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시선 10
배 선생~ 하고 부르는 분이 있다. 배'교장님'도 아니고, 배'교장'도 아니고, 배'선생님'도 아닌 그냥 배'선생'이다. 국어사전에 '선생'은 1.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2.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3.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꼭 '님'자를 붙이지 않고 아무개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의미다. 그분이 사전 1의 의미로 불렀어도 맞는 말이고, 2의 의미로 불렀다면 분에 넘치는 일이고, 3의 의미로 불렀으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님'자를 안 붙여 불렀다고 서운해하는 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사전적 의미가 그렇기는 해도 우리 사회에서 '아무개 선생~'하고 부르는 건 어쩐지 좀 하대하는 느낌이다. 윗사람이 조금 높여 부르는 듯해도 아랫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교장이 같이 근무하는 교사를 부를 때도 그럴 수 있지만 친밀도가 높은 사이일 경우에라야 그럴 수 있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님'자를 꼭 붙여서 OOO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건 적건 상관이 없다. 직함을 가진 사람은 OO부장님, 실장님, 수석님 등으로 호칭한다.
사회생활하며 만나는 사람, 알게 된 사람은 대부분 그 직함에 따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부르기에도 무난하고 듣는 상대방도 싫어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지위가 높을 때는 더 그렇다. 회장님, 사장님, 대표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님, 실장님 등등. 상대방의 직함을 제대로 몰라 교장을 교감으로, 장학관을 장학사로, 국장을 과장으로 잘못 호칭하면 핀잔을 듣지는 않아도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잘 모를 때는 한두 단계를 높여 부르는 게 상책이다. 특히, 국회의원, 도의원 등 의원 나리님들을 호칭할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호칭하는 걸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기는 하지만.
직함에 따른 호칭은 퇴직 후에 더 빛을 발한다. 교직의 경우, 교장으로 퇴직한 분은 은퇴 후에도 OO교장님~이라고 부르고, 교육장으로 퇴직하거나 교장으로 퇴직하더라도 교육장을 한 번 거친 분에게는 꼭 교육장님~으로 호칭한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분을 본 적이 없지만 다들 그렇게 호칭하고 또 상대방도 흐뭇해하는 것 같다. 퇴직한 분들 여럿이 모인 자리, 퇴직 전 경력이 섞여 있는 경우, 살짝 난감할 때가 있다.
묘비명이나 제사 지낼 때 지방에 직함이 들어가기도 한다. 교장을 지낸 사람은 현고교장부군신위(顯考校長府君神位)로 쓸 수 있다. 관직이 없었던 사람은 통상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로 쓴다. '학생'이라고 쓰는 건 아마도 살아 있을 때도 죽었을 때나 늘 배우는 자세로 이승과 저승에서 살라는 선조들의 큰 뜻이 담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후손들은 '학생'에서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해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애를 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은 남긴다는데, 알고 보면 사람은 죽어 빈 껍데기 직함만 남긴다.
* 이 글은 2023-07-06 경남신문 [교단에서]라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