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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토끼 Aug 20. 2021

당신께 건네는 편지

민들레 홀씨와 검은 나비와 할아버지



49재 가운데 2재를 치르는 일요일이었다. 오전부터 하늘이 흐리더니만 마침내 비가 팔랑팔랑 내렸다. 절 안이 아닌 바깥에 있던 나는 커다란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초록에 부딪혀 나는 빗소리가 귓가에 쌓여 내부를 일렁이게 했다. 고개를 숙이니 축축해진 흙이 검은 신발 앞코에 묻어있었다. 개미들이 그 질어진 흙에서 제 일을 하며 나돌아 다녔다. 저 앞에서 끈이 없는 붉은색 목줄을 두른 누르스름한 강아지가 쿨쿨 잠에 취해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미처 가리지 못한 빗줄기가 내 몸에 떨어져 내렸다. 그렇다 해도 처마 밑으로까지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뭇잎을 쓸고 내려온 빗방울을 온전히 맞고 싶었다. 머리칼과 어깨, 드러난 팔에 물방울들이 맺혔다. 울적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져 흐물거렸다. 내가 아끼는 것들이 한 군데에 들어차 있었다. 추적이는 빗소리, 촉촉하게 떨어져 내리는 비의 모양, 순한 강아지, 몸에 닿는 연하고 축축한 빗물, 적막, 초록들. 분명 울적한 마음은 가라앉았지만 흐물거림에 취해 울고 싶어졌다.      






할머니 댁은 불과 차로 5분 거리 내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들어서는 길에는 민들레가 자주 피었다. 난 노랗게 핀 꽃보다 홀랑거리는 하얀 홀씨가 더 좋았다. 홀씨를 발견하면 입을 동그랗게 모아 후 불어주었다.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았던 홀씨가 입김에 멀리멀리 흩어지면 다른 곳으로 여행을 보내주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민들레가 자주 피던 그 길 끝에는 아귀가 잘 맞지 않는 회색 철창문이 있다. 문고리를 돌려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나온다. 마당에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어릴 땐 그 옥상으로 올라가 자주 뛰놀곤 했다. 마당 바닥에는 할아버지의 무거운 운동 기구가 놓여 있곤 했고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나와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초록들이 반겨준다. 한때는 조금 꾀죄죄한 하얀 러닝을 입고서 높게 자란 나무들을 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이따금 씩 볼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종알거렸다고 한다. “할아버지, 나무가 아파하는 데 나무를 왜 잘라요?”     



그 시절 난 남자애들과 삼총사를 만들어 블록을 이어 만든 칼싸움도 즐겼지만, 압도적으로 소꿉놀이를 좋아했다. 때문에 할머니 댁에 가서도 할아버지와 소꿉놀이를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기, 난 엄마.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와 내가 그랬다니.      



꾹 다문 입술과 진한 눈썹, 툴툴한 말투, 곧고 커다란 키, 널따란 어깨, 엄한 표정. 할아버지는 마냥 친근하게 대하기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내게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으셨지만 얼마간 호통을 치셔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할아버지에게 홀로 맡겨진 날이 있었다. 어쩐지 그날은 생생하다. 가뜩이나 조용한 할머니 댁은 적막으로 둘러싸였다. 여덟 살치고 난 얌전했고 할아버지는 더 과묵한 사람이었다. 집 너머에서 들리는 새소리, 열린 창밖으로 평소 자주 보이던 길고양이 몇이 살금살금, 할아버지가 끓여주는 라면 냄새. 할아버지와 단둘이 있던 유일한 기억인 탓일까, 별 것 없는 일상 중 하나였던 그날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도 세월인지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하양과 회색이 번져가는 머리칼과 눈썹, 말라가는 몸, 앙상하게 불거지는 손마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부푸는 것도 있었다. 사랑, 이라고 해야 할지 표현이라고 해야 할지. 사랑하는 마음은 늘 있었기에 표현이라 부르는 게 맞겠다.      



할머니 댁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와 오빠는 할머니를 꼭 안고서 “또 올게요”하는 의식 같은 게 있었다. 어느 날엔가 문득 옆에 가만히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외로우실까 싶어 안아드리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어색하게 악수로 맞바꾸셨다. 오기가 생겨 그 뒤로 난 매번 할아버지를 안으려 했고 끝내 악수는 엉성한 포옹으로 바뀌었다. 몇 달 전엔 우연히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안아드리고 문밖을 나서기 전 돌아봤더니 홀로 울고 계셨다. 또 그즈음 저녁을 먹던 중 할아버지가 옥돔의 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주었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속으로 울음이 몰아닥쳤다.     



이토록 표현이 부풀어진 만큼 또 부푼 것이 있었다. 웃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할아버지는 자주 웃으셨다. 할아버지의 생전 마지막으로 뵙던 날이었다. 예쁘다고 칭찬 안 하는 할아버지에게 빈말이라도 손녀딸 예쁘다- 해달라 했다. 할아버지는 끝내 입을 꾹 다무셨고 집 안은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환하고 장난스레 웃는 얼굴 역시 처음이었다. 그날이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 될 줄은 그 순간의 나는 미처 몰랐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 할아버지를 이끌고 병원으로 가려했지만 집 밖을 안 나가려 문을 꾹 붙들고 버티셨다고 한다. 바깥까지 겨우 나온 할아버지는 잠시 5분만 쉬자 하셨고 결국 내어준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셨다. 엉엉 울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아빠를 잠시 눈을 떠 가만히 바라봤다던 할아버지. 민들레가 자주 피던 그 자리에서, 홀씨를 후하고 날려주던 바로 그 길가에서. 할아버지는 홀씨를 타고 떠나셨다.


     

난 아빠의 전화를 받고서 엄마와 자는 오빠를 깨우고 다급하게 응급실로 달려갔다. 가는 차 안에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우리보다도 구급차는 더 늦게 왔고 그 안에서 어린애처럼 우는 아빠가 내렸다. 아빠가 그토록 많이 울던 모습을 난 처음 마주했다. 그리고 몸에 뭔가를 많이 붙인 할아버지가 이동식 침대에 실려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꼬꾸라질 듯 휘청였다.      



그날 홀로 떨어져 안치실 앞에 앉아 있는 데 누군가 감싸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안치실 주위의 차가운 기온 속 몸이 알 수 없는 온기로 데워졌다. 할아버지와 포옹했을 때의 기분. 그 순간엔 아무에게도 말 안 하리라 했다. 해봤자 안 믿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후에 오빠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오빠는 울면서 말했다. 할아버지가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아무도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랬다고.     



한동안 날이 흐리더니 장례식 동안에는 화창하다 못해 햇볕이 따가웠다. 마지막 날, 양지 공원에 가기 전 할머니 댁에 들렸다. 나무를 자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 댁에 들어서면 부러 너희가 누구냐라며 장난치던 할아버지, 사투리를 내뱉던 할아버지, 소파 뒤 책상이 놓인 구석에 앉아 뭔가를 끄적이던 할아버지, 생선 살을 발라 올려준 할아버지, 엉성하게 포옹하고서 투박하게 등을 두어 번 탁탁 두드리던 할아버지, 눈물을 훔치던 할아버지, 환히 웃던 할아버지. 이제 그곳에 가도 할아버지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먹먹했다.     



절에 있는 가족 봉안 탑에 할아버지를 안치해드리고 절 앞에 서 있는 데 난생처음 검은 나비가 내 앞을 날아들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함께 본 엄마가 “할아버지 아니야?”라며 가볍게 말했다. 난 그저 웃어넘겼다. 아닐 거라고. 아니어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검은 나비든 어디든 갇히지 않고 훌훌 편안히 계실 거라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검은 나비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곧바로 다시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할머니 댁 정리 중에 아빠는 소파 뒤 책상에서 할아버지의 메모를 발견했다. 내 이름, 오빠 이름, 사촌 동생들 이름, 오늘은 몇 월 며칠입니다, 세 아들, 세 며느리 이름 등등. 말기 암에 치매 증상을 보이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애쓰셨다. 그 얘기를 듣던 날 밤 새벽녘 동이 트도록 난 울음을 가둘 수 없었다.      






“무정한 사람, 무정한 사람. 날 두고서 그 길을 외롭게 어찌 혼자 가려고.”



할머니는 응급실 앞에서, 장례식 내내 이 말을 자주 내뱉으셨다. 언뜻 할머니를 보면 금방 눈에서 물기가 어렸고 곧바로 눈물을 쏟아내셨다. 어쩌면 할머니의 눈은 오래, 아주 오래 가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그리운 존재들이 발끝에 걸리는 날이 많아진다. 채이고 채여서 자꾸만 내 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날들이. 기억 속 한 장면을 돌아보게 하는 날들이. 그 자리에 머물러 아린 발끝을 가만 바라보게 되는 날들이.     




당신께 건네는 편지     


할아버지. 저예요. 마음으로만 부치던 편지를 이렇게 짤막하게나마 글로 써 봅니다. 어릴 적엔 카네이션이며 얼굴이며 어리숙한 그림을 그려 넣은 편지를 자주 드렸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그곳은 어떠세요? 지금은 어디쯤 가셨나요. 이제 아픈 몸은 떨쳐버리셨으니 홀씨처럼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세요. 저희에게 묶여있지 마시고.      


다만 꿈에는 이따금 나타나 주세요. 제 꿈은 아니더라도 할머니와 아빠 꿈에는 방문해주세요. 그래도 가장 먼저 제 꿈에 나와주셔서 저는 많이 단단해졌어요. 비록 얼굴은 내비치지 않으셨지만, 방 밖 거실에서 아빠와 단둘이 두런두런 나누던 소리가 참 따뜻했어요.    

  

사람들이 그래요. 할아버지는 본인 성격 따라 쿨하게, 멋지게 가셨다고. 유독 할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은 잠든 것처럼 잔잔하다고 모두 고개를 끄덕여요. 장례를 치르는 중에도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만 떠올랐어요. 그만큼 많이 편안하시단 거겠죠. 다행이에요.     


여러 마음이 뒤섞여 말에 두서가 없지만 가장 큰마음은 그리움과 사랑이에요.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처음 할머니 댁에서 저녁을 먹던 날, 할아버지가 늘 앉으시던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어요. 마음이 허물어질 것만 같았지만 금방 괜찮아졌어요. 훗날 또 뵈리란 걸 믿으니까요. 그러니 완전한 작별은 하지 않을 거예요. 또 만나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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