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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Jun 03. 2022

그림자멍

jun.2022



빛과 어둠 속에서 모든 사물은 그림자를 갖는다.  사물과 그림자는 하나의 완성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그림자를 지나쳤다. 사물이 존재의 주인이라 생각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오래 전에 지어진 탓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다. 

차를 주차하고 밖으로 나오는 길, 해는 늦은 오후를 비추고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주차장 입구 벽에 아른거리는 나무의 그림자가 5월의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에 있는 초점 맞추기를 하듯 풍경에 살짝 손가락을 대고 초점을 맞춘다면?

말도 안되는 상상이다. 그림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오로지 빛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림자멍'을 했다. 하얀색 벽 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영상... 

빛이 만드는 이 아름다운 '그림'을 왜 그동안 못보고 살았을까?

왜 사물만 보려 했을까?

그림자도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시시각각 빛의 각도와 세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그 변화무쌍한 그림자의 역동성을 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을까?

사물의 진심, 사물의 본질은 그림자까지 보았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마음속 그림자까지 봐야 한다는 것을, 왜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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