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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Oct 23. 2017

민.원.상.담.실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콤바인 몇 대가 분주히 논밭을 오갑니다.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드러누운 볏단을 보며, 뙤약볕과 가뭄을 이겨낸 자식에게 마지막 쉼을 선사하는 농심이 느껴집니다. 유년 시절 밥 한 톨의 귀함을 밥상머리에서 들은 터라 행여 갓길을 넘어 일 차선 위까지 널어놓은 낟알을 밟을까 천천히 그 길을 지나갑니다. 지난여름 똥 냄새가 난다며 빨리 차창을 닫으라고 아이들이 아우성을 치던 그 길입니다. 


한 녀석이 아, 똥 냄새! 하고 외치면 덩달아 여기저기 소란이 일어나고, 개중 여린 친구들에게 방귀 뀌었다고 누명을 씌워 펑펑 울게 했던 그 길입니다. 차창 안으로 밀려드는 가을바람이 땀 흘린 아이들의 목덜미를 감싸 안습니다. 아이들은 외려 창문을 활짝 열어 달라고 난리입니다. 



이 아이들 앞에 놓인 긴 인생길에 저는 잠시 스쳐 지나는 사람입니다. 코흘리개들을 훌륭히 성장시킨 선생이라 칭찬받기보다, 그냥 똥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인생 속에 오롯이 드러나지 않아도, 똥처럼 스며들고 싶어 졌습니다. 

아이들은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불과 몇 달 전 이 길의 냄새를 벌써 잊은 듯합니다. 나중에 까마득히 잊힐지라도 오늘, 그들 안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기름지게 하는 똥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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