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상자의 주인
호랑. 빨간 코트, 짙은 초록 베레모, 노란색 메리제인 구두. 신호등처럼 입고선 귀엽게 달려오는 호랑. 사람들과 다른 색을 걸쳐도 시선을 떨구지 않았던 호랑. 까만 옷은 눈길조차 안 주던 호랑. 그랬던 호랑이 불 꺼진 쇼윈도에 나란히 걸린 빨간 코트와 까만 코트를 응시하며 지호에게 나직이 말한다.
“이제 옷장 열면 나도 모르게 안 튀는 색 옷만 집게 된다?”
서른이 된 호랑은 더 이상 빨간 코트를 입지 않는다. 밋밋한 까만 코트. 남들과 섞여도 무난하게 스며드는 그 까만 코트가, 호랑은 부러워졌다.
호랑은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발랄하고 애교 많고 현모양처가 유일한 꿈인 호랑. 때때로 고집을 부리고 자존심도 세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그녀다. 호랑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목울대가 뻐근해지는 순간이 수두룩했다. 자주 속 터지게 했지만, 어딘가 안쓰러웠던 호랑. 그토록 그녀에게 마음이 가닿아 거세게 안아주고 싶었던 건 그 속에서 날 마주했기 때문이겠지.
어린 날의 나는 검은색을 싫어했다. 특히나 검정 옷. 그중에서도 까만 바지가 싫었다. 어둑하고 칙칙한 색을 몸에 걸치면 존재 자체가 껌껌해지는 것만 같았다. 무대에서 조명이 닿지도 않는 구석진 자리로 밀쳐진 느낌. 주인공에서 지나가는 행인 3으로 나가떨어지는 기분. 어렸던 탓에 그러한 심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심통 가득 문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내저을 따름.
반면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이었다. 때론 꽃잎처럼 여리고 때론 햇살보다 쨍한 색. 분홍 옷을 입으면 무대 한가운데로 다시 복귀되었다. 땋은 머리, 엄마의 립스틱, 또각 구두, 분홍치마. 눈에 띄길 원했던 아이. 거인이 되고 싶었던 아이. 행인이 아닌 주연이길 바랐던 그 아이는 키가 자라며 엎어지고 다치자 겁이 생겼다. 주인공에겐 늘 시련이 닥쳐오고, 행인 3은 그저 그렇게 지나간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분홍치마를 둘렀던 아이는 작은 상자 안에 갇혀 버렸다.
우습게도 나는 내가 특별하게 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구보다도 화려한 빛깔을 지닌 채 자라나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나도 언제부턴가 스며들기 무난한 색을 골랐다. 까만 코트들 틈에서 주눅 든 호랑처럼 나도 나의 색을 감추기 시작했다. 빨간 코트에서 벗어나 까만 코트로. 날이 갈수록 평범한 삶을 바라고 부러워하게 됐다. 그게 당연한 거라며 누구는 호탕하게 웃었지만 난 울고 싶었다. 영영 작은 상자 안에 가둬둔 그 아이를 보지 못할까 봐서. 또, 못 견디게 미안해서.
나날이 주변 이들의 꿈은 명사형으로 바뀌어 간다. 와중에 난 그런 명사형 꿈조차도 꾸지 못한다는 게 서글퍼졌더랬다. 괜히 샘 나는 마음만 무럭무럭. 그러다 작은 상자를 수면 위로 떠올리면 다시 울렁울렁. 내면에 혼란이 울컥울컥.
호랑의 마음도 이러했을까. 빨간 코트가 아닌 까만 코트에 눈길을 준다는 게 슬퍼졌을까. 빨간 코트를 입은 호랑의 생기 어린 눈과 쇼윈도 속 빨간 코트를 바라보는 벌게진 눈의 간격이 나를 닮아서 아프다.
여전히 좁다란 작은 상자 안에는 분홍치마를 두른 아이와 빨간 코트를 걸친 호랑이 잠겨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빛깔이, 아니 감추어버린 빛깔이. 작은 상자 안에 가득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상자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는 다름 아닌 ‘나’의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날엔가, 우리는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빛깔을 되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