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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_물을 푸르게

쉬청나무, Korean Ash , 水精木

by 이기행

물푸레나무

검은 숯내에 푸른 물을 더하면

분류

물푸레나무목 > 물푸레나무과 > 물푸레나무속

학명 / 꽃말

Fraxinus rhynchophylla Hance / 겸손

다른 이름

쉬청나무, 水精木, Korean Ash, Retuse Ash


탄천에 와서 걷기를 좋아한다. 식사하고 남는 시간 짧은 시간이라도. 삼십 분 남짓 빠르게 걸으면 상적천과 합류되는 지점까지 갔다 올 수 있다. 상적천은 청계산에서 흘러온다.

탄천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정맥이 할미산성에서 검단지맥으로 분기되어 법화산과 불곡산, 영장산, 남한산성, 검단산과 한강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시작된다. 탄천의 발원지 수청(水靑)동 옛 이름은 물푸레울로 깨끗한 물이 흘러 물푸레나무가 집단으로 서식하였기 때문에 물푸레울이라 불렸다. 수청동은 인접한 법화산에서 큰물을 이룬 동네란 뜻의 덕수(德水)동과 합쳐져 청덕동으로 불린다.


[크기변환]20221121_124501.jpg 상적천과 합류되는 탄천. 어느 가을날.


옛날에 숯내라고 불렀던 탄천은 용인시 수청동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천과 합류되어 서울 한강으로 흐른다. 특히 청계산 청정한 계곡에서 흘러온 맑은 물과 합쳐진 후 더 큰 물결이 된다.

한 번은 마음먹고 탄천에서 상적천 따라 올라 발원지까지 가기로 한 적 있다. 서울공항 담벼락을 타고 흘러가는 상적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동을 지나 대왕저수지를 만나고 옛골 방면으로 꺾이는 물길을 따라가면 청계산 어둔골에 접어든다.


청계산 계곡 맑은 물


숲에 나무가 우거져 항상 어둡다는 어둔골 계곡은 여느 산 못지않게 기암괴석과 시원한 폭포를 볼 수 있다. 물 또한 투명하다 못해 연녹색을 띤다. 물속에 두 손을 담그면 시원한 감각으로 물에 손을 담근 줄 알겠다. 특히 널찍한 바위 신선대는 주변 절경이 뛰어나 신선대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곳에서 발을 담그던 옛 선비들이 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 발을 씻었듯 유유자적할 수 있다. 물소리에 박자를 맞춰 노래 한 곡조나 뽑을 수 있겠다 싶다.


상적천 발원지 물푸레나무 군락지


그렇게 물소리 따라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망경대 오르는 길 중턱에 물길은 끊기고 대신 샘이 용 솟는 곳에 다다른다. 바로 상적천 발원지이자 탄천과 합류되어 한강에 이르는 물의 시작이다. 이 수원지는 탄천의 발원지가 물푸레마을로 불렸던 것처럼 여기도 물푸레나무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물푸레나무는 물 맑은 계곡이라면 어디든 쉽게 볼 수 있다. 물을 좋아하고 습한 토양에서 뿌리는 새로운 줄기를 곧장 잘 만들어 계곡가에 금세 큰 나무가 여럿 자란다. 물푸레나무는 나무껍질에 흰점이 얼룩져 있는 것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처음에는 가로 큰 무늬가 누가 흰색 물감으로 나무줄기에 발라놓은 줄 알았다. 한두 점 흰색 반점이 잿빛 바탕의 나무와 대비가 되어 독특한 얼룩무늬로 보인다.


[크기변환]20200213_111501.jpg 물푸레나무 흰색 반점이 잿빛 바탕의 나무와 대비가 되어 독특한 얼룩무늬가 보인다.


나뭇잎 또한 아까시나무처럼 새의 깃 모양으로 작은 잎이 5장에서 7장까지 양쪽에 붙어난다. 모두 마주 보기로 잎이 달리는데 여러 잎 중 가지 끝 잎이 가장 크다. 그리고 새로 자란 가지에서 꽃대가 나온다. 비슷한 잎을 가진 나무로 들메나무가 있는데, 들메나무는 잎자루에 붙은 잎 크기 모두 같다. 그리고 작년 묵은 가지 끝에서 꽃대가 나온다.


[크기변환]20200213_111338.jpg 물푸레나무 열매는 길이 2 ~ 4cm 되는 시과로서 날개는 피침형 또는 긴 피침형이다.


물푸레나무과에는 키가 큰 들메나무 말고도 쇠물푸레나무가 있다. 청계산에는 쇠물푸레나무를 물푸레나무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쇠물푸레나무는 잎이 작고 좁으며 대부분 작은 나무로 자라는 까닭에 작을 소(小)를 붙여 쇠물푸레나무라 부른다. 곤충 날개와 같이 뾰족하고 기다란 모양의 씨앗도 물푸레나무 씨앗 절반 크기다. 가을에는 나무 밑으로 씨앗이 수북하다.


[크기변환]20200213_132951.jpg 물푸레나무 껍질에 띄엄띄엄 흰 반점이 있다.


물푸레나무 가지를 잘라 물속에 휘저으면 푸른 물감이 풀어지듯 물이 푸른색으로 변한다. 꼭 이른 봄에 가지를 잘라 껍질을 벗겨내야 푸른 물이 나온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으로 한자로도 수청목(水靑木)이라 한다. 옛날 파랗게 변한 물에 붓을 적셔 화선지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옷감을 물들기도 했다.


[크기변환]20200502_124309.jpg 이른 봄 물푸레나무 햇가지에서 나온 새잎


그동안 보았던 나무들 이름이 때죽나무, 쥐똥나무, 버즘나무, 말오줌나무 등 아무런 미학적인 관점 없이 마을 어귀에 굴러다니는 개똥 부르듯 나무 이름을 하찮게 지은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라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을 듣고 참 반갑고 예쁘게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면 고운 우리말로 지은 예쁜 나무 이름도 많다. 수수꽃다리 이름도 푸근하고, 히어리는 이국적이고, 그중 남쪽 지방에서 자란다는 다정스러울 만큼의 나무란 뜻의 다정큼나무는 꼭 보고 싶다. 굳이 나무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해도 이르는 말이 수십 가지 되며 오래오래 내리는 궂은비나 싸라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싸락비, 실처럼 가늘게 내리는 실비, 빗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발비 등 자연을 묘사하는 우리말은 참 섬세하고 예술적이다.


[크기변환]20200503_074423.jpg


물푸레나무는 단단하다. 옛날에 사람들을 매로 벌을 줄 때 물푸레나무로 곤장을 만들어 엉덩이를 때리곤 했다. 목질이 단단한 데다가 탄성도 좋아 곤장을 때리면 볼기짝에 나무가 착착 감겨 엉덩이 가죽이 터지고 극심하게 아팠다. 한때 인정 많은 임금이 물푸레나무 대신 덜 아픈 버드나무나 가죽나무로 바꾸라고 했지만, 매로써 기강을 세운다는 대신들의 만류로 다시 물푸레나무로 애꿎은 백성의 곤장을 쳤다.

지금도 물푸레나무는 가구 재료로 사용되며 오래 쓸수록 더 멋스럽게 느껴져 고급수종으로 취급받는다. 흔히 가구점에서 애쉬(Ash)로 만든 고급 식탁은 세월이 지나도 깨지거나 갈라지지 않는다고 소개한다. 덕분에 우리 집 식탁도 물푸레나무 수종으로 만든 가구다.


[크기변환]20200510_104504.jpg 나무껍질은 세로로 갈라지고, 흰색의 가로무늬가 있고 일년생가지는 회갈색이다.


[크기변환]20200510_104909.jpg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산속의 크고 작은 계곡 주위에 있다.


북유럽의 신화에서 물푸레나무는 하늘과 땅 지구를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로 생각한다. 토르의 아버지 오딘이 심었다는 물푸레나무는 위그드라실로 부르며 우주를 뚫고 솟아있다. 오딘이 물푸레나무에서 지혜를 얻어가며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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