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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Mar 10. 2020

내가 오프라인 미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이유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미술은 어떤 모습일까?

이 브런치는 전문가가 아닌, 한 명의 기획자겸 대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꼈던 이야기들, 그리고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푸념 공간이다. 전문가의 실속 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조언은 언제나 환영한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독자가 많기를 바라며, 미술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기 위해 함께 고민하기를 고대한다 


나는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한다. 내가 그린 그림이 파블로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의 그림을 볼 때처럼 ‘못 그린 듯 잘그린 그림’과 같이 보였으면 좋겠지만, 사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주로 볼 수 있었던 그림들이다.

 

그런 내가 우리의 소중한 주말, 여가시간을 쏟아 그림을 그리고, 미술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미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한 주에 4개의 모임,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흩어진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와 현업 작가를 필두로, 평범한(가장 고된) 직장인부터 대학생과 취준생 그리고 알만한 사람은 알 수도 있는 뮤지션이나 모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곤 한다.


제각기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 ‘미술’이라는 주제로 하나 되어 떠들고 술 한잔 기울이며(모임이 갤러리 펍에서 진행된다) 문화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는 건 꽤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대부분 어떠한 진로나 업에 대한 결정을 할 때, 고민의 출발점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


나는 내가 좋아하는 미술에 대한 일을 꾸미고 있다. 그리고 이 ‘미술’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이다.

미술 하면 무구한 역사 속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루브르, 구겐하임의 수백억 짜리 작품을 떠올려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미술은 우리에게 이보다 다양한 역할로 존재한다.


하루 종일 가득했던 업무와 고민거리에 치여 관자놀이가 꽉 당겨올 때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 한켠을 위로해주고 꽉 막힌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뚫어준다. 퇴근길 버스에서 창문을 통해 우연히 바라본 다른 이들의 발걸음은 가끔 짠한 감정과 함께 우리의 쳇바퀴 같은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새벽에만 나온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림은 이것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그린이의 시선과 배경이 담긴 세상 유일한 모습으로, 보는 이는 이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일상 속 작은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감동을 얻기도 한다.


그래도 미술은 너무 어렵다.

몇 년간 이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역시나 어렵고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하지만 이건 미술을 업으로 삼은 내 사정이고, 여전히 미술은 즐기고자 하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감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독이나 저자가 갖고 있는 배경을 모른다면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까?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오가는 감정과 즐거움들, 책을 읽으며 느끼는 그 순간순간의 감동과 배움이 우리가 영화를 보고 독서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즐기고자 하면 즐길 수 있고 누구나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선 그렇다.


이곳에서 그림과 미술은 그저 구성원 제각기 목적에 따른 매개로서 작용한다. 미술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싶고 지식을 얻고자 하는 구성원에겐 배움의 창구로서, 비선택적 관계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그저 ‘나’를 보여주고 싶은 구성원에게는 표현의 창구 혹은 대화의 소재로서 작용한다.

실제로 우리 모임에 참여하는 한 분의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그분은 미술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여자친구를 따라 원데이클래스에 방문했던 훤칠한 직장인이었다. 처음엔 그저 그럴싸한 작품을 한 점 만들고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는데 만족했던 그분은 그림을 몹시나 좋아하는 여자친구 분 덕에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모임에 나오게 되었고, 우연히 모임의 네트워킹 파티에 참여했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최애 관심사는 여전히 다른 것이지만 이제는 여자친구 없이도 이곳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몇 개월간 의도치 않게 쏟았던 시간 속 나의 이야기를 그림을 그리며 남몰래 외치기도 하고, 작품의 배경이 주제였지만 사실 자기들 이야기만 하는 시간에 함께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더욱 긍정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사실 나도 최근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번지르르하게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나에게 미술은 관심사 임과 동시에 업이기 때문에 온 마음 다해 즐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모임을 만들며 함께하는 분들이 느끼길 원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근래 내 하루는 공으로 가득하지만 나의 존재 목적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닌 행복에 대한 방법을 찾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나’에 대해 알고, ‘나’를 만들며 채워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술은 나에게 ‘나’라는 밑그림을 만들어주는 존재이고 채울 수 있는 색깔을 보여준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가장 좋은 점은 새로운 사람들을 미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만나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이라는 문화를 학문적, 예술적 가치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향유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의도치 않게 많은 분들을 만나 뵙지 못하고 있지만 다 함께 이 시기를 건강히 이겨내고 또다시 모여 나누고 표현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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