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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Nov 20. 2017

김치의 맛

민.원.상.담.실










매일 김치를 먹습니다.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는 아니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그 김치입니다. 

일산에 사시는 어머니가 전의까지 내려와 사돈댁 텃밭에서 잘 자란 배추를 소금에 절여 놓고 자정 무렵 장정 네댓이 들어갈 고무 대야를 뒤섞어 배추의 위치를 바꿔 놓습니다. 

아직 어둠이 얼룩처럼 남아 있는 새벽녘, 어머니는 숨고르기를 끝내고 힘없이 늘어진 배추들을 일으켜 찬물로 몇 번이고 씻어냅니다. 자가용 트렁크에 실린 절인 배추는 다시 일산으로 올라갑니다. 차편에 아들네 김치통 실어 가시는 것도 잊지 않으십니다. 

솜씨 좋기로 유명한 셋째 이모의 감수 아래 배추의 단맛을 감싼 젓갈 향이 씹을수록 입안에 퍼지는 감히 최고의 김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실제 맛보다 절임에서 버무림까지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이 눈앞에 생생하게 씹혀서 그런지 모릅니다. 그런 김치의 맛이 어느 날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변해버린 김치 맛에 당황하면서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빠르게는 어린이집에서부터 체육을 가르치며 함께 했던 아이들 눈빛이 어느 순간 변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시선과 생각을 좇을 수도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예전에는 덥석 안기기도 하고 무슨 말이든 고개를 끄덕이던, 겉절이처럼 파릇하고 아삭했던 아이들이 말입니다. 


“김치가 미친 거야. 익기 전에 그럴 때가 있어."


당황한 아들의 전화에 김치가 맛들어 간다는 증표라며 어머니는 수화기 한 가득 웃음으로 채웁니다. 수십 년의 시간, 매년 겨울마다 찬바람 맞아가며 굳은 손으로 김치를 담가온 어머니의 말이라 그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이들을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이제 네 번의 겨울을 넘겼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맛있게 익어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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