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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Feb 08. 2021

엄마를, 잘 부탁해

언젠가 만날 아이에게

어느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서너   손자를 데리고 칠순이  노신사가 들어왔다. 자녀들을 대신 손자를 데리고  일을 보러  것이었다. 마치 어릴  '아기와 '라는 만화에 나오던 미노루를  닮은 귀여운 아이는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을 일일이 가리키고 건드려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반짝였다. 나는 아이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일하다 말고 아이를 데려와 무릎에 앉혔는데, 마치  허벅지가 원래부터 아이를 앉히기 위해 그렇게 기다랗고 넓었는가 싶을 만큼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그날, 아이가 돌아간  나는 아이가 앉았던 무릎에 남아 있는 온기와 아이의 부드럽고 가볍던 몸에 대한 기억 때문에 어쩐지 허전한 마음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날 이후였을까. 마흔이 가까워가지만 아직 싱글인 나는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에 종종 잠기곤 했다. 나도 내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아이가 언제까지고 그렇게 무릎에 앉혀둘 수 있을 만큼 작고 귀여울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는 상상에 사로잡힐 때면 '내 아이는 분명 귀여울 거야'라는 묘한 확신에 차오르곤 한다.


최근 방송인 사유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모르는 타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낳게 된 아들 '젠'을 공개했다. 한국에서는 사유리와 같은 방식으로 임신을 하는 게 허용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가능하기에, 일본 국적을 가진 사유리는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하여 '젠'을 임신하고 낳았다. 기증받은 정자는 일본인이 아닌 다른 나라 남성의 것이었는데, 사유리는 감성이 풍부하고 흡연을 하지 않는 건강한 남성의 정자를 신청했다고 한다.


비록 사유리와 젠을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 비치는 사유리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의 삶은 젠으로 인해 달라졌다. 아주 작디작은 아이의 존재만으로 가족은 육아를 분담하며 웃고 울기를 거듭한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많이 행복해 보인다.


연애, 결혼, 임신(과 육아)을 포기한 세대를 일컬어 삼포세대라고 부르게 된 배경, 즉 연애와 결혼, 임신-출산-육아를 관두게 된 데는 아무래도 젊은 세대의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나도 가끔, 지금의 벌이와 생활수준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결혼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육아'가 가능할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괜히 아이에게 삶의 행복보다 불행만을 잔뜩 경험하게 해 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지 않은 어느 날, 나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자주 생각한다.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무릎이 닳도록 자주 무릎에 앉혀놓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싶다. 언젠가 만나게 될 수 있다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야지.


"앞으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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