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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기를 해냄

by Aaaaana

그렇다. 약 열흘 전쯤 통렬한 자기 반성을 담아 '그냥 할 결심'이라는 글을 썼는데, 뱉어놔서였을까? 정말 그냥 해버렸다.


11월 내내 공모전에 낼 글을 시작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놓치도 못한채, 공모전 마감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할 결심을 하고 일단 시작했더니...... 결국 해냈다. 처음 계획했던 단편 소설은 아니지만, 일주일 정도 집중해서 짤막한 단편 동화 한 편을 써서 공모전에 낸 것이다. 내놓고 보니, 여기저기 못생긴 구석들이 보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완성'했다할 만한 수준으로 이야기를 완결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역시 일단 시작해보니,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의 시점을 끝까지 일관되게 끌고 가는 것부터 난관이었고, 간결하고 선명한 문장을 쓰는 것은 왜이리 어려운 것이며, 주어가 앞에 왔다 중간에 왔다 왔다갔다 난리였고,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쓴 이야기의 주인공에 이입해 울컥하기도 했다. 초고를 몇몇 지인들에게 보여줬는데 피드백을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과 예상치못한 반응들이 신기했고 퇴고하는 과정은 압박감과 박진감의 콜라보였다. 결과물에 장문이 너무 많고 설정이 좀 유치한 것도 같고 묘사는 상투적이고...... 어쩌고 저쩌고 비평하자면 끝이 없지만, 나에게 관대해지기로 한 이상, 이 정도면 된 거다.


일단 한번 해냈으니, 계속해 볼 용기가 생겼다.


단편 동화를 쓰는 일주일 동안 왠만하면 도서관에 나와 글을 썼다. 엊그제 원고를 투고했지만 어제 오늘도 도서관에 나왔다. 핸드폰을 집어들지 않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거나 뭐라도 일단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는게 도서관의 힘인가 싶어서다. 원고를 시작도 못할 때는 그분들의 작품과 내 비루한 글 사이의 간극 때문에 다른 작가님들의 책을 괴로워하며 읽었는데,어제 오늘은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오랜만에 즐기며 읽었다.


연말에는 좀 더 많은 책을 즐기며 읽고 싶다. 그들의 재능을 부러워하기보다 즐기며. 내가 그냥 하고 있음을 즐기며. 주절주절 아무 말이라도 내뱉고 적어보는 것을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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