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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an 29. 2024

게으르다는 착각

[데번 프라이스] 게으르다는 착각

초과근무 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요즘 경제 뉴스에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난 시기에 맞춰 한 회사가 생산량을 최대한 늘릴 계획이었으나, 근로 연장을 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는 기사가 종종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노조의 반대와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놓쳤다는 견해도 스리슬쩍 올립니다. 그러면 댓글에는 국내 공장 문 닫고 해외로 옮기라며 경영자를 동정하고, 직장 잃어봐야 돈벌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노동자를 힐난하기 바쁩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현장에 야근을 독점하기 위한 전쟁이 있다며 (근로자들은) 보상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더 일할 의향이 있다'라며 주 52시간 근로제한은 노동할 자유권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초과근무를 일주일 12시간 이상 할 수 있도록 노동 관련 제도를 개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해외에서 노동시간 관련 시대적 흐름은 연장이 아닌 ‘단축’입니다. 유럽과 미국, 일본의 기업들은 앞으로 주 4일제 근무를 도입하여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란 두 목표를 동시에 잡는다고 합니다. 이미 주 4일제를 실시한 기업들은 IT시스템 발달 덕분에 업무 집중력과 근로의욕이 높아지고 대신 인력 및 시설 유지관리비는 줄어들어 기업 이익이 증가하였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약 1,900시간으로 OECD 평균 1,500시간보다 400시간 더 많습니다. 이 사실을 반영하듯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최대 애로사항은 업무량 과다와 인력 부족에 따른 초과근무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가끔 직장인들이 업무 중 쓰러진 사고를 들추어보면 대부분 한 달에 5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여 과로사한 경우였습니다.
 
솔직히 제가 공직에 오기 전에는 전 직장에서 야근을 너무 많이 하였던지라 공무원의 칼퇴근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직하고 보니 공무원이라고 워라밸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겠구나 느꼈습니다. 조직마다 업무량은 천양지차 나고, 동원되는 행사나 비상 대기가 많아 일과 삶을 균형 잡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공무원 보수도 일반 기업체 비교하면 턱없이 낮아 기본급 가지고는 생활을 꾸릴 수가 없어 초과근무라도 해야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초과근무를 받아들이다 보니 또다시 예전처럼 장시간 근로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일터에서 떠나면 주말이나 휴가 때 제대로 놀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데번 프라이스의 ‘게으르다는 착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한 책입니다. 

조직마다 생산성에 집착하는 바람에 개인들이 얼마나 많이 혹사당하고 있는지, 여러 분야에서 장기간 근로로 무기력감에 빠진 사람들 에피소드를 담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게으름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며, 산업화와 제국주의, 노예제의 유산이 깊이 내재한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거짓에 속아 강박적으로 쉴 틈 없이 일하고 그러지 못하면 자기 계발을 해서라도 하루를 꽉꽉 채웁니다. 그러고도 행여나 내가 게으른 것이 아닌지 걱정합니다.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르면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여기며 자기 삶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 일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데번 프라이스는 모든 것이 과부하인 시대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며 나의 성취가 나의 가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꼭 멋져야만 잘 사는 게 아니라며 지금 그대로의 당신으로도 괜찮고 다른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니까 덜 일 하고 그 시간에 자기 삶에 집중하자고 말합니다.


특히 책의 목차 중 눈길 가는 것은 제3장 ‘초과근무 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입니다. 책에서는 초과근무야말로 자신을 빠르게 소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여러 색으로 이루어졌지만, 소진되고 나면 세상은 흑백으로 보이고 감정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립니다. 타인의 감정도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어 다른 사람들과 쉽게 교감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가족과 친구로부터도 고립되고 번아웃과 무기력감에 빠져든다며 초과근무의 해악을 이처럼 경고합니다.

 새삼스럽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제부터라도 근무시간 내 제대로 일하고도 칼퇴근하는 것에 눈치를 보거나 눈치 주는 것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몫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부여받을 때는 제때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원망하는 일도 멈춰야겠습니다. 그것은 조직관리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고 건의해야 할 일이지 개인이 죄책감에 시달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처럼 비가 엄청나게 쏟아질 때면 집에 있어도 마음이 영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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