모습을 드러내 보여. 평소라면 학교나 직장에서 알게 된 사이들이 든든해. 자기의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힘든 일도 의논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가 그 모든 역할에서 잠시 떨어져 나가 있을 때는? 새로운 곳에서 산다는 것에 불확실성을 동반할 수는 있지만 그곳이 같은 언어와 같은 혈통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방심하다가는 자칫 뼈까지 발리고 위기에 빠질 수 있어. 잘 알지 못하면 신체의 위협은 물론 경제적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몰아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어. 죽음은 가까이에 있고, 무인도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을 다잡기에는 차라리 나을 거야.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만이 결국 자신을 무장하게 할 수 있으니까.
외로움이란 감정은 사회적으로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기대하는 것에서 좌우돼. 한 사람에게서 안락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군중 같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와중에도 외롭다고 느낄 수 있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 혼자서 도움을 얻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것이 더 큰 위험으로 다가와.
이곳의 밤은 원래 항상 건조한가요 / 창밖엔 비가 오느데 나는 목이 말라요 / 나를 외롭게 만드는 저 불빛이 /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지만/ 밤새도록 빛나면 나는 잠들 수가 없는데…
―십센치,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