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지는 순간
어릴 적에는 이따금 잠들어 있는 엄마의 곁으로 가 코 아래로 슬그머니 손가락을 들이밀고는 했다. 드르렁, 푸- 자는 순간에도 “나 자고 있다-”를 알리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한밤의 호수처럼 잔잔하게 잤다. 멀리서 보았을 때 엄마의 자는 배가 오르락내리락 움직이지 않으면 난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엄마의 숨결이 검지에 닿으면 그제야 제멋대로 어긋나던 심장 박동을 달랠 수 있었다.
여덟 살 무렵 평범한 오후였다. 엄마의 배 위로 작은 머리를 갖다 대고 누웠다. 포근하고, 말랑거리고, 안온했다. 그 순간 어떤 마음 하나가 몽글하고 뭉쳤다. 그러더니 눈물이 투둑 흘러나왔다. 엄마의 얇은 면 티셔츠 위로 물기가 뱄다. 혹여나 들킬까 괜스레 “엄마 배 물렁거려.” 하며 히죽 웃었던 기억이 난다. 구구단도 채 떼지 못한 어린애였지만 이상하리만큼 죽음의 무게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날엔 언젠가 엄마의 따스한 배에 누울 수조차 없으리라는 생과 사의 이치가 어린 나의 마음을 지긋이 짓눌렀다.
죽는다는 건 그저 주어진 육신의 숨이 사그라지는 것뿐인데 왜 그리도 서글픈 것일까. 상념의 결론은 단순했다. 숨과 함께 맞닿은 인연도 끊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숨결을 어루만지고 싶어도 살아있는 한 다신 만나지 못할 테니까.
사람도 가냘픈 꽃과 같이 피고 지기 마련이다. 다만 꽃은 억지로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다시 피어난다. 하지만 사람은 꽃과 달라서 지고 나면 같은 형체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그저 이 작은 행성에 우주적 시간으로 4초간의 치열한 여행을 잠시 왔다 가는 것뿐이다.
엄마의 엄마가, 그러니까 내게는 외할머니가 여행을 마치신 날. 난 오빠와 집에 단둘이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낮인데도 집안은 어둑했다. 비까지 우수수 내려 기분마저 물기를 머금고 축 가라앉았다. 그때 친가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외할머니 돌아가셨다.” 전화 너머 할머니의 음성은 몹시 무덤덤했다. 반면 나의 심장은 머리끝에서 발 끄트머리까지 거세게 추락하는 듯했다. 어찌어찌 전화를 끊고서 오빠의 방으로 더듬더듬 향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말에서 자꾸만 울먹임이 묻어났다. 오빠도 소식을 듣고서 무너져 내렸다. 가족의 첫 죽음이었다.
엄마는 힘들 적마다 외할머니를 찾았다. 별은 주위가 캄캄할수록 빛을 발하며 모습을 더 드러내는 법이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별이 되어 어둠을 몰아내 주었다. 그렇기에 소식을 듣는 순간 내게는 외할머니의 부재보다도 엄마를 향한 커다란 통증이 앞섰다. 2014년 오월, 엄마의 밤하늘에 가장 먼저 떠 있던 별이 지는 순간. 엄마의 하늘이 한층 더 꺼뭇해졌다.
언젠가 나의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겠지. 떠올리기만 해도 울적해진다. 그럴 때에는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그런 일>에 쓰인 문장으로 위로를 얻는다.
‘저 바다에 아직 잔광이 남아있는 것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사랑할 시간을 조금 남겨두었다는 뜻이다.’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나를 지켜주는 별들이 애틋하게 떠 있다. 지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그러니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