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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에 리얼리티는 없다!!

하나도 리얼하지 않은 리얼리티 이야기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드라마가 됐구나 

2008년 작, [그들이 사는 세상] 

노희경 작가의 미친 글빨(?)에 

표민수 감독의 연출에 

현빈, 송혜교, 엄기준, 배종옥, 최다니엘, 김갑수, 

배우들의 케미에 

하나 버릴 것 없었던 ost까지.. 

모든 게 다 좋았던 드라마. 


리얼리티가 하나도 리얼하지가 않아 

작품에 사활을 건 

드라마 제작 현장의 이야기들이 

꽤 구체적으로 펼쳐졌는데 

드라마 작가가 아닌 나로서는 

이게 리얼리티를 살린 드라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노희경 작가가 

그녀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썼다면 

아주 허구는 아니었을테지만,

간혹 영화나 방송에서 

라디오 방송 제작 장면이 나오면 

나로서는 참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들을 

꽤 많이 봐왔던 터였다. 


가령 이런 식이다. 

라디오 진행자가 주인공인 작품에서는 

진행자가 마이크 앞에 앉아서 

오프닝부터 원고는커녕, 

메모지 한 장 들지 않고  혼자서 자기 얘기를 

하나도 막힘없이 유려하게 읊어댄다는 것.


비슷한 일을 한다고 모두가 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잖아?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내가 다니는 지역의 방송국 피디들도 

죄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나보다. 

그들은 드라마의 ‘드’자도 만들어 보지 못한, 

지역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지원금 받아 

정책홍보 다큐나 만들고 

지역의 맛집 소개하고, 특이한 인물 찾아 소개하는 

매거진 프로그램들을 만든 게 전부인 

지역 방송의 평범한 피디들이었다. 

천재성을 수반한 괴짜스러움이나, 기깔나는 면도, 

그리고 대단히 아이디얼 하거나, 

하다 못해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도 하나도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아이템 쳐내는 것에 만족하고, 

밖에 나가면 “아이고 방송국 피디님~”하고 

떠받들어주는 그 기분에 살짜기 취해 다니는.. 


그런데 웃기게도 

이 드라마 방영 당시, 

모든 피디들이 다 자기가 드라마 피디인 양 

착각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마치 그 고뇌를 모조리 다 아는 듯. 

그리고 자신도 그런 고난도의 작업을 하고 있는 듯 

밀도 높은 창작의 고통에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 

양껏 감정이입이 돼 있더란 사실. 

물론 그 이후에 그들은 깨몽을 했겠지만

(부디 했었으리라 믿고 싶지만) 

당시 옆에서 그들을 보는 입장에선 

뭐랄까.. 좀 우스움.. 그리고 같잖음?

뭐 그런 생각들이 아주 많이, 

아니 미친 듯이 들었다. 


현실엔 절대 존재하지 않는 99'들 

10년도 훨씬 더 지난 드라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라는, 

슬의생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인생의 축소판인 병원에서 벌어지는 

99학번 동기들이 써나가는 

잔잔한 이야기들이라고는 하지만, 

예고편에서도 우리 드라마는 

서스펜스나, 스릴러, 음모론 따위는 여전히 없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임을 강조하긴 했지만, 

차라리 서스펜서, 스릴러, 음모론이 훨씬 더 현실적일 정도로 

이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인간적이고 착하고, 정많고 

사람 냄새 풀풀 나며 

게다가 수술은 기본, 

연주까지도 잘하는 비현실적인 의사캐릭터가 대거 등장하는 걸 

우린 진심, 리얼리티라고 믿고 싶긴 하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아픈 통에 

병원들을 여러 차례 들락거린 나에게, 

이런 병원의 모습은 

거의 판타지에 가까울 뿐이다. 

살면서 이런 저런 병원을 다니면서 

수백명의 의사들을 만나봤겠지만,

단 한명도 저런 의사를, 

저런 의사의 발끝만큼도 닮은 의사를 본 적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몇 년 전 아들의 발에 껍질이 죄다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 

몇 군데의 피부과를 돌아다닌 일이 있었다.  

발의 피부가 이상하다는 말에도 

단 한명의 의사도 

아이의 발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이는 없었다. 


자기는 자기 책상에 

아이는 환자 의자에 앉은 채로 

아이의 발로 시선을 슬쩍 주는 척 하며 

바로 진단을 때려 버리는.. 


결국 서너군데의 병원을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발은 그 상태로 1년 이상을 갔고 

당시 우리 방송에 출연하는 피부과 의사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던 중에 그 의사의 병원에 갔다가, 

겨우 아이의 발을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게 됐다. 

진단명은 간단했다. 무좀과 습진이 겹친.. 복합성 피부질환. 

물론 이 의사 역시 나의 하소연이 없었다면, 

그리고 내가 생면부지의 그냥 일반 환자였다면, 

앞에 만났던 여느 의사들과 

비슷한 진료를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최근 슬의생에 등장하는 

세상 포근하고 세상 인정많은 의사들을 보며, 

1분 진료도 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성의 없고 영혼없는 초스피드 진료에 

불친절하고 무뚝뚝하고 

환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의사들이 

“어머.. 어쩜.. 내 얘기랑 똑같아..”

하는 착각들을 하는 일이 많을까 싶어 

개인적으로는 심히 배알이 꼬인다.  

예전 [그사세]를 보며 

세상 평범하고, 세상 특별할 것 없던 

지역의 방송국 피디들이 

과도하게 감정 이입이 됐던 것처럼.. 말이다. 


극적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현실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드마라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인정머리 없는 이들이 사는 곳이 

우리 사는 이곳, 

현실,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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