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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Jul 19. 2019

프리랜서를 꿈꾸는 당신

마흔이 서른에게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프리랜서 에디터에요.”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우와~ 좋겠다. 멋져요!”

얼마 전 만난 동종업계 종사자도 그러했다. 그녀는 회사에 얽혀 있는 몸이라 ‘프리랜서’라는 말만 들어도 설렌다고 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회사를 벗어나 자유로운 프리랜서 에디터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사람들은 프리랜서라고 하면 뭔가 환상을 갖는 것 같다. 하하. 실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불과한데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 자유로워 보일 수 있다. 사실 그건 맞다. 서촌이라는 멋들어진 동네에 작업실이 있지만 나는 가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일부러 찾아내 일을 하곤 하니까.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나 프리랜서에요~’하고 자리 깔고 앉아 있어도 찾아주는 이가 없다면 ‘프리랜서는 개뿔~’이란 생각이 절로 나니까... 

일이 없어 남아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기도 하고, ‘이 상태로 업계에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걸까’하는 생각에 자괴감도 스멀스멀 자라난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평정심’이다. 일이 있으나 없으나 평정심을 갖는다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또 하나 있다. ‘갑질’을 견딜 수 있는 멘탈이다. 조직(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을 많이 겪게 된다. 울타리 없이 맨몸으로 홀로 그 갑질을 견디려면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여야 하거나, 대단한 쌈닭이어야 하거나, 대단한 인내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갑질’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며 만난 그는 나와 똑같은 ‘을’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갑’스러운 ‘을놈’이었달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뒷목이 뻐근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갑스러운 을놈'은 지금 뭐 하고 살까?

나같은 프리랜서라면 갑질이라는 말에 경기를 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갑질이 ‘갑오브갑’인 클라이언트 때문에 속앓이를 앓다 과민성대장증후군에 시달린 적도 있고, 갑질이 ‘갑오브갑’인 클라이언트와 밥을 먹다 급체를 하는 바람에 몇 달 동안 식도염과 위염에 시달리며 괴로웠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데 갑질보다 더 피가 거꾸로 솟았던 일은 그 ‘갑스러운 을놈’을 만났을 때였다.



'갑'스러운 '을'을 만났을 때

프리랜서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때, 모 유통기업 사외보를 맡게 됐다. 그것을 맡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프리랜서로 첫발을 내디뎠던 당시, 나와 코드가 잘 맞는 디자이너가 한 명 있었다. 그녀가 모 유통기업 사보 제안을 나와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사업자등록증도 없던 시절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제안서를 만들고 비딩에 들어갔다. 몇 군데 업체가 들어왔다. 우리보다 규모나 인원이 충분한 곳이 많았다. 기가 팍 죽었다.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우리가 낸 제안서가 업체의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소규모에 신생 기획사라는 점이 내부적으로 걸림돌이었는데, 기획안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했다. 만약 한국 기업이었으면 단번에 탈락됐을 것이다. 순수하게 실력을 믿어준 부분에 대해서는 외국계기업이지만... 고맙다.



서론이 길었다. 진짜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사보 진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유통 쪽 사보이다보니 사진 촬영이 많았다. 기존에 촬영을 진행하던 업체가 있다고 했다. 

그들과의 첫 촬영은 어느 쿠킹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사진작가(이하 J작가)와의 첫 만남이 기대됐다. 같은 '을'로서 뭔가 통하는 게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그 J작가는 그 회사의 사보를 몇 년 간 진행했던터라 여러 가지 조언 받을 것도 많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첫 만남에 J작가는 나를 자신의 조수마냥 막 대하기 시작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이래라 저래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마치 J작가의 서브나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열이 올랐지만 일단은 참았다. 



며칠 후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됐는데, 클라이언트(이하 A팀장)가 자신은 J작가 차량으로 같이 내려갈테니 우리더러 알아서 목적지까지 내려오라는 거였다. J작가 차량을 같이 타고 모두 함께 내려가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숙소 예약 관련이었다. A팀장은 우리에게 J작가의 숙소를 예약하라고 했다. J작가만 남자였기에 따로 묵을 숙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왜 그걸 우리가 예약해야 하지? J작가가 알아서 자신의 숙소를 예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패스~


어째든 우리는 따로 움직이는 걸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서 만났다. 

진행하던 칼럼이 여행 꼭지여서 우리는 주변 관광지와 산에 대한 조사와 취재를 했고 사진작가는 산을 트래킹 하며 다양한 뷰포인트를 찍어야 했다. 사건의 시작은 여기서 발생됐다. 

J작가가 우리에게 매우 싸가지 없는 말투로


“어디서 어떻게 찍어야 할지, 메인사진으로 갈지, 소컷으로 갈지, 몇 페이지 어떤 사진이 실리고 몇 컷이 실릴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J작가님, 그걸 저희가 어떻게 지금 말씀드릴 수가 있어요? 같이 트래킹을 하면서 좋은 곳이 있음 그때그때 논의를 해가면서 찍든지 해야죠. 사진 셀렉은 나중에 하는 게 맞지 않겠어요?”


그러자 J작가는 거의 카메라를 집어던질 기세로 짜증을 내며 A팀장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A팀장님, 지금 저보고 이렇게 준비도 안된 기획자하고 일하라는 거에요? 정말 수준 안맞아서 못해먹겠네"


나의 어이는 그때 완전히 상실됐다. 더 웃긴 건 A팀장의 반응이었다.

"J작가님이 이해하시고 넘어가 주시면 안돼요? 이 분들이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허거거걱!!!!!! 뭐라고라? 업계 경력 10년차에게 경험이 없다고라?? 그리고 갑이 을에게 쩔쩔매는 이 시츄에이션은 뭐지???? 



클라이언트 앞에서 을과 을 맞짱 뜨다

J작가의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났다. 그렇잖아도 일련의 일들로 인해 나의 이해심을 시험하고 있던 터였다.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 클라이언트인 A팀장이 옆에 있거나 없거나 J작가에게 맞짱을 떴다.


“지금 준비 안된 사람은 우리가 아닌 당신 아닌가? 어디서 지금 준비 타령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이 업계에 발담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당신처럼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배 나온 사진작가는 또 처음이네요! 지금까지 기획자 등쳐먹고 편하게 일해서 배가 나왔나 보죠? 내가 아는 실력 있는 사진작가님들은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아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천컷을 찍어서 스스로 알아서 셀렉 후 보내주셔요! 당신은 그럴 만한 실력도 없으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했던 거에요? 그동안 찍은 사진 쭉 보니 실력도 없드만 어디서 준비 타령이야!! 실력 있는 사진작가라는 거 증명하고 싶으면 나에게 작품 하나 보여주시죠! 지금까지 책에 실은 그딴 이상한 사진 말고요!”



뭐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였다. ㅎㅎㅎ 

사실 사진 비용으로 그가 받는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던 터였다. 그건 합리적이고 적정한 단가가 아니었다. 그냥 어처구니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고액이었다. 사진에 무슨 예술성이 있거나 알아주는 브랜드를 가진 작가도 아니었다. 듣보잡 사진사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진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영 실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겉멋만 잔뜩 들어서 외제차나 끌고 다니며 허세만 잔뜩 들은(그 자가용도 돈 많은 장인이 사줬다나 뭐라나)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숨도 쉬지 않고 몰아치듯 말하니 J작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진작가는 울그락불그락 화를 내더니 씩씩거리며 산을 타기 시작했다. 뭐 이것저것 많이 찍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비록 돈이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멘탈까지 탈탈 털리며 일하느니 과감히 접어야겠다고.



출장 내내 그 J작가는 A팀장에게 아부를 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다정하게 굴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하여간 각약각색 얼굴을 보였다. 반면 우리에게는 일관되게 냉랭했다. 달라진 건 나와 맞짱 뜬 이후부터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는 것 뿐. 전형적인 비겁자...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뭐 그런 인간형이었다.

나중에 안 바에 의하면 유부남이었던 J작가와 노처녀였던 A팀장 간에는 끈끈한 뭔가가 있었다. 그 끈끈한 뭔가가 무엇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J작가가 우리를 유난히 미워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비딩 당시 그도 페이퍼컴퍼니 비슷한 걸 급조해 참여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력이 안되었는지 우리에게 밀린 것이었다. A팀장과 끈끈한 뭔가가 있어 기대를 잔뜩 했을 터인데 엉뚱한 우리가 됐으니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뭐 하여간 '갑질 못지 않은 을짓'으로 횡포 비스무리 한 걸 하는 그 J작가와는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었다. 

나는 A팀장에게 사진 단가가 시장가와 그의 실력에 비해 비상식적으로 높게 책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J작가가 그동안 해온 갑질 같은 을짓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했다. 그러나 A팀장은 우리를 교체했음 교체했지 J작가를 교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암요.. 그러시겠죠..) 



웬만한 스트레스에는 오랫동안 단련이 되어 온 나였지만, 비상식적인 사람들과의 일은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결국 A팀장에게 더 이상 같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보통 갑이 을을 자르는 경우는 있어도, 을이 갑을 자르는(?) 경우는 없는지라 A팀장은 엄청 기분 나빠 했다.

그녀는 계약서가 있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법적 소송이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무자로서 업체 하나 교체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겠는가. 상부에 보고도 해야 하고, 이유도 설명해야 하고, 이런 사단이 난 것에 대해 본인도 책임을 져야 하니... 

하여간 우리는 소송 하고 싶음 하라고 했다. ‘이번에 진행한 건에 대해서도 1원 한 푼 받지 않아도 상관없고, 소송을 당해도 상관없다, 우리는 어째든 비상식적인 사람과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니 그렇게 아시라’ 하고 일주일 후 휴대전화를 꺼둔 채 유럽으로 날랐다. 


프리랜서 생활에는 멘탈 보호가 우선이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하면서 돈은 무지 아까웠다. 잘 나가는 유통기업이라는 점도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영혼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소송에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곤 한다. 몇 년 전 우연히 그 회사의 사보를 보게 됐는데, J작가의 이름은 여전히 실려 있었고, 그가 찍은 '어처구니 없는 사진'도 여전히 실려 있었다. 사진퀄? ㅎㅎㅎ '그냥 웃지요'다. 

갑 믿고 을에게 갑질 하던 그가 언제까지 사진사 일을 할 지 궁금하다. 

프리랜서 일을 하다보면 비상식적인 인간들을 간혹 만날 때가 있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대처 방법은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을'이라고 해서 무작정 참는 것은 능사가 아닌 것 같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이야기 하고, 참기 어려운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내 영혼와 멘탈을 보살피는 길이다. 

부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참고 일을 하게 되면 남는 것은 스트레스성 지병뿐이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려면 멘탈 보호가 중요하다. 프리랜서... 가늘고 길게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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