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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Apr 11. 2019

호두정과 한 알

달콤함이 주는 위로에 대해


알콜이 참 좋다. 알콜이 들어가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박 과장도 있지만, 나의 경우 기분이 한없이 좋아지고 수다쟁이가 된다. 어릴 땐 달콤한 술이 좋았고, 언젠가부터 식사와 어울리는 소주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취향 따위는 무시당한 채 선배들의 인생을 답습한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소주보다 위스키가 참 좋다. 영화 ‘소공녀’에서 살집이 없어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 못하는 주인공을 보고, 위스키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사실 위스키는 고등학교 때 몰래 먹어봤는데, 독한 향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제 돈을 주고 사 먹은 기억이 없다.


소공녀에 나왔던 위스키 바에 앉아 발베니 12년 산 위스키를 한 잔 시켰다. 희석된 위스키가 아닌 오직 보리와 물로 증류한 싱글몰트 위스키. 한 잔에 소주 10배 가격이지만 공간과 분위기를 샀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위스키 한 잔을 시키니 특별한 안주가 따라 나왔다. 바로 호두정과다. 초콜릿과 달리 이가 시릴 정도로 달지 않고, 견과류의 고소함이 술의 맛과 향을 북돋아주는 최고의 안주, 호두정과. 집에서도 먹고 싶어 레시피를 검색해 직접 만들었다.


STEP1 깐 호두를 뜨거운 물에 5분을 데친다.

STEP2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설탕과 물엿, 꿀을 넣고 졸여준다.

STEP3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준다.

STEP4 한 김 식힌 후 냉동실에 보관한다.


차갑게 얼려진, 바삭한 과자처럼 변한, 호두정과를 한 입 먹어보니 위스키 바에서 먹던 그 맛이다. 그때의 분위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어, 집에 있던 위스키를 잔에 따라 한 모금 머금었다.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먹으니 식도가 뜨거워지고 겨자를 먹은 것처럼 코끝이 찡. 이때 호두정과 한 알을 입에 넣으면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가 된다. 그제야 다시 위스키 한 모금을 먹을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코끝이 찡하거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들이 있다. 보통 눈물을 참을 때 이런 증상들이 나온다. 하지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이런 통증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만약 참기 힘들 땐 호두정과를 만들어 한 알을 먹어보자. 달콤함에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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