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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의 품격

지랄 총량의 법칙

꽤 오래 전, 인사동에 갔다가 

아주 임팩트 있는 소품을 발견한 일이 있다. 

가게 문 앞에 광고용으로 세워놓는 입간판의 모양을 한 

손바닥 만한 사이즈의 소품이었는데 

거기 적힌 문구가 아주 일품이었다. 

빨간 궁서체로 ‘지랄금지’가 세로로 쓰여 있는 입간판. 


지랄금지 


당시 아주 지랄(?)맞은 피디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랄을 견디는 때였던 터라 

그 소품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땐 아프리카의 주술법인 

부두인형까지 검색해 볼 정도로 

피디의 극랄하고 악렬한 지랄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쌈짓길을 올라가는 길에 

‘다 보고 내려오면서 사야지..’ 했었는데 

그 길의 끝에서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됐고

결국 그 소품은 내 소유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사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고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미련이 남는 소품이다. 


사람 사는 일에 지랄이 빠지면 섭하다. 

아니, 

지랄이 빠지고는 일상이 영위되질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지랄 풍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랄도 풍년이다 


지랄.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정의한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가진 열과 성을 다해서 성질을 양껏 부리는 상태. 

이런 인간이나 이런 상황을 보고 

지랄이다, 

지랄도 풍년이다. 

지랄 꼴값한다. 

지랄도 가지가지다.

이렇게 다채로운 표현으로 지랄을 서술해준다. 


지랄 총량의 법칙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건데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 꼬장과 지랄을 쌍으로 같이 떨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골고루 지랄스럽게 나눠 떨기도 하다. 

하지만 총량은 정해져 있고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거다. 


지랄의 품격 

어쨌거나 지랄은 그 양이 정해져있고 

점잖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결국 같은 양의 지랄을 떨어야 한다면, 

어차피. 무조건. 기왕.  

떨어야 하는 지랄이라면,

떨만한 데

떨만한 일에 

떠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어이없는 지랄로 

엄한 사람 뒷목잡고 쓰러지게 하지 말고 

지랄도 품격 있게...

떨더라도 공감 가게.. 

OK???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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