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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Oct 30. 2021

몸과 함께 살아나는 것들

수술과 퇴원의 과정을 겪으며

배에 세 개의 구멍을 뚫어 거대 근종을 꺼낸 4시간 반 가량의 수술 직후, 정확히는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을 당시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진통제와 무통주사가 투여된 시간 동안 그 기억을 조금씩 잊게 되었다. 아마도 이내 그 기억을 완전히 잊고 살아갈 게 분명하다.


다만 인간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고통에 대해 끝없이 부연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잊을 수 없을 듯하다.  


회복실에 있는 동안과 이후 병실로 실려 올라가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죽고 싶다', '분명 이보다 훨씬 더한 고통도 있을 텐데', '이 고통은 출산의 고통과 비슷할까', '아니면 출산보다 더한 고통일까',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고통이 인생에 허다할 텐데,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 온갖 질병과 마주하게 되겠지', '하지만 내가 젊은 나이에 죽으면 자매를 홀로 키워온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그러지 못하겠지'와 같은 생각들로 가득 찼다.


거대 근종을 뜯어낸 후 봉합된 자궁과 세 개의 구멍이 뚫린 하복부의 고통이 마치 몸 전체의 고통은 아니라는 듯, 나의 뇌는 '자궁을 뜯어버리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만 뜯어내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으리란 착각, 목숨을 보존하고자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과도 같은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은 1시간도 채 안되어 가셨고, 비록 좀비 같아 보이긴 했어도 수술 후 몇시간 뒤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초저녁부터 아주 깊은 잠에 들어 조금은 나아진 몸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은 언제 그런 고통을 겪었냐는 듯 하나씩, 생각보다빠르게 정상화되어 갔다.


처음 소변줄을 빼고, 첫 소변을 보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홀로 엄청나게 감사했던 기억. 수술 후 금식시간이 끝나고 처음 물을 마셨을 때의 달콤함. 그리고 퇴원 후 처음으로 큰 볼일을 보며 감사했던 기억.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누워있다 바르게 앉는 게 힘들어, 병원 침대 상부를 수직으로 세워 간신히 앉곤 했는데, 어느새 침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나. 똑바로 누워서 자는 일만 가능하다 어느새 옆으로 누워 자는 것도 가능해지고, 수술 후 6일 만에 하혈이 멎어 너무나도 감사했던 기억.


고통 이후 몸이 정상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마치 어린아이가 누워있다 엎드리고 앉고 기고, 그러다 무언가를 붙잡고 서고 마침내 걷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도 같아서, 나는 어느덧 끔찍했던 고통의 순간을 망각하게 되었고, 고통을 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많은 분들이 나의 고통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주셨다는 데 있음을 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돼."


병실에서 나를 유난히 챙겨주셨던 80대 김학의 할머니의 말이다. 그 말을 입원, 수술, 퇴원 후 병가의 기간을 보내는 내내 끝없이 곱씹었다. 건강해지면, 다시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정말 잘하고 싶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수술 후 10일 째인 오늘, 나는 마지막 병가일을 누리고 있다.


사실, 정말 기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몸의 회복 속도가 빨랐고, 아침마다 정확하게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면서 오히려 입원 전보다 더 상태가 좋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약을 먹기 위해 꼬박꼬박 식사를 잘 챙겨 먹었고, 퇴원 직후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소고기가 들은 미역국이라든지, 장조림 같이 '그냥 평범해 보이는 음식들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하고 정말이지 감탄하며 먹었다. 모든 감각이 새로웠다.


무엇보다도 입원 전 오랫동안 해온 새벽 루틴을 몸이 기억하는 듯, 저절로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날들도 있었다. 오래전 학부시절에 '레질리언스'라는 용어를 배운 적이 있다. 우리말로는 '회복탄력성'이라고 불리는 말. 인간이 가진 이 레질리언스라는 것의 신비를 병가 기간 동안 엄청나게 실감했다. 몸은 자꾸 쓰면 쓸수록, 걸으려 하면 할수록 더 빠르게 회복된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병가기간 동안 더욱 살뜰히 집안일을 했다. 많이 쉬다 보니 아이디어들도 많이 떠올라 '네이버 엑스퍼트' 같은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차츰차츰 나는 정상인의 생활 범주로 다시 돌아왔고, 이 말인즉슨 다시 아프기 전에 내가 욕망하던 것들이 되살아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파서 수술과 입원을 겪는 것과 욕망이 있지만 실현될 수 없어 좌절된 감정을 느껴야 하는 일 중, 어떤 게 더 괴로우냐를 생각하면 당연히 전자인 것 같지만, 좌절된 욕망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꿈을 꿀 때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큰 고통을 겪은 몸이 되살아날 때에 느낀 기쁨과 환희와 감사를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주어졌던 것들이 도무지 당연할 수 없었던 그 짧은 날들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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