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오르는 문필봉
진안고원은 해발고도 300~500m로 호남의 지붕이라 불리며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남도에는 새벽에 비가 온다고 하지만, 이곳 진안고원은 대설예보가 내려졌다. 하루 묵기로 하여 마이봉이 과연 눈에 파묻혀 하얀 문필봉이 될 수 있을는지 보기로 한다. 숙소는 홈삼빌이다.
홍보 문구는 '진안고원의 청정 자연 속에서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여유와 행복을 담아 가세요!'다.
옆 건물 홍삼스파와 같이 운영하는데, 진안홍삼스파는 홍삼한방이 도입된 스파라는데, 호텔 내부 욕실 물도 깨끗해서 굳이 스파까지 이용하지는 않았다.
새벽 홍삼빌에서 나와 다시 마이산을 찾았다. 마이산 오르는 새벽길에 차량 한 대가 먼저 앞질러 가더니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다음부터는 오롯이 내 발자국만 눈 위에 남기고 산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눈 밟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다. 서걱서걱 거리는 눈 밟는 소리. 그르렁그르렁 코 골며 자는 강아지 숨소리처럼 상상하면 절로 미소 지어지는 소리다.
동이 트기 전이라 제법 어둡다 가다도 멀리서 가로등이 하나 있으면 사방을 환히 비춘다. 하얀 눈은 작은 불빛이라 하여도 반사하여 멀리까지 내비친다. 처음 밟는 눈은 미끄럽지 않다. 우두둑 밟는 발을 눈이 포근히 감싸주기 때문이다.
마이산 천왕문에 올랐다. 전날 건너편에서 미처 보지 못한 실질적인 마이산 정상이다. 천왕문은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의 고개를 가리켜 부르는 말로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룬다고 한다. 여기서 숫마이봉 쪽으로 조금 오르면 동굴이 있다. 화엄굴이다.
동굴 속에는 석간수가 떨어져 고인 샘물을 이루는데 이 물을 마시면 득남을 한다고 하여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숫마이봉이라서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거라 믿었나 보다. 요즘은 굳이 아들 낳기 위해 화엄굴에 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암마이봉에 이런 동굴이 있다면 그 물은 딸을 낳게 해주는 전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눈이 제법 많이 내려 정자에서 쉬기로 한다. 정상 해설판 앞면에는 마이산 이야기가 있다. 마이산이 금광과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마이산이 명승지라고 하지만, 호남의 두 거대한 강물줄기인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하니 선뜻 믿기 어렵다. 뒤편에는 마이산과 쉬리 이야기가 있다. 읽어보니 마이산을 중심으로 수계가 나뉜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다.
마이산은 과거 호수환경에서 자갈, 모래 등이 섞이고 쌓이면서 굳어져서 만들어진 역암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마이산이 신생대 시기에 솟아오르면서 마이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섬진강 수계, 북쪽으로는 금강수계로 분리됐다. 이렇게 수계가 분리되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최근 연구에서 금강과 섬진강에 서식하는 쉬리들을 조사해 보니 섬진강에는 참쉬리, 금강에는 쉬리가 서식한다고 밝혔다. 참쉬리와 쉬리를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을 해본 결과 조상이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환경에서 한 종으로 살아가던 쉬리가 마이산이 솟아오르고 섬진강과 금강 수계로 분리되면서 각각 달라진 환경에서 별개의 종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마이산 해설판 쉬리 이야기]
눈이 제법 거세게 내렸다. 새벽에 간 밤에 내린 눈이 멈추길래 어쩌면 마이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동이 특고도 남을 시간인데 짙은 눈발에 사방은 어둑어둑하다. 우뚝 솟아있는 숫마이봉 정상도 눈발에 아련해진다.
마이산 양갈래길에서 천왕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망연자실 앉아 있다. 이른 새벽에 왔길래 나 스스로 일출을 보려 앉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일출이 가당키나 했을까?
정자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그러면서 일출이 아니라면 그저 산길에서 눈이 많이 내리니 잠시 강설을 피해 갈 요량으로 정자에 앉아 있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등산하면서 진눈깨비 같은 습설을 다 맞고 올라와서 옷도 다 젖었다. 정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몸이 으스스스 춥고 떨린다. 일출을 볼 수 없다면 눈에 젖은 몸으로는 한시라도 빨리 하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냥 마이산 정상에서 망연히 앉아 있다.
그럼 무엇을 기다린 걸까? 눈이 그치기를 기다린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사실 마이산 정상에서 단지 갈 곳을 몰라해서 앉아 앉아 있다. 괜히 정상까지 올라왔으니까 피곤하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서. 어쩌면 올해 마지막 설경이 될 수 있는데, 마침 눈이 많이 내리고 게다가 여기 멀리까지 왔는데 이 진경을 더 오래 눈에 담아야지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럴듯한 핑계.
산 정상에 오르면 이제 내려가던가 아니면 다른 곳이라도 올라가야 할지, 이대로 머물러야 할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어느 것 하나 정하지 못하고 갈피를 못 잡고 이리 망연자실 앉아 있다.
딱히 어떤 목적도 없고 어떤 이유도 없다. 만날지, 떠날지, 그냥 이대로 머물지 그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산 하나가 쉬리라는 생물을 서로 다른 종으로 만들었다. 공간과 시간의 구분이 이렇게 서로 다른 생물로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면 남남이다.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생각할 게 많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몸이 가는 데로 놔줘야 한다. 생각은 그 몸이 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쪽으로 만들면 된다.
이제, 눈이 그쳤다. 핑계됐던 강설마저 그쳤으니 이제 하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흐리고 눈 내린 날에 무슨 일출이 있겠는가? 바로 앞에 있는 암마이봉, 숫바이봉 정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산 정상을 볼 수 없다면 그저 내 옆에 있는 나무를 살펴보면 되겠다. 산은 멀리 있지만, 나무는 가깝다.
여기 마이산 천왕문 기슭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우뚝 자랐다. 족히 수백 년은 묵었다. 팥배나무 둥치도 두껍다. 산벚나무 여러 그루도 자라서 봄에 오면 벚꽃으로 장관이겠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무들이 빼곡하다.
여기에는 봄에 분홍빛 산벚나무꽃과 여름의 하얀 팥배나무꽃말고도 봄, 여름, 가을 울긋불긋 물들 것이다.
어제 올라왔던 탑사에서 천왕문으로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 본다. 맑은 날 올라왔던 길이라 지금 내려가서 본다 한들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아 내려가다가 멈춘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가파른 고갯길이라 허투루 힘을 쓰고 싶지 않다.
생각을 접고 돌아가기로 한다.
홈삼빌이 깨끗하고 난방도 잘 된다. 깨끗한 물로 눈과 땀으로 젖은 몸 좀 씻고 이불속에서 있어야겠다. 자칫 감기라도 오면 큰일이니까.
물론 그 이후 감기가 단단히 걸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