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 위안을 받다
“그래, 화가가 되거라. 하지만 우선은 공부를 마쳐야 해. 우리가 베오그라드, 자그레브, 류블랴나, 사라예보에서 전시회를 열어주마.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널 도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선은 공부를 끝마쳐야 해.”
“제가 그렇게 한다면, 아버지, 그건 가장 쉬운 길을 택하는 셈이 될 거예요. 아무 대학에나 들어가서 아무런 흥미도 없지만 돈은 많이 벌게 해 줄 그런 공부를 하게 되겠죠. 저는 그림을 그려 생활을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해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이것은 퇴사를 한 후 읽은 책 내용 중 하나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나의 그림과 글로 생활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퇴사를 한 것이라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림과 글이 생활유지와 관련 있는 것 치고는 준비 없이 퇴사를 했기에 나는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퇴사를 준비할 때만 해도 상상 속 나의 모습은 이미 그림과 글로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실제로는 수익이 하나도 없는, 이제 준비하는 단계인 햇병아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것은 너무나 큰 도전이었다. 나의 완벽주의는 내가 너무 대단함과 동시에 너무 하찮은 존재라고 여기는 환장의 콜라보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대단해서 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라고 생각들 정도의 완벽한 작업물을 만들어내야 했지만 또 너무 한심해서 내가 상상한 것을 작업물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괜히 퇴사를 한 건 아닐까, 어쩌면 그림과 글은 내가 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재능이 하나도 없는 거 아닐까 하는 조급함이 생겼다.
이런 조급함은 빈 종이에 한 줄의 선도, 글자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게 했다. 그 한 줄의 선과 글자 하나는 절대로 날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년 정도 작업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거였음에도 그것은 날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저 계속 잠만 잤고 ‘글 써야 하는데,…’라고 자기 위로를 하며 도망치고 싶었다. 작업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움직여야 함에도 한심한 내 모습을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이런 순간은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도 있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걸 죽도록 싫어했던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발표로 깨져보자’하는 마음가짐으로 발표수업만 들었던 날들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나에게는 ‘감히’라는 부사가 항상 따라왔다. ‘감히 내가 내 의견을 낸다고?’와 ‘감히 내가 틀린 게 있다고?’하는 환장의 콜라보가 무의식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철학과 특성상 질의응답까지 받아쳐내야 하는 발표는 나에게 매우 힘든 도전이었다. 상상 속의 나는 스피노자와 대결할 정도의 엄청난 철학자임과 동시에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비웃음을 당할 패배자였다.
나에게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냐면 괴로워하는 스스로를 다독일 자신이 없어서 교내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수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하루만 울던 게 이틀, 나흘로 늘어났고 울기만 하고 끝났던 게 스스로를 해치는 행동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책임질 수 없다,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은 나는 교내 심리센터에 가서 자해 금지 서약서를 썼고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상담을 하며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 정도로 나는 그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겨우 하루를 견디는 생활을 하다가 나의 발표 차례가 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부담스럽게도 종강 날 마지막 발표를 하게 되었다. 나를 압박하기 시작한 부담감은 F 점수를 받든 말든 그냥 발표문만 교수님께 전송하고 결석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내가 입을 열자마자 모두가 나를 비웃을 것 같았고 교수님은 나의 발표문이 쓰레기라고 할 것 같았다.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