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intza, pais vasco , Spain
뜨거운 햇볕아래 막 바닷가에서 수영을 마치고 나와 축축이 젖은 몸을 비치용의자(tumbona) 위에 눕혔다. 그리고 바로 옆 작은 바에서 갓 따라온 차가운 맥주를 들이켠다.
이것도 모자란다. 한 여름의 중간에서 나는 더욱더 이 여름을 느끼고 싶어 갑자기 여름이 한껏 담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어딘가 모든 여름의 모습을 담아둔 책이 있다면 이 비치체어 아래에서 하루종일 읽을 수 있을 텐데 라며.
하지만 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장면의 한편에는 며칠 전 매우 진지하게 다툰 남자친구가 같이 비치체어에 앉아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생각보다 관계에 있어 중요한 문제 앞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냉전 중이다. 그런 둘이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표면적으론 평온한 커플의 모습을 하고 태양아래 앉아 맥주와 tinto con limon(와인에 레모네이드를 섞은 것)을 들이켜고, 서로 핀초를 한입씩 나눠먹는다. 게다가 후식으로 커피에 아이크림도 먹어야 한다고 야무지게 다음 코스를 정한다.
바다로 오기 전 퇴근길 픽업을 온 남자친구와 나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가득 찬 차 안에 앉아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차 창밖으로 펼쳐진 완벽한 뜨거운 여름의 풍경은 결국 우리의 자존심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작은 항구 옆 바닷가에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에 한가득 실린 여름세트 (수영복, 타월, 비치체어)를 양손 가득 꺼내 들었다. 이미 얼굴엔 시동 걸린 설렘이 가득하다. 적당한 볕아래에 자리를 잡고, 차갑다며 온갖 오두방정을 떨면서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 수영에 서툰 나는 숨이 차오를 때면 남자친구의 어깨의 매달려 숨을 고르면서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무언의 휴전을 선포하게 된듯하다. 휴전협상이었던 셈의 수영을 마치고 돌아와선 물속에서 열심히 팔다리를 버둥댄 탓에 한껏 뜨끈해진 몸속으로 갓 따라온 시원한 생맥주를 들킨다. 그것도 비치체어 위에 거의 몸을 널어놓다 싶은 자세로.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도 둘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거나, 냉전 중일 지언정, 오늘 같은 뜨거운 한여름의 날씨에는 휴전을 선포해야 마땅하다고.
여름을 즐겨야 할 우리의 인생은 잘못이 없으니까 말이다.
특히 이 바다수영 후에 들이키는 맥주의 맛을 놓칠 수가 없다.
어쨌든 이렇게 오늘 하루의 한 여름도 만족스럽게 즐겼다.
그러니 이제 다시 전쟁터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