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rom isla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원인 Aug 31. 2017

일상

민.원.상.담.실









방학을 맞아 큰 아이가 할머니 댁에 간 뒤, 아이가 뛰고 노래하고 울며 휘저어놓았던 소란들도 침전물처럼 장난감이나 흩어진 그림책 위에서만 가벼이 풀썩입니다. 식탁은 고요하고 밥 대신 간밤에 먹다 남은 도넛 몇 개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아무런 토핑 없이 맨 빵에 달달한 시럽을 발라 구운 오리지널 글레이즈드입니다. 


결국 가장 평범한 게 제일 맛있지 않아? 


아내가 말랑한 도넛 한 귀퉁이를 베어 물며 한마디 합니다. 도넛은 밤사이에도 쫀득함을 잃지 않고 가지런히 치아 자국을 남깁니다. 


우린 땅콩가루나 초콜릿 시럽, 하얀 설탕가루에 버무린 형용색색의 도넛들을 다 먹은 후에야 이 평범한 맛의 진가를 아는 것 같아. 우리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저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엄지와 중지를 딱 소리 나게 튕겨냅니다. 육아에서 벗어나 한껏 말랑해진 가슴을 아내가 덥석 베어 문 느낌입니다. 



인터넷 한 면을 장식한 여름 호텔 패키지 배너나, 텔레비전 가득 인공파도로 꽉 채운 워터파크의 손짓들은 사이렌 섬의 요정들처럼 우리 마음을 무장해제시킵니다. 우리의 여름휴가는 청소년수련회로 사흘, 부모님 댁에서 이틀을 보내며 끝났지만, 가지런히 개인 옷가지와 윤나게 닦인 방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뒹굴거리는 둘째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가장 쫀득하고 달달한 하루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숙함의 흔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