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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Oct 03. 2023

책 표지 디자인 선정에 대하여(2)

城 남쪽에 사는 나무_북 커버 디자인 관련

成 남쪽에 사는 나무


일본의 기쿠치 노부요시는 책 표지 디자인 전문가다.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책만 해도 30년 동안 1만 5천 권이 넘는다. 그것도 고집스럽게 예스러운 방식으로 종이 위에 직접 연필로 도안을 그려가며 디자인했다. 일본에서 대표적인 장서 전문 장인으로 알려진 그는 죽는 날까지 모눈종이에 글을 쓰고 가위로 오려 붙이며 책 디자인에 몰두했다고 한다. 


책 한 권의 표지 디자인에도 한 사람의 직업적 자부심과 삶의 무게감을 담을 수 있다. 모든 작가는 출판사 북디자이너가 카쿠치 노부요시처럼 자기 책 표지 작업에 헌신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책이 서점에 비치되었을 때 단박에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를 원한다. 

물론 자신의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잘 안다. 문장 하나를 두고도 고치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포기하듯 출간하게 되는 저자가 어떻게 책 디자이너에게 완벽을 요구할 수 있는가? 모든 창작자는 서로 동병상련의 심정을 갖는다. 그래서 책 표지를 두고 글자 크기와 색이 어떻다는 둥, 그림의 배치가 그렇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못한다. 그저 타인의 영역에서 그들 나름 최선의 결과물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본인의 책을 설령 노부요시가 직접 디자인해 줬다고 해도 불만일 것이다. 장인이 몇 날 며칠을 고심하여 북커버 시안을 보내줬는데, 막상 받아보니 철심으로 긁은 듯한 문체에 그림들은 삐뚜루 오려 붙인 책 표지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속마음에는 이 노인네가 그 흔한 일러스테이션도 안 배우고 고루한 방식으로 디자인했는가 야속해할 것이다.

그만큼 책 표지 디자인은 어렵다. 그래서 디자이너와 작자와의 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



1차 북커버에 대한 개략적인 제목과 사진 배치 등의 선정작업이 끝나고 2차로 어떤 사진을 싣냐가 문제로 남았다. 


다시 2차 1안으로 도안한 그림이다. 

그림은 청계산 정상 망경대다. 비록 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지만, 성남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제목과 뭔가 일관된 흐름이 없다. 더욱이 내용과도 다소 동떨어졌다. 

물론 청계산은 산림이 깊고 다양한 식생이 서식한다. 책에도 청계산의 철쭉과 박쥐나무, 구상나무 이야기가 실렸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수목의 다양성과 특이한 점을 소재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사람에게 다가와 드디어 의미를 갖는 그런 나무에 관하여 글을 썼기에 책 표지의 사진은 너무 자연 속에서 함몰되지 않아야 했다. 



2안으로 받은 책표지다. 

사진은 남한산성 남문과 주변 식생을 드론으로 날려 공중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때가 막 철쭉이 피기 시작한 4월 하순경이다. 남한산성에는 군부대가 있기에 사전에 군부대 협조를 받고 드론 촬영을 했다. 숲 속 나무들에 파묻힌 남한산성 남문 아래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이팝나무와 산벚나무, 쉬나무, 쪽동백나무 등이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은 城 남쪽에 자리 잡은 나무 중 사람들 삶과 얽혀 있는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다. 책 내용을 단번에 캐치하여 표지에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다만, 너무 도식적인 점이 있다. 제목이 城 남쪽이라니까 성곽 남문에다가 주변 나무를 보여주고 있다 보니 뭔가 딱 맞췄다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책 제목과 책 커버가 일치하여 그 외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다 보니 이것이 흠 아닌 흠이 돼버렸다.   



다음 3안의 북커버 디자인이다.

사진은 인릉산의 범바위에서 관악산과 구룡산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이곳에 흰말채나무를 만났다. 이 시안을 받아보고 디자이너가 책 표지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책을 여러 번 봐야 하는가 보다고 느꼈다. 그만큼 본문 중 이야기가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부분의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의 바위는 범바위고 바위 위에는 아직 붉게 변하지 않는 흰말채나무 두 그루가 어린 오누이처럼 사이좋게 자랐다. 이 모습을 보고 호랑이에게 쫓기며 높은 곳에서 하늘에다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우는 어린 오누이들이 생각났다. 그런 옛이야기의 무대로 이 범바위가 안성맞춤이다. 다만 서울 구룡산과 대모산이 보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서울이라는 중심을 벗어나 한 지역이 독자적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사진은 무심코 서울 위성도시이면서 동시에 서울 바라기 신세인 것처럼 보인다. 



다음 제4안이다. 

그림은 청계산 망경대 옆 석기봉 전경이다. 흙산이라 불리는 청계산에서 거친 바위를 밟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암릉이다. 정상에 오르면 정말 서해를 볼 수 있고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절경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우리나라는 도시 한복판에 청계산처럼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이 자리 잡고 있어,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맘껏 받을 수 있다. 세계 여행 중 이처럼 복 받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城 남쪽에 사는 나무는 나무와 사람이 같이 있어야 한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험준한 곳에 외따로이 서 있는 나무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제5안을 두고 혼란스러웠다. 

책 표지의 사진은 책의 첫 문장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던 산골이 아닌~'을 가장 잘 살렸기 때문이다. 단대동에서 태어난 내가 단대라는 이름 당초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에서 어떻게 변용하여  받아들였는지 상징적으로 잘 함축했다. 동시에 城 남쪽의 변두리 도시가 붉은 먼지 이는 황무지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는지도 잘 의미하고 있다. 

복자기는 가을 단풍 중 가장 붉고 붉다. 여러 해를 무심코 보내다가 어느 가을날, 복자기 잎사귀가 선명하게 붉은 순간에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만큼 애착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붉은 색상의 커버가 거슬린다. 왜 그런지 뚜렷이 알 수는 없으나, 단풍놀이 가려고 붉은 점퍼를 꺼내다가 다시 슬그머니 붉은 옷을 옷장 안에 넣는 이유일 것이다.   



책 표지는 무엇으로 선정했을까? 고심 끝에 제2안으로 선정했다.

다른 사진 모두 의미하는 바가 있고 이 장면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사진은 다시 계절을 기다리거나 수고스럽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비슷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제2안의 사진은 앞으로 다시 찍을 수 없다. 

남한산성 남문 앞 성문을 가리고 있는 느티나무는 병자호란이 반발하기 전에 심은 노거수다. 오랫동안 성남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받았지만, 지지난 해 쇠잔해진 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져 행랑객을 덮칠까 염려되어 시에서 잘라냈다. 이제 가보면 바짝 자른 느티나무 밑동만 볼 수 있다. 주변에 맥문동을 심어놔서 맥문동 보랏빛 꽃이 필 때면 붉은 선혈이 흩뿌려진 것 같아 더욱 심란하다. 

어쩌면 그냥 컴퓨터 파일에 저장되고 말았을 여러 편의 원고가 출판되어 시중에 나온 이유가 바로 이 느티나무 때문이기도 했다. 

  산성을 치러 온 여진족이 홍이포를 쏘아 대도 의연했던 느티나무는 속앓이 하다 주고 말았습니다...(중략)... 산속에 자랐던 좀작살나무 수백 그루가 모조리 밟히고, 한겨울 자줏빛 열매를 기억하던 박새가 배고픔에 발을 동동 일 때, 더 늦기 전 이 땅에 사는 나무  이야기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는 바위와 같이 긴 시간을 보내며  제자리를 지키고 사람은 찰나의 시간에 웃다가 울고 사랑하다가 슬퍼하며 이  땅에 오고 가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나무에도 허락된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제 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한산성 남문 앞 노거수 보호 전(上)과 제거 후(下)


2차 2안의 사진을 선정하였더니 뒷면 포함 최종 디자인된 북커버를 받았다. 뒷면 사진은 귀룽나무를 담았다. 검단산 정상에서 망덕산 가는 숲길에서 어느 봄날 촬영한 사진이다.

디자이너에게는 다른 꽃보다 귀룽나무 꽃이 맘에 들었나 보다. 하기야, 귀룽나무 꽃이 피면 나무 위로 하얀 구름이 걸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귀룽나무는 구름나무에서 변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구름나무로 부르고 있다. 


'城 남쪽에 사는 나무'의 부제는 '우리 처음 만났을 때'다. 

이 책은 숲에서나 길에서 처음 만났던 나무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무를 임업론과 육종학 전공 서적에서 먼저 알았다면, 이처럼 나무와 처음 만난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이 때로는 일부러 찾아 나 서 처음 만나게 되었던 그 기쁘고 설렜던 순간들이 너무나 또렷하게 잔상으로  남았기에 글로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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