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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an 12. 2024

능소화

어느 담장 아래서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아이가 눈에 띄었다. 벤치 등 기대는 곳에  걸터앉아 다리를 번갈아 뻗치고 있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듯 하늘을  보며 흥얼거린다. 이름을 물어보았다.

“소화” 

“예쁜 이름이구나. 하얀 꽃이란 뜻이야?”

“아니. 흴 소(素) 자를 쓰지 않아. 하늘 소(霄) 자를 쓰지.” 

“하늘 꽃?” 

“아니. 하늘보다 예쁜 꽃” 

당돌하다. 하지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에서 맞장구라도 치고 싶었다. 검은  눈망울에서 속눈썹이 꽃 수술처럼 길게 자랐다. 

“그럼 성은?” 

“여자.” 

다시 또 빤히 쳐다본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짓궂은 눈빛이었다. 

“그래? 몰랐어.” 

까르르 웃는다. 어린아이 웃음보다 더 크고 깨끗한 소리였다. 그는 재미있다 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성은 능이야.” 

“응. 그러면 성이 능 씨고 이름은 소화면 능소화?” 

그는 고개를 한번 까닥이곤 나를 한번 설핏 쳐다보고 고개 돌려 하늘을 향 한다. 같이 시선을 하늘로 옮겼지만, 청명한 하늘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말 청명한 하늘이다. 

“능소화가 정말 네 이름이야?” 

능 씨 성이 있던가? 속으로 생각해 보고, 꽃 이름을 가만 떠올리며 그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본다. 본 이름을 가르쳐 주기 싫었는가 싶었다. 그런데 딱히 진짜 이름을 되묻고 싶 지 않았다. 소화.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습작 시로 끼적이던 시절, 원고지 에 써 내려간 시 제목이 ‘소화’였다. 소화는 강촌으로 떠나는 경춘선 플랫폼에 서 밤새 우두커니 서 있던 여인 이름이었다. 소화 앞에 딱히 성이 붙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능이란 성씨가 우리나라에는 없으니, 그가 그저 그리 불리고  싶다는 말로 이해했다. 


며칠 후 교보문고에 들렀다. 서가 앞쪽 한국소설 부분에서 책 제목이 눈에 띄 었다. 능소화로 시작되었다. 제목은 《능소화,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였다. 한겨 레 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 작가가 쓴  책이다. 서가에 기대어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보니 한 구절이 인상 깊었다. 몇 번을 읊조렸다.


꽃 귀한 여름날 그 크고 붉은 꽃을 보 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  저는 붉고 큰 꽃이 되어 당신을 기다 릴 것입니다. 처음 당신이 우리 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 듯, 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인 줄 알아 주세요.


1998년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한 남자의 미라와 함께 발견된 편지가 이 소설 의 모티브라고 했다. 400년도 넘은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연서는 내셔널지오 그래픽에 소개되기도 했다. 애절한 한글 편지의 슬픈 사연을 듣고 나니 더 뭉클 하다.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어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비슷한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소리바다에서 음악을 검색하여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음악이 잔잔하다. 글루미 선데이는 언제 들어도 우울하다. 400년 전 조 선시대 한 여인의 흐느낌과 동유럽 어느 도시의 여인 울부짖음이 이토록 같다 니. 괜히 들었다 싶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담벼락을 걷는다. 요즘은 적벽돌로 지은 집이 흔하지 않다. 그런 낮은 집들은 금세 허물고 다세대로 짓는다. 담벼락에는 아래는 담쟁이가  잎사귀를 파랗게 펼치며 손바닥을 흔들고 있다. 능숙하게 담을 타고 넘어갈 기 세다. 하지만, 담쟁이는 자기 이름 낙석처럼 담장 아래 빌붙기만 할 뿐이다. 담 장 위를 보니 능소화가 고고하게 하늘로 뻗어 있다.

능소화를 바라본다. 꽃은 주황색에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이다. 뒤로  새파란 하늘이 보이니 다섯 개 꽃잎이 화려하면서도 정갈하다. 능소화는 여러  이름이 있다. 능소화가 6월과 8월 사이에 피기 시작하므로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여 비꽃으로 부른다. 꽃이 질 때는 동백꽃처럼 꽃잎이 통째로 떨 어져서 순결을 끝까지 지키는 처녀꽃이라고도 한다. 또, 능소화가 덩굴식물로  등나무처럼 담장이나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고 하여 황금색 꽃이 피는 등 나무라는 의미의 금등화로 부른다. 옛날에도 능소화는 양반꽃으로 불렸다. 양반집 담장을 따라 거침없이 줄기를  뻗고 하늘로 오른다. 능소화의 능(凌)은 업신여긴다는 뜻이 있다. 하늘을 업신 여길 정도로 도도한 꽃. 일반 백성은 능소화가 어여뻐도 자기 집 마당에 심지를  못했다. 양반가의 귀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는다고 했 다. 양반집 담장 밖에서도 능소화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희한하게 지체 높은  분은 괜찮은데, 일반 백성이 꽃을 보면 꽃가루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눈병이 난다고 한다. 사람 마음 씀씀이가 참 얄궃다.

하지만, 능소화는 슬프다. 구중심처 임금을 기다리던 소화라는 이름의 궁인 이 기다림 끝에 죽어버린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줄곧 다니던 길에서 무참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수 십 년간 다녔던 담장을 여름이 되면 노랗고 붉은 꽃으로 온통 장식했던 능소화 가 무참하게 잘려 나갔다. 매년 여름이 되면 능소화를 볼 수 있다는 기쁨과 기 다림이 있던 담장이었다. 그런 마을의 자랑이었던 능소화 수십 그루를 잔인하 게 싹둑싹둑 잘랐다. 덕분에 어여쁜 초록 담장 정체가 콘크리트 기초에 선 방음 벽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능소화가 자란 곳에는 대신 남천이 자라났다. 참소가 있었다고 한다. 능소화  꽃가루에 갈고리 모양이라 눈에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 않아 자칫 실명한다며  길가 높게 자라난 능소화는 베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 비방은 비 단 이곳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줄을 이어 학교나 주택 담장에 자라난 능소화가 잘리는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봐도 능소화가 실명을 가 져온다는 것은 괴담이라는 것이 예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능소화는 꽃 가루가 바람에 날리지 않고 나비나 꿀벌이 제 몸에 꽃가루를 묻혀 번식하는 충 매화다. 그런 헛소문에 속아 관에서 무참하게 능소화를 잘라 냈으니 참으로 애 달프고 애달프다. 그런 억울함 때문에, 소화가 꿈에 나타났나 보다. 그렇게 아련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도 잘려 버린 제 몸에 한을 품고, 그런 운명을 만든 하늘을 가소롭게  보았나 보다. 


능소화의 꽃말은 여인의 기다림과 명예, 그리고 그리움이라고 한다. 누군 가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지켜갈 줄  아는 명예. 간밤에 소화가 별말 없이 앉아 있었어도 능히 소화가 그런 줄은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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