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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03. 2024

군산시 적산가옥

군산시 신흥동 일본식 적산가옥

군산시 적산가옥 


군산시청을 들리기 전에 1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있었다. 여행이나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전라북도 군산시에 들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 시청에 들어가 하릴없이 식순을 기다릴 바에, 군산에 있는 이런 귀한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궁리했다. 몇 번 인터넷 서핑 끝에 추천받은 장소가 일본식 적산가옥과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촬영지였다. 그리고 이화당에 들려 빵을 사는 것도 포함되었다. 다행히 군산시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바삐 차를 몰았다. 


군산시내로 접어드니 거리는 상당히 깔끔했다. 아마 전신주와 난마처럼 걸린 전선이 없어서인 것 같다. 이 도시는 나름 도시 미관을 위해 지중화사업을 끝냈나 보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도시 경관을 해치는 것이 규칙 없이 박아둔 전봇대와 그 끝을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달린 전선줄일 것이다. 갈수록 인터넷 케이블도 같이 엉겨 붙어 어떨 때는 전봇대에 전선과 케이블이 마치 검게 따은 머리칼처럼 치렁치렁하다.


군산시 시내. 전봇대와 전선줄이 없어 깔끔하다.


적산가옥은 말 그대로 적이 남겨놓은 산물인 가옥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일제 강점기 지어진 일본식 주택을 일컫는다. 적산가옥은 유독 목포나, 부산, 군산, 인천 등 항구 쪽에 많다. 당시 식민지화된 조선 내륙에서 수탈한 공물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항구는 늘 물자와 사람이 넘쳤다. 일본에서는 한 몫 잡고자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이 많았고 많은 특혜를 입어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게 중에는 우리나라를 제 나라인양 아예 집을 짓고 눌러사는 사람도 생겼다. 집은 일본 양식 그대로 차용해서 집을 지었다. 

일제 패망 후 일본사람들이 본국으로 도망친 이후 집들은 빈집으로 남았다. 대부분 착취당했던 조선인들에 의해서 불태워졌다. 제법 큰 주택은 미군정에 의해 보호되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적산가옥으로 지정되어 국유시설로 보호했다. 군산의 적산가옥도 그중 하나였다.


일제 강점기 군산에서 활동한 유명했던 포목 상인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주택


전라북도 군산시도 항구였던 만큼 적산가옥이 많이 남았다. 그중 신흥동에 위치하고 있는 일본식 가옥은 2층 규모의 큰 저택이다. 2005년에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원래 히로쓰라는 일본 주인의 이름을 따서 '군산시 히로쓰 가옥'으로 불렸다. 이후 문화재청에서 지역명에 일본식 가옥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으로 통일하여 '신흥동 일본식 가옥'으로 정식 명칭이 변경됐다.

히로쓰는 군산 지역에서 포목 상업을 하여 재산을 크게 모은 일본인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주택이 밀집되어 있던 신흥동 지역에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대저택을 지었다.


신흥동 적산가옥 뒤뜰


신흥동 적산가옥 내부 복도


일본식 주택의 특징은 가옥 내부에 긴 복도가 있다는 것이다. 군산의 신흥동 가옥도 1층에는 온돌방과 부엌, 식당, 화장실이 있고 2층에는 일본식 다다미방 2칸과 도코노마가 있다. 넓은 통창으로는 내부만 볼 수 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차창너머 바라보는 1층에는 방 주변으로 긴 복도가 둘러싸고 있다.

건물은 대지에 두 채가 붙어 있고,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의 정원을 조성했다. 정원에는 연목과 돌 징검다리가 있고  그 주변으로 조경수와 석탑, 석등이 있다. 


2층 목조주택 적산가옥


내부를 보니 좀 낯이 익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영화 촬영 명소로 그동안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몇 번은 보았던 작품이라 아마 이 영화를 통하여 눈에 익었나 보다. 



정문을 나와 뒤돌아보니 향나무 두 그루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향나무는 오랫동안 보아온 나무다.

향나무는 천년을 사는 나무답게 수형이 아름답고 중후하다. 창덕궁에 자라는 향나무는 수령이 750살일 정도로 건축물이나 교정에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 잔가지가 많아 가지치기로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다. 특히 학교 구령대 옆에는 으레 향나무 몇 그루가 있어 자기처럼 반듯이 크라고 훈시하는 나무다. 

그런데 학교에 심은 향나무 대부분은 우리 전통 향나무가 아닌 가이즈까향나무다. 흔히 왜향나무라고 부르는 이 나무를 처음 심은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로, 조선을 침략한 후 기념식수로 심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알려지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관공서에서는 일본 수종이라며 가이즈까향나무 베어버리고, 대신 은행나무나 소나무를 심었다. 현충원에서도 호국 영령들이 안장된 곳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이즈까향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기도 했다.



 향이 나서 향나무로 불리는 향나무는 목재 자체에서 향이 난다. 다른 나무는 봄이나 여름에 꽃이 피어야 비로소 향긋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향나무는 사시사철 나무 자체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천연 방향제로 옷 속에 넣어 다녔다. 

군산 적산가옥의 향나무는 당연히 가이즈까향나무다. 적산가옥에 있을 법한 적산수목이 아닌가! 

그런데 가이즈까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조경수로 인기가 많아 고급 주택이나 학교, 대형 빌딩의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공해에 강하고 관리하기 쉬우며, 가지와 잎이 밀생하여 여러 모양으로 가지치기하면 조경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그리고 향나무는 날카로운 바늘잎이지만, 가이즈까향나무는 부들부들한 비늘잎으로 만져도 따갑지 않다.

신흥동 적산가옥에 자라난 가이즈까 향나무


적산가옥을 보존하는 그 바탕에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있다. 예전에 일본 노래나 드라마가 티브이방송에 나올 수 없었다. 왜색문화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우고 대신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언뜻 우리나라 문화를 보호하려는 의도 같지만, 오히려 우리 문화를 열등하게 보는 시각이다. 일제 강점기 35년간 핍박 속에서도 지켜진 우리의 찬란한 문화다. 5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우리 한민족의 고유의 문화 덕분이다. 그런 긍지가 있다면 중국이나 일본, 만주, 동남아시아, 인도 등 접해 있는 나라의 다양한 문화가 몰려와도 우리의 전통문화는 보존되면서 더욱 성숙하고 발전될 것이다. 사실 문화란 다양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에서 융화될수록 더욱더 발전한다. 



군산시 적산가옥을 보니 적산주택 중 으뜸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조선총독부 청사였다. 1926년 서울 경복궁 앞 홍례문 등 궁궐 일부를 허물고 지은 조선총독부 건물은 개장당시 일본에도 별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경복궁 앞에 이런 호화로운 건물을 떡 하니 지어놓고 식민지 조선사람을 내려다보며 위압했다. 당시 건축 양식은 영국의 인도총독부 건물을 본 떠서 최대한 거대하게 지었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총독부 건물은 미육군에서 사용하고 청사를 캐피탈홀이라고 불렀으며, 우리는 우리식으로 번역하여 중앙청이라고 불렀다. 광복 후 대한민국 첫 제헌국회가 중앙청에서 개최되고, 우리나라 헌법도 이곳에서 공포되었다. 그래도 일제의 유산이라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를 건립하고 난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 박물관은 일제강점기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으로 서대문 형무소와 함께 활용했다. 


철거되기 전 조선총독부 건물. 일본을 상징하는 日자 형태의 건물이다. (자료사진)


그런데 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을까? 남겨두고 우리의 비극적 역사의 체험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기 군산의 적산가옥처럼? 그렇다면 민족의 수치나 그런 부끄럽 없이도 당당하게 일제의 유산을 보며 관광의 한 요소로 삼았을 것이다. 더구나 총독부 건물은 건물 자체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아도 동아시아 근대 건축물로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3월 1일 '광복 50주년 3.1절 기념식 연설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며 "건물의 철거는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과연 철거를 했어야 했나 하는 의문과 여러 찬반 논란을 떠나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 이후의 그림을 보면 왜 적산건축물의 철거가 당연했는지 알 수 있다.

보라! 우리 찬란한 고유의 전통 궁궐을!

조선총동부 철구 후 경복궁 복원 사진 (자료사진)




군산시에는 적산가옥 말고 이성당이라는 맛집도 있다. 빵집인데 맛 좀 보려 했으나 줄 선 사람이 많아 그냥 패스. 대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 초원사진관을 가봤다.


이성당 빵집


군산시 신창동 1-5번지에 소재하는 초원사진관은 한석규와 심은하가 만난 장소다. 죽을 날을 앞둔 시한부 인생의 한석규는 사진을 찍고 인화하며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가 심은하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으나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때 심은하가 다시 사진관을 찾아오면서 그녀의 사진을 진열대에서 보면서 끝나는 영화다. 

초원사진관 앞에서 옛 영화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런 추억으로 영화에서 한석규가 독백으로 심은하에게 한 이야기를 남긴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군산시 신창동 1-5번지 초원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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