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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Nov 18. 2021

길을 물을 때

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길을 물을 때  


영어를 배울 때 맨 처음 배우는 게 “아이 엠 어 보이. 유 아 어 걸.” 이지만 평생 써먹을 일 없는 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저거다. 나는 소녀입니다, 라는 말을 굳이 제 입으로 말해야 하는 상황과 자리가 있을까. “하우 아 유?” 라고 하면 “아임 파인, 땡큐.”, 그리고 “앤 쥬?”를 꼭 붙이지 않으면 미국에서는 무례한 사람이 된다는 경고성 교육 역시 받았지만, 실전에서 저 문장을 구사한 적도 없다. 오로지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만 저 회화를 들으면서 실소를 터트릴 뿐이다. 


만약 당신이 길을 물어보며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죄송한데요.” 나 “저기 실례할께요.” 혹은 “길 좀 물을게요.”라고 한다면 상대가 쌩- 지나칠 확률은 올라간다. 길을 묻고 싶다면, 곧바로 장소를 대라. “**식당 어딘지 아세요?” 혹은 “**역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라고 말이다. 


서울 거주자들에게는 집단적인 경험이 있다. 한번 행인에게 친절을 보였다가 “도를 믿으십니까” 포교자들에게 걸렸거나, 걸릴 뻔 했거나, 소매가 잡혀본 경험 말이다. 그들은 단정하게 단추를 모두 채운 체크무늬 셔츠에 눈 똑바로 뜨면서 입만 웃는 은은한 ‘광기’를 풍기고 있다. 호되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분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한 사람은 그 기운을 너무나 잘 기억할 뿐더러, 일단 상대가 그런지 아닌지 관찰하는 게 소모적인 에너지라서 누군가가 길에서 “저기요.”라고 하면 일단 곧바로 지나친다. 


그래서 뭔가를 물어보려면 에두르지 말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부러 미소를 띨 필요도 없다. (포교자라는) 오해만 산다. 사무적으로 물어봐야 원하는 대답을 들을 확률이 올라간다. 자신감을 갖고, 쫄지 말고, 곧장 물어보라. 그러면 거의 같은 속도로, 상대방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을 할 것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손을 젓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럼 그 뿐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뭐, 어지간하면 어플 지도를 보고 직접 찾아가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혹시 평소에 금방 피곤해지지 않아요?

자고 일어나도 금방 다시 눕고 싶어지지 않아요?

그런 적 한번도 없어요? ……그쵸, 있죠!” 


―강유미 유튜브 채널 ‘도를 아십니까’ ASMR 클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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