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비행기와 첫 해외
칭다오는 나의 두 번의 해외 체류지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도시였다. 체류의 목적은 한 학기동안의 어학연수였는데, 목적에 맞게 말이 많이 늘어왔다기보다는 중국에 대한 이해도를 쌓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 살았다고 보기도 어려울 만큼 짧았던 시간이었다. 120일 간의 여행기록이랄까.
내가 칭다오에 가게 된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당시 나는 해외에 정말 무척이나 가고 싶어했지만 여권조차 없었던 햇병아리보다도 못한 알(?) 수준이었고, 해외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오로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한 구석에서 발견한 ‘워킹홀리데이’ 그 하나였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해외에 나간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해외에 나가려면 휴학도 해야 했으며, 1년 내지 2년을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나 혼자 의식주를 해결해야한다는 것. 숫기없고 내성적인 22살짜리 여자애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나는 그저 밥상 위에 매달아놓은 굴비마냥 메모장 한 켠에 ‘워킹홀리데이 가기!’를 써놓고 하염없이 보기만 하는 겁쟁이였다. 대학을 휴학하고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는 여러 대학생들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물론 그 때는 지금처럼 SNS나 블로그 같은 것이 발달하지 않아서 여행에 대한 정보가 적었던 것도 있고, 애초에 내가 여행보다 체류를 생각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러던 중,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교수님이 새로 부임을 하셨고, 그 교수님이 전공수업 외에 따로 희망자를 모아 중국어 수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유로 중국어 수업을 신청했는지 지금에서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심지어 수업을 빠지는 날엔 교수님을 찾아가 개인교습을 받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진도가 수업용 교재의 반 정도에 다다를 무렵, 교수님이 학교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셨고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뭔가에 홀린 것 마냥 중국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나는 중국 칭다오행 티켓을 받아들게 되었다.
중국어도 잘 모르고, 당연히 중국에 대해서도 모르는 내가 칭다오가 어디에 붙어있는 지 알 리 만무했다.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한국에서 가까운 바닷가 도시, 맥주가 유명하고 등등... 그런 정보만을 주워들은 채 아빠한테 졸라 생일선물로 얻은 새로 산 빨간색 캐리어를 끌고 나는 인천공항에 입성하였다.
난생 처음 탑승수속을 밟고, 수화물은 마구잡이로 던진다는 말에 기내용으로 준비한 작은 빨간색 캐리어를 옆에 두고 가족과 인사를 하였다. 출국장만 지나면 바로 비행기를 타는 줄 알고 인사를 천년만년하다가 들어갔는데,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출입국심사를 거치면서(이 당시에는 자동출입국심사가 아니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체되는 것에 당황했고, 내가 타는 비행기는 중국 항공(어디 항공인지 이 때는 보지도 않았다)이어서 셔틀 트레인을 타고 탑승동으로 이동해야한다는 것에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주변에 나 중국간다고 동네방네 떠들었는데? 하는 생각에 토할 것 같았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비행기탄다고 신발 안 벗은 게 다행일 정도였구나.
발을 동동 구르다가 셔틀트레인에서 내리자마자 뛰었고, 다행히 나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비행기를 무사히 경험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 날을 시작으로 120일을 지냈던 칭다오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다. 물론 사진을 수백 장도 넘게 찍었지만, 몇 년 전 사진정리를 하다가 칭다오 사진폴더를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라는 것은 편리하고 간편하고 저장공간만 있으면 몇 만장을 찍어도 간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삭제가 되는 과정도 너무 간편한 것 같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우여곡절 많았지만 무척 짧았던, 난생 처음의 비행을 마치고 칭다오 공항에 도착하였다.
青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