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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미 Dec 13. 2022

완벽주의자가 부담감을 내려놓는 방법(2)

‘쓰레기’에 위안을 받다

하지만 일단 교수님께 발표문을 전송이라도 하려면 작업을 해야 했기에 책을 읽고 발표문을 차근차근 적었다. 발표문을 던져놓고 도망갈 거였지만 그래도 흠 잡히기 싫어서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렬한 마음으로 타이핑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대방의 글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 ‘나’였다. 글을 쓴 저자 그 자체가 되지 않는 이상 완벽히 이해하는 건 힘들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단어 하나의 뜻을 알기 위해서 3개의 논문과 인터넷 철학 용어 사전을 펼쳐 놓은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학사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스스로한테 거는 기대감은  커서 이것들을  이해한  나의 멋진 모습들이 펼쳐졌다. 나를 보며 스피노자가 환생한  알았다고 박수를 치시는 교수님과 나를 동경에 어린 모습으로 우러러보는 학우분들의 모습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논문 1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장을 이해하려면 단어 하나를 이해해야 했고 단어 하나를 이해하려면 저자의 과거,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문화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없던 나는 깨달았다. , 나의 발표문은 쓰레기일 수밖에 없구나.


아이러니하기도 완벽주의인 나에게 나의 작품이 ‘쓰레기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큰 부담감을 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쓰레기인데 내가 큰 기대감을 안고 적어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발표문을 던져야 하는 기간이 가까워지기도 했기에, 나에겐 어떻게든 완성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냥 책 내용 중에서 내가 보기에 중요해 보이는 부분만 발췌하고 모르는 단어 뜻만 밑에 주석으로 달아놓자, 이렇게라도 완성시키자 하고 적어서 냈다.


그리고 다행히도 발표문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고 기대감을 스스로 낮추니 발표까지 기대감이 낮아졌다. 발표문만 던지고 도망가면 F학점이 확정이지만, 쓰레기 같은 발표를 하면 최소 D 학점은 받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발표를 못해봤자 D학점이겠지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발표문만 보면 쿵쾅대던 심장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한 줌의 바람에도 폭풍우가 친 것처럼 일렁이던 마음의 물결이 커다란 돌멩이도 소리 없이 삼키며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책 내용만 정리한 발표문을 그대로 읽기만 했고 놀랍게도 교수님께 극찬을 받았으며 빨리 마치고 싶다는 종강 날의 버프였는지 학우분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책 내용을 정리하며 자연스럽게 내용을 외운 덕분에 교수님의 질문에 답을 술술 말할 수 있었다. D학점 받지 뭐, 하고 대충 만들어냈던 발표는 A+학점을 받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상상 속에서 이뤄내는 완벽함 보다 세상에 내놓은 쓰레기가 더 낫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 내놓은 쓰레기 같은 나의 기록은 인생의 생활기록부에 그여지는 한 줄 같이 생생하다. 정말로 나의 길이 되어주는 것이다. 비록 엄청나게 높은 나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쓰레기라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완성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완성을 해야 세상이 결과를 알려줄 수 있으니까.


퇴사를 하고 조급함이 들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 깨달음에 더하여 완벽함은 없다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완벽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완벽주의는 여기서도 ‘불완전한 내가 완벽한 것을 만들어내는 건 얼마나 멋진가!’하고 두근거릴 수 있다.(사실 내가 그렇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면, 정말 완벽한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완벽해 보이는 도자기를 보면서도 누군가는 이게 왜 완벽한 건지 이해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든 생각은, 어쩌면 세상은 완벽함이 아니라 취향과 공감으로 이뤄진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의 나는 조급함이 느껴져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도전하고 있다. 완벽주의에게 도전은 내가 대단하다는 순수한 영혼에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는 정말 큰 위험이다. 그래서 안정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위험이 있는 도전은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의 생활을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기에 결과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미래가 모호하지만 쓰레기라도 만들어서 나의 세상에 유효한 한 줄을 계속해서 긋는다면 점점 미래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 덕분에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느끼던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할 필요 없고 완성하기만, 해내기만 하면 되니까. 완성을 해서 세상에 내놓으면 내 것이 취향인 사람들이 공감을 해 줄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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