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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Oct 03. 2023

책 표지 디자인 선정에 대하여 (1)

城 남쪽에 사는 나무_북 커버 디자인 관련

城 남쪽에 사는 나무


'城 남쪽에 사는 나무'는 남한산성 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 중 그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나무 57그루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글집으로 엮어져 출판된다. 

지난한 출판 과정 중 교정과 편집을 마치고 출판의 마지막 단계, 책 표지 디자인에서 많은 검토과정이 있었다. 내지와 속지, 편집 디자인은 출판사에서 나름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고 진행했지만, 책 표지 디자인만큼은 저자의 의견을 반영하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몇 가지 시안을 만들어 보내왔다. 고통분담의 차원이라고 할까, 디자이너가 감당하여할 무게를 작가에게도 지운 듯 하다. 어떤 표지가 나을까 고심이 깊었다. 

흔히 책표지는 책의 얼굴이라고 한다.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보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처럼 책 표지 디자인은 한 번에 책이 무슨 내용인지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저자일수록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디자인적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사람들 눈길을 한 번에 잡는 시각적인 끌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책  '城 남쪽에 사는 나무'의 내용을 그림 하나에 상징적으로 담고 있어야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디자인은 다섯 가지다. 


먼저 1안으로 도안한 디자인이다. 

표지 사진은 옛골에서 오른 청계산 망경대에서 남쪽 광교산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지리산 깊은 산골 여느 심심산곡의 사진 같다. 성남은 서울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경부고속도로와 외곽순환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고 분당, 판교, 위례 등 신도시가 여럿 조성된 수도권 중심도시다. 그런 도시 이미지와 반대되는 사진이라 도시가 갖고 있는 기존 선입견과 다른 반전이 있는 이미지라 마음이 갔다. 

그런데, 사진 한 장으로 책 표지를 모두 도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텍스트나 다른 디자인적 요소가 배제되어 간결하게 보이면서도 이미지에 너무 쏠린 느낌이다. 

그리고 城 남쪽이라는 공간은 숲 속이 아니라 도심공간이다. 사람과 외떨어져 산에서 자라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 주제와 다소 어긋나는 느낌이라 아깝지만 1안은 후순위로 미뤄뒀다.



다음 2안으로 보내준 책 표지다. 

가장 평범하고 심플하다. 그러면서 사진이 절제되어 여백과 균형이 잡혔다. 책 제목이 표지의 1/3 이상 차지하고 있어 타이포그래피 효과만 제대로 살린다면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여백이 조화로울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무난하다 보니 이런 북커버 디자인의 책들이 이미 많이 출간됐다.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구조는 아니다. 게다가 사진은 제1안과 같이 청계산 망경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다만, 제1안과 다르게 남쪽 광교산이 아닌 동쪽 남한산성을 바라보고 찍었다. 저 멀리 시가지 전경이 보인다지만, 바위와 산능선으로 말미암아 어디 설악산 험준한 암릉에서 찍은 사진 같다.  



다음 3안으로 보내준 시안이다. 

책표지의 여백을 더욱 강조했다. 제목 城과 어울리는 사진으로 남한산성 동문 성곽사진을 실었다. 문자와 사진이 의미도 배치도 모두 조화롭다. 그림도 원형으로 배치하여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했다. 주위 흰 여백이 화선지를 연상케 하여 한자와 성곽 사진이 예스러운 느낌이다.

그런데 책 제목 '城 남쪽의 나무'는 남한산성 아래에 서식하는 나무라는 뜻과 함께 동시에 내가 사는 도시 성남에 사는 나무라는 뜻이 있다. 성남에 사는 나무라고 하면 너무 공간을 한 지역에 묶어두는 것 같아 의미의 확장성을 위하여 '城 남쪽'이라고 했다. 물론 성남이라는 지명 유래가 '城 남쪽 동네'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城'과 '남'이라는 글자가 행으로 구분되면 책 제목의 이중적인 함축성을 훼손할 수 있다. 텍스트는 일렬로 띄어쓰기까지 배치돼야 전달하는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다. 



다음 제4안이다. 

전체적으로 3안과 이미지가 비슷하지만, 글자 배치와 사선 처리가 다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주는 의미가 다르다. 우선 '城'이란 글자와 '남'이란 글자가 한 줄에 있어서 제목이 갖는 함축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를 살려냈다. 또한 배경에서 중앙보다 우측으로 배치하면서 공간이 주는 넉넉한 여백의 미를 제대로 살렸다. 

중앙 사진은 한 겨울 이팝나무로 남한산성 남문 성곽 아래 있는 나무다. 책에 수록된 나무 57그루 중 정말 城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나무다. 이팝나무는 성의 남쪽과 바깥이 주는 상반된 이미지, 즉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담고 있다. 겨울 눈이 쌓인 나뭇가지 사진과 하얀 여백이 두드러져 예스러움이 진하다.

그런데 책을 읽어줄 독자로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삼았다. 숲길에서 자연과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사람의 문화와 이야기가 젊은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길 원했다. 숲길을 걷는 사람 중 고어텍스 소재의 등산복을 입고 스틱에 의존해 걷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벼운 아노락을 걸치고 슬링백을 매는 젊은 사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중 문제는 최대한 다정다감하게 했던 터라 예스러운 분위기는 지양하고 싶다. 게다가 사선 대각선이 주는 일러스트는 난해했다. 우측 텍스트와 대칭하는 사선이 균형감 있지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궁금해서 디자이너에게 직접 묻고 싶지만, 묻지 않은 게 더 나을 듯싶어 그만두었다.   



마지막, 제5안이다. 

사진은 4컷이 실렸다. 계절별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담았다. 각각 쪽동백나무와 박쥐나무, 복자기, 벽오동이 실린 본문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책 표지가 성 남쪽에 사는 나무라는 내용을 잘 요약했고, 책의 브랜딩을 잘 구현해 냈다. 하지만, 사진이 전면을 차지했던 제1안보다 오히려 더 과하다고 느꼈다. 

사진 4장 가장자리에 어느 정도 여백을 주고 있지만, 병렬로 배치한 사진이 너무 많은 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표지 한 면에 책 내용의 많은 것을 전달하려다 보니 화보집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고심 끝에 제2안으로 고르고 출판사와 이야기했다. 역시 출판사에서도 제2안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포맷은 제2안을 두더라도 사진과 서체는 다르게 디자인한다고 했다. 출간을 앞두고 아직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출판사에서 저자의 의견을 받아 북커버 디자인을 선정하는 것이 일면 타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사람들에게 그들이 흡족해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나눠갖는 것이 나중에 리스크 해소에도 유리하다. (제2편에서 계속)



[책 디자인은 책 고유의 아이덴티를 보여주는 것으로 책 내용과 저자의 의도에 얼마나 매칭하느냐에 따라 선호도가 다릅니다. 만약 다른 저자가 다른 내용, 다른 의도에 따라 책을 썼다면 위의 다른 디자인도 적정할 수 있습니다. 행여 위 다른 디자인으로 출판되었거나 출판될 책이라고 하여도 책 표지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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