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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Oct 07. 2023

성 南쪽에 사는 나무

부제(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글을 시작하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 아닙니다. 한때나마 무성했을 나무는 모두 베어져, 자연이 주는 이로움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논골입니다. 으레 고향이라면 마을 어귀에 아름드리 팽나무가 동네 사랑방이 되어 주고, 가까운 숲에는 아기 진달래를 시작으로 생강나무와 귀룽나무가 울긋불긋 꽃 대궐을 차려 줍니다. 하다못해 복숭아나무나 살구나무라도 마을 안에 들여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에서 기억하는 나무라곤 가시 가득 박힌 아까시나무나 송진이 베어 끈적끈적한 리기다소나무, 그리고 고사한 밑가지가 질척대는 스트로브잣나무 정도 떠오릅니다. 모두 황폐지 사방용으로 심는 조림수입니다.                                                                      

성남시가 생기기 전 초기 도시 전경

 

여기도 다른 도시처럼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은행나무와 철쭉입니다. 거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꼽힌 나무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마을을 상징하는 새도 척박한 땅에서 굳세게 살아가는 까치네요. 이 땅에서는 나무든 짐승이든 하나같이 강인하고 다부져야 살아갈 수 있나 봅니다.                                                                 

은행나무 노거수(은행동 소재)


그런데, 몇 달 전 영장산에 오가며 들렀던 봉국사 대광명전이 국가 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동시에 청계산 봉오재 오를 때 보았던 천림산 봉수대도 국가 사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등산로 주변에 퇴락해 보이던 절간과 길섶 돌무더기가 나라의 보물이었다니,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마을에는 번번한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는 무지함도 한 꺼풀씩 벗겨졌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곳은 대자연속에서 온갖 나무가 번성하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역사를 써 내려갔었습니다. 단지 제가 그것을 헤아려보지 못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척에 있어도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무척 계면쩍었습니다. 

                                                                    

봉국사 대광명전과 천림산 봉수대


어른이 되어 학창 시절 등굣길 언덕배기에 서 있던 나무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굵직한 잡목으로 알았던 나무는 풍채가 멋진 느릅나무였습니다. 느릅나무는 수십 년 만에 다시 나타난 소년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나무는 네가 듣고자 할 때까지 기다렸다며 이제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 합니다. 

네가 이 땅에 오기 전,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고 한껏 세상을 누리다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던 이야기를 말입니다.                                              


상대원공단(하이테크밸리) 개발 초기 


성 남쪽 해가 가득 찬 양짓말에서 해를 닮은 쪽동백나무가 조롱조롱 달린 열매를 흔들며 말을 건넵니다. 

영장산 숲 속을 들어서면 요염하게 자란 앵두나무가 여기가 금은보화가 숨겨진 보물섬이라며 속삭이고, 새로 생긴 동네를 지날 때는 까만 열매 가득한 쉬나무가 원래 여기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책 읽는 마을이었다고 말해줍니다. 

                                                       

남한산성 남쪽 마을이라는 뜻의 성남시

               

서슬 푸른 벽오동과 험상궂은 쥐엄나무, 하늘을 덮는 상수리나무도 저마다 자랐던 마을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태봉의 억센 서어나무 무리는 지리산 여느 심심산곡 못지않게 울창하여 극상림의 본모습을 알려 줍니다.                                                                           

또한, 기독교 성지 둔토리 동굴에는 십자가 나무로 불리는 산딸나무가 자생하고, 부처님 골짜기 불곡산 언저리에는 스님 염주로 쓰이는 모감주나무 열매가 알알이 맺습니다.

                                                                       

기독교 성지 둔토리 동굴과 박쥐동굴을 품은 청계산 산자락


기개 높던 유학자가 폭군이 휘두르는 칼날을 피해 피눈물 흘리며 넘던 혈읍재에는 피나무가 핏자국 따라 자라났고, 도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망경대에는 뽕나무가 신선이 되어 상전벽해로 변해 버린 도시를 굽어봅니다. 둘러보면 볼수록 우리 곁에 나무가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조선시대 연산군 학정을 피해 정여창 선생이 피눈물 흘리며 넘었던 혈읍재


그리고 나무는 마을에서 자랐다면, 따로 살던 사람을 함께 사는 이웃으로 맺어 주었고, 산에서 자란 나무도 사람을 자연과 더불어 살도록 인도했습니다. 이 땅은 황무지 먼지바람만 날리던 곳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뒤엉켜 한판 제대로 벌여 놓은 무대이자 배경입니다.


판교동 회화나무 아래에서 축원하는 사람들


그러던 어느 날, 지난 거친 폭우에 수백 년간 마을을 수호했던 낙락장송이 부러졌고, 산성을 치러 온 여진족이 홍이포를 쏘아 대도 의연했던 느티나무는 속앓이 하다 죽고 말았습니다. 탄천을 산책할 때 항상 그늘이 되어 주던 버드나무마저 거친 물살에 뿌리째 뽑혀 떠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고고하게 하늘로 고개 내밀던 능소화. 도심 담벼락을 꽃으로 뒤덮으며 하늘까지 오를 기세였건만, 골목길 정화 사업에 꽃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대가로 여름마다 꽃단장하던 담장은 삭막한 콘크리트 벽이 되었습니다.


지난 폭우에 쓰러진 오야동 낙랑장송


산속에 자랐던 좀작살나무 수백 그루가 모조리 밟히고, 한겨울 자줏빛 열매를 기억하던 박새가 배고픔에 발을 동동 일 때, 더 늦기 전 이 땅에 사는 나무 이야기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는 바위와 같이 긴 시간을 보내며 제자리를 지키고 사람은 찰나의 시간에 웃다가 울고 사랑하다가 슬퍼하며 이 땅에 오고 가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나무에도 허락된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숲에서나 길에서 처음 만났던 나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만약 나무를 임업론과 육종학 전공 서적에서 알았다면, 이처럼 나무와 처음 만난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이 때로는 일부러 찾아 나서 처음 만나게 되었던 그 기쁘고 설렜던 순간들이 너무나 또렷하게 잔상으로 남았기에 글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마침 성남시가 생긴 지 50주년이 됩니다. 성남시는 황무지에서 시작되어 크게 일어난 고장입니다. 뒤돌아보면 단단한 뿌리가 내렸기에 번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첨단과 혁신을 내세우며 우리는 전진하겠지만, 그 바탕에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전통문화가 있기에 가능하리라 봅니다. 이는 여기 57그루의 나무가 증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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