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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자여 떠나라

겨울 스페인,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일년 동안의 연가를 모았다가 탈탈 털어 겨울 여행을 다녀왔다.

학교의 공무직, 꽉 채운 2년 차, 연가 15개 모아진걸 12개 털어서 삿포로 3박 4일과 스페인, 포르투칼 7박 9일을 다녀왔다.

'어서 와, 유럽은 처음이지'의 현실판이었다.

삿포로는 두 번째이고 큰 감흥은 없었으나 스페인은 체력 관리는 일 년전부터, 여행지 선택은 석 달전 순으로 진행되었다.


3월부터 출근하는 길을 일부러 낮은 동네 산을 하나 넘어 다니는 출근길로 정해놓고 등산을 해서 출근했다가 다시 같은 길로 퇴근을 하는 왕복 등산을 했다.

거기에 필라테스 일주일에 두 번을 하니 어지간한 체력관리가 되었는지 스페인 여행가서 파스 한 장 안부치고 다닌 사람은 함께 간 친구 셋 중, 나 하나였나보다.

'내 사랑 동전파스'를 외치며 발바닥에도 부치고 허리에 쪼르륵 여섯개를 붙이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가 나이를 먹었음을 느꼈다.


스무살 때 만나, 87학번이라는 영구결번으로 모인 네 명이 함께 간 여행이었다. 여행지가 결정난 후 이스라엘 전쟁이 터졌다.

 '전쟁나서 뒤숭숭한데 가도 되나' '나는 오늘 입금했어''여행 갈 때 우리 애 중요한 일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돈이 없어 못 가는 여행이 아니라 걱정이 많아 못 가는 쉰둥이 아줌마들이 되어, 여행지 결정이 났을 때 친구 하나는 시어머니 상을 당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현실을 각자 끌어 안고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못 갈 이유가 열개였다면 갈 이유 하나를 찾아서 그렇게 갔다.

(사실 돈도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행 안가고 그 돈 모아둔다고 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어무 잘 아는 나이들이라 떠났습니다. 

과감하게!


사진으로 남아 있는 스페인

7박 9일 동안 버스로 이동한 거리만 3,000Km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차로 네 다섯시간 가는 것 쯤은 일도 아닐것처럼 생각되어지더니, 명절 연휴 앞두고 스페인에서 가졌던 마음은 어디로 싹 사라지고 시댁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여행이 준 단 맛이 다 빠져버려서인지, 시댁 가는 길은 언제나 멀어서인지 알 수 없으나, 여행은 정말 좋았다.



스페인가서 거지를 본 적은 없지만 거지라도 잘 생겼을것 같은 스페인 놈들의 얼굴도 신박했고, 가는 곳 마다 웅장한 성당도 카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겨울에 오렌지가 달려 있는 풍경과 협곡 사이를 이어주는 누에보 다리도 다시 보고 싶은 풍경이다.


우리 가이드였던 '공 가이드'는 번아웃이 왔을 때 홈쇼핑에서 나오는 스페인 여행 상품을 보다가 누에보 다리를 보고서 스페인 여행을 택해서 왔다가 그게 어학연수로 이어지고 스페인 남자와 결혼까지 해서 투우사의 며느리로 살고 있다고 했는데 여행은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까지 첨삭과 수정을 해 주는 매력적인 것이다.


톨레도에서 가이드랑 헤어질 때 가이드의 스페인 남편을 봤는데 그가 사람좋아뵈는 얼굴이라 마음이 놓였던 것은 이모같은 마음으로 가이드를 봐서 였을것이다.

 '스서방'이 허리를 굽혀 우리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거 하나만 봐도 착실한 스페인 사람같아 보였던 것은 내가 꼰대라떼가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걸로 하겠다.


뼈속까지 문과생인 우리들은 가이드의 스페인 역사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이걸 비싼데 사냐' '이런 걸 사는 건 이해 못하겠다' 뭐 그러면서 다니긴 했어도 공항에서 넷이 사이좋게 헤어졌다.


그럴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오래 된 친구여서일것이다.

내 년 1월에는 어디를 갈까. 다녀오자마자 나는 궁리중이다. 여행은 중독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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