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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Jan 09. 2023

아픔의 기록

아프지 않은 날을 기적이라 부르는 날들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행복에 대해 그려보는 이는 있어도, 불행에 대해 그려보았을 법한 이는 없다. 아무도 자신의 미래가 어둡고 쿰쿰하고 암울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미래는 특히 젊은이들이 그리는 미래와는 거리가 있다.


첫 사회생활을 사회복지사로 시작하면서,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무수히 많이 들여다보았던 적이 있는데, 그들이 지닌 불행에 대해서 한 번도 그것이 내 것이 되리라 여겨본 적은 없다. 언제나 나의 미래는 그들과는 달랐고, 달라야만 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내 삶에 불행한 기운이 스며든 건 지난 2021년 10월. 아니 어쩌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2020년 즈음부터 어떤 불행의 씨앗이 날아들어와 조용히 심겼는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모른 채 주기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던 게 아마도 202년 7월부터였으니까. 그러다 비로소 2021년 10월, 갑자기 큰 수술을 치르게 되었는데, 내 나이 대의 여성들이 제법 많이 하는 수술이라고는 해도, 나에겐 퍽이나 두렵고 생소했던 인생의 도전이자 위기였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나는 미라클 모닝이라는 걸 1년 정도 하면서, 상당히 진취적인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수술 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계속해서 앞으로 쭈욱 나아가리라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술 후 내게 펼쳐질 일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병원 교수의 말에 의하면 수술은 매우 잘 되었다. 그런데 그의 임상경험이나 여러 논문으로는 도무지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이상증세가 내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는 하루하루 말라가고 시들어가고, 일상생활이 도무지 힘들 만큼 쇠약해져만 갔다. 그렇게 원인 모를 병과의 사투가 시작되었고, 나는 세 군데의 한의원과 한방병원을 두루 다니며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내고자 애쓰고 또 애썼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던지. 가족도 그 어떤 도움을 줄 수 없는, 외롭고 고독한 싸움 앞에, 나는 골리앗 앞에 선 것처럼 두려웠다. 더군다나 그 싸움의 시작은 분명했지만 끝은 언제인지 알 수 없었기에. 2022년은 내게 그런 해였다. 온통 ‘건강 회복’만을 생각하는 동시에, 이럴 바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시간들.


퇴근길, 갑자기 왜 이런 글을 브런치에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지난 11월부터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건강을 회복했고, 지난 금요일부터 또다시 약 삼일이나 너무 심하게 아파야 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회복했다. 그렇게 아팠던, 아픔으로 모든 꿈과 미래를 담보 잡혀야만 했던 2022년이었음에도 나는 이직을 했고,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오히려 건강을 많이 회복한 채로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는 것.


이 삶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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