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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Dec 12. 2017

가족

민.원.상.담.실











자장 라면을 끓입니다. 

큰아이는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라 함께 공부하는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합니다. 아내는 일곱 시에 마지막 태권도 수업이 있어 사범님과 함께 대충 김밥으로 때운다고 합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둘째를 데리고  서둘러 집에 들어와 식탁에 마주 앉습니다. 뜨거운 면을 몇 번이나 입김으로 식혀서 아이 입 속에 넣어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자기 새끼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라는 말을 오물거리며 자장 라면을 씹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체감합니다. 


입가에 시커먼 자장을 묻히고 아빠 더 줘 하는 딸아이를 보며 블록 놀이도 많이 해 주고, 그림도 많이 그려 주고, 아이들 추석 선물로 산 닌텐도 위도 같이 해 주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삶의 건너편에서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한 몸뚱이로 붙어 자신을 노려보는 이유 모를 불안 때문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봄가을이 사라지는 기후, 방향을 잡지 못하는 교육, 자본의 양극화, 날로 흉포해지는 사건들 속에서 저리 환히 웃고 있는 딸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  


며칠 전 우연히 만화책 한 권을 보다 그런 불안과 항상 대치하고 있는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소방관인 주인공은 늘 위험한 화마의 현장을 누빕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아내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삶에 지쳐 있습니다. 그날도 화재 현장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를 구하다가 부상을 입고 큰 수술을 받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주인공 곁에서 어린 아들은 아빠를 얼싸안고 울고, 아내도 그런 부자를 보며 소방관 일로 타박을 주었던 자신의 모습을 사과합니다.  의아해하는 주인공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 깨지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행복하게 있는 것에 감사해야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학습지를 마치고 돌아온 큰아이를 위해 호박 고구마를 찝니다. 배불리 먹고 뜨신 물로 샤워를 마친 네 식구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한 이불을 덮고 눕습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모습은 보이진 않지만 몸을 부대끼며 체온으로 함께 있음을 느낍니다. 세상 걱정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던 아빠는 아이들의 체온으로도 따뜻해지는 몸이 신기합니다. 작든 크든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제 몫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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