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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an 21. 2024

이른 퇴직의 이유

교장의 시선 11

지난해 2월에 명퇴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직장을 나가다가 가만히 집에만 있자니 좀이 쑤시고 무료해지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는 적응 같은 걸 한 모양이다. 조금 늦게 자고, 조금 늦게 일어나고, 아침 먹고 바로 옆방 서재로 출근하는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교직계에서는 이른 나이, 정년과 교장임기를 많이 남겨두고 퇴직을 했으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교장 임기를 겨우 1년 하고 그만두었으니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잘 아는 퇴직 선배님들 몇 분은 일부러 학교까지 찾아와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퇴직을 말렸다. 건강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학교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1년쯤 지났으니 차분히 다시 생각을 해 본다, 이른 퇴직이 후회스러운지. 가끔 학교가 그리운 건 사실이다. 인문학 강연을 다니면서 학교에 가는 일이 잦는데 학교가 참 정겹다.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은 도시의 학교도, 고속도로에서 국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의 작은 학교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학교, 교육청, 교육부 등 여러 기관을 옮겨 다녔고, 행정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초임지 시골벽지 학교에서부터 도심의 큰 학교, 카이로와 방콕의 두 군데 재외한국학교 등 그동안 근무했던 학교라는 공간은 늘 다시 돌아갈 곳,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다.


어느 학교 강연을 갔을 때, 후배 교감의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선배님 같은 분들이 현장을 더 지켜주셨어야죠!', 미안하고 아팠다. 비겁하게 혼자만 편하려고 떠나온 것 같아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꼭 그 후배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쩌지 못한다. 한참 후에 정년퇴직을 할 나이가 되면 그런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아내가 아프다는 건 사실 겉으로 내세운 핑계였다. 울고 싶은데 빰 맞은 격이라고 할까. 아픈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서 퇴직을 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나에게 아내는, 로맨티스트로 보여지고 싶은 수작이라고 놀렸다. 명퇴 신청서에 퇴직 사유를 '아내의 간병'이라고 쓰기는 썼다. 나의 곡진한(?) 간병 덕분인지 아내는 다행히 건강을 되찾고 있다.


흔히 직장에서의 문제로 퇴직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매일 아침 학교로 출근하는데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다. 교사와 직원과의 갈등도 없었고, 학부모의 민원도 전혀 없었다. 아이들도 모두 밝고 좋았다. 다만 재미가 없었다. 아마도 한국의 학교 교장 역할에 대한 부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재외한국학교 교장의 역할과의 차이에 대한 적응이 서툴렀다. 코로나 시기에 학교 이전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던 3년간의 방콕한국국제학교 교장을 막 마치고 온 뒤라 더 그랬을까. 편한 소리 같지만,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이 힘겨웠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내려서 간단히 아침 식사하고, 전자결재 시스템에 접속해서 결재 처리와 공문 일람. 일주일에 한두 번 있는 부장회의. 점심 식사 후부터 퇴근까지는 다시 전자결재와 가끔 찾아오는 직원들과의 대화 정도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린스마트 학교 사업 문제로 매달 한 두 차례 워크숍일 열리고, 운동장 공사도 했고, 급식소 신축도 추진 중이었으니. 


결정적인 건 칼럼 사건이다. 인터넷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교육감 선거가 두어 달 남은 시점에 교감 인사 적체 문제를 지적하는 칼럼을 실었다. 다른 시도교육청과는 다르게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하는데 짧게는 8년, 길게는 10년이 넘게 걸리고 있다는 현장의 불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신문사에 칼럼을 보내고 업로드를 확인한 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교육청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직 교육감의 상대편에서 일을 하냐는 둥 말도 안되는 듣기 불편한 소리를 했다. 박빙의 선거판에서 현직에 불리한 내용이었으니 뼈 때리는 소리로 들렸겠지만, 사실 그럴 때라야 문제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되니 칼럼을 쓴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시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잠시 칼럼을 내리는 게 좋겠다고 했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피울 이유도 없었다.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줄은 나중에 알았다.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 칼럼 때문에 교육감에게 후배 하나 단속 못한다고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인사담당 부서장이고,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운 관계라 본인 스스로도 많이 서운했을 듯하다. 더구나 인사담당 장학사 후배는 자기 입장을 조금도 생각해 주지 못한다고 더 서운했을 테고. 한참 후에 후배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했을 때, 알아주니 감사하다고 하는 걸 보니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라도 교장으로 영전해 가는 축하 자리 한 번 하자는 데, 두 달이나 약속이 차서 시간이 없다는 말에는 나도 할 말을 잃었다. 더구나 과장 선배는 재외기관장 평가위원으로 가서 최하위 등급을 주는 것으로 보복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럼에 쓴 인사 적체 문제는 최근만의 일이 아니고 10년 이상 이어져 온 오래된 것이라 당시 담당자만의 문제나 특정한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적되어 온 현장의 문제를 교육감이 누가 되던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칼럼 후폭풍으로 생긴 어지러운 마음이 이른 퇴직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지만, 현장에서 말도 못 꺼내며 속앓이 하는 후배들이 속 시원했다고 해 줄 때는 잘했구나 싶었다.


하긴 다시 생각해 보면, '누가 되던'이 아니라 '누가 되어야'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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