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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an 12. 2024

꿈의 도시 꾸리찌바

성과만능주의  VS 공공만능주의

김주영 작가의 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에는 관공서 앞에 사루비아꽃이 줄을 맞춰 피어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들판에 자유롭게 피어나 흐드러진 모습이 아름다운 꽃마저 관청 앞에서는 경직된 채 도열한다는 서술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예전 관공서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요즘 여러 매체에서 공공만능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간혹 수식어로 단어 앞에 ‘공공의 적’이 붙기도 합니다. 어떤 사업을 관이 주도한다면 왠지 고루하고 권위적이며 일도 제대로 추진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반면 민간기업이 추진하면 전문성을 갖춘 우수한 인력이 서로 경쟁하다보니 일 처리가 빠르고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실례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추진하는 단지 주민들은 LH나 도시개발공사보다 대기업이 사업 추진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공무원 조직이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은 아마 세계 공통인 것 같습니다. 재미없기로 소문난 독일인도 ‘공무원이 일하러 간다’라는 말에는 웃는다고 합니다. 유재석이 출연하는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공무원 장점은 ‘내가 안 잘린다.’라는 것이고 단점은 ‘저 사람도 안 잘린다.’라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철밥통을 떠올리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은 민간영역 곳곳에 개입해서 여러 규제를 만들며 조직을 불리기만 한다고 하니 공공에 대한 불신이 커질 만도 합니다. 그래서 공공만능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관공서에서 하는 업무도 민간기업에 아웃소싱하면 더 능률적이라는 주장도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공공영역을 시장(市場)에 맡기는 것이 능률적이고 효과적이기만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는  ‘꿈의 도시 꾸리찌바’라는 책을 읽고 답을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미의 외딴 변방 도시 꾸리찌바는 공공영역을 중시하고 새로운 정치를 끊임없이 실험하며 사람과 장소를 바꾼 도시입니다. 버스전용차선제나 지역화폐, 환승버스 요금 감면, 소규모 마을도서관 건립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업들 모두 꾸리찌바에서 벤치마킹한 사업들입니다. 


박용남 저자
1954년 대전에서 태어나 숭실대 대학원(지역경제)과 이스라엘 정주연구센터(지역 및 환경계획)를 마쳤고, ‘한밭레츠’와 ‘역사경관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상임대표를 지내며 우리나라에 지역화폐, 공동체 은행, 내셔널 트러스트와 같은 다양한 대안운동을 도입·정착시키는 데 이바지해왔다. 전국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에 정책 자문을 해주고, 외국의 유명한 생태·환경도시, 저탄소도시, 생태교통도시, 창조도시 등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기후변화와 석유정점(피크오일)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안과 전략들을 연구하고 있다.


꾸리찌바가 시민들이 살기에 쾌적한 도시로 변모되는 과정에는 시 공무원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꾸리찌바 공무원들은 무엇이 공동체와 사람을 위한 것인가를 고민하였고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씩 극복하다보니 도시는 차츰 살기 좋은 공간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에 시청 공무원들은 재미와 보람을 갖게 되었고, 여러 공공영역에서 나름 상상력을 발휘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발굴하며 꾸리찌바를 희망의 도시로 탈바꿈하는데 적극 참여했습니다.

꾸리찌바는 공공기관이 교육과, 교통, 에너지, 보건, 녹지, 복지 등 지역 현안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그런 문제를 민간보다 더 빠르고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사람들 통념 속에 있는 ‘공공영역은 부담만 되는 성가신 존재고 민간영역은 혁신과 능률, 합리, 효율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입니다.      

공공영역은 시민들에게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공평하게 제공해야 하므로 능률과 효율만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민간영역에서 말하는 능률과 효율은 갑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을을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쥐어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같습니다. 실력주의나 능력주의도 얼핏 공정한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특권이 세습되어 기회가 제한된 불공정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공공부분은 민간부분에서 발생하는 과열된 경쟁을 완화하고 기회를 공정하게 분해하여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가끔 우리 도시가 어떻게 변모하게 될 것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게나마 그 변화의 물결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각하게 되면 무척 고무됩니다. 물론 사기업체 직원을 포함하여 일반시민 모두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공영역이 지역과 시민을 위해 뭔가 더 이바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환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적인 가치가 무엇인가를 주제로 사기업 다니는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다들 진지충이라며 백안시하고 앞으로 술자리에 부르지도 않을 것이 뻔합니다. 


저도 처음에 일반 기업체 다니다가 시청에 왔을 때는 조회 시간에 태극기 보고 경례하려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습니다. 손도 주저주저하며 간신이 가슴 쪽에 대곤 하였습니다. 다행히 공공기관에 일하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긍지나 명예, 공정, 정의,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도 민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침 뉴스에 공무원이 활개 치는 세상이라는 보도와 함께 성과만능주의와 공공만능주의라는 새로운 단어를 접하다 보니 문득 ‘꿈의 도시 꾸리찌바’라는 책이 생각나서 몇 자 적었습니다. 공공영역도 민간영역 못지않게 재미있고 효율적이며, 두 영역이 서로 협치하면 사회를 더욱더 발전시키리라 생각됩니다. 

갈대가 있으면 그물이 걸리적거려 물고기가 잘 안 잡힙니다. 그래도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갈대를 없애버리면 처음은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터전이 파괴되어 다시는 고기잡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문득 공공영역도 갈대가 자라난 공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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